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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죽기로 싸운 ‘불량 신사’들… 한국럭비는 이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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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올림픽]리우 4강 일본에 역전패 아쉽지만 끝까지 몸이 부서져라 뛰어 19점

처음 출전해 5전패 꼴찌여도 당당

동아일보

28일 일본 도쿄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7인제 럭비 남자 11, 12위 결정전에서 한국의 김진(아래)이 일본 선수들의 압박으로부터 공을 지켜내고 있다. 모델 출신 한국인 어머니와 한국에서 사업을 하던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김진은 7세 때 ‘고향’ 서울을 떠나 일본 미국 캐나다 등에서 생활하다가 2017년 한국 국적을 얻은 귀화 선수다. 도쿄=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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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불량배가 신사인 척하는 게임이고 럭비는 신사가 불량배 흉내를 내는 스포츠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 총리이자 1953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윈스턴 처칠(1874∼1965)은 이렇게 축구와 럭비를 비교했다. 이 땅에 럭비가 들어온 지 98년 만에 처음으로 조국을 대표해 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은 ‘한국 신사’ 13명은 종료 휘슬이 울린 마지막 순간까지 상대를 물고 늘어지면서 아주 제대로 불량배 흉내를 냈다.

한국 럭비 대표팀은 28일 일본 도쿄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7인제 럭비 남자 11, 12위 결정전에서 일본에 19-31(12-19, 7-12)로 패했다. 이로써 한국은 5전 전패로 12개 참가국 가운데 최하위로 첫 올림픽 무대를 떠났다.

한국은 이날 경기 시작 46초 만에 혼혈 선수 김진(안드레 진 코퀴야드·30)이 트라이(미식축구의 터치다운)에 성공하며 앞서 나갔지만 결국 피지 출신 선수 4명이 포진한 일본에 역전패를 당했다.

일본은 7인제 럭비가 첫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2016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때 4강 진출 기록을 남긴 세계적인 럭비 강국이다. 반면 한국은 실업팀이 3개뿐인 럭비 불모지 중의 불모지다.

그래도 한일전은 한일전이었다. 서천오 한국 대표팀 감독은 전날 11, 12위 결정전 상대가 일본으로 결정되자 “한일전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면서 “죽기 살기가 아니라 죽기로 싸울 것이다. 우리의 올림픽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한국 선수들은 이날 마지막 순간까지 몸이 부서져라 뛰었고 결국 이번 올림픽 팀 최다 득점 기록을 남겼다. 사실상 승부가 결정된 상황에서도 1점이라도 더 올리려고 일본 수비벽에 몸을 던지고 또 부딪쳐 얻어낸 결실이었다. 5전 전패 최하위, 득점은 29점에 실점은 210점이었지만 그들의 투혼은 늘 뜨겁기만 했다.

한국 대표팀 에이스 정연식(28·현대글로비스)은 경기 후 “끝까지 모든 힘을 다하는 게 바로 럭비 정신이다. 마지막까지도 이길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결과는 아쉽지만 일본의 승리를 축하한다”고 말했다. 경기장 안에서 온몸이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됐던 ‘한국 대표 불량배’ 13명은 어느새 다시 신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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