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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미얀마 편지⑪] 3번째 에어앰뷸런스가 한국으로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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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14일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코로나19 사망자들의 시신을 수습한 뒤 기도하고 있다. 만달레이/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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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시간은 멈춰 있습니다. 지난 2월 군부 쿠데타 이후 전국에 시행된 야간 통행금지가 다섯 달 넘게 유지되고 있고, 병원과 학교는 의사와 교사들의 불복종 시위 참여로 문이 닫혀 있습니다. 일부 지방에서는 정부군과 시민군의 교전이 이어지면서 거주민들은 난민으로 전락했습니다. 최근에는 델타 변이로 진화한 코로나19 대유행까지 더해져 미얀마 국민들은 삼중고, 사중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최대 도시 양곤은 분위기가 좀 다릅니다. 민주 정부 시절 강하게 시행됐던 사회적 거리두기와 집합금지 조처가 서서히 풀리면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식당과 쇼핑센터에 사람들이 가득했습니다. 교민들도 통금 시간 전까지 식당에서 만나 서로 다독이며 술 한잔 나누는 자리가 늘었습니다.

지난달 초부터 소셜미디어에 인도 접경 지역에서 코로나19 확진이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이 쿠데타 저항 소식을 조금씩 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지방과 양곤을 오가는 고속버스 기사가 운행 후 코로나 확진으로 차 안에서 사망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졌습니다. 이때도 ‘이제 시작인가’ 잠시 걱정했는데, 최근에는 가까운 지인의 사망 소식과 이웃의 확진 소식이 들려옵니다.

미얀마 국민들의 코로나19 확진은 급증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초 1만명을 검사하니 확진자가 수백명, 사망자는 수십 명에 이른다고 했는데, 이번 달부터는 1만5천~2만명을 검사해 확진자가 하루 1천명이 넘고 최근에는 7천명까지 늘었습니다. 지난 24일에는 확진률이 44%에 이르렀습니다. 100명을 검사하면 44명이 감염 상태라는 얘기입니다.

미얀마 현지인 사망자가 하루 수백 명 수준이라고 하지만 이는 병원과 검진센터에서 집계한 숫자일 뿐입니다. 양곤 시내 화장터에는 하루에도 2천구가 넘는 시신이 화장을 대기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군부는 코로나19에 대한 초기 대응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최근 이뤄지는 대확산에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입니다.

교민사회는 초비상입니다. 지난 10일 교민 한 분이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으로 사망하면서, 12일 한 분, 14일 또 한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26일에는 만달레이에서 활동하는 선교사 한 분이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옵니다. 이번 달에만 모두 네 분의 교민이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한 안타까운 사망 소식에 교민사회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최근 교민 단체 소통방에는 중증 환자들과 산소통을 급히 찾고 도움을 호소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버렸습니다.

현지 병원은 코로나19에 걸린 교민을 받아주지 않아 발만 동동 구릅니다. 뒤늦게 산소통을 확보해 공유하지만 이미 산소통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가 되어버렸습니다. 한인회와 상공회, 주미얀마 한국대사관이 급하게 긴급 팀과 콜센터를 조직해 산소통과 산소발생기를 공수해 교민들에게 제공하지만 확진자들과 중증 환자들의 요구를 따라가기 힘든 상황입니다. 전세기도 투입되지 못하는 상황인데, 이제 교민들은 한 차례 비행에 무려 2억원이 넘는 에어엠뷸런스를 확보해 탈출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중증환자의 생명이 위태롭기 때문입니다. 13일을 시작으로 19일 그리고 26일에는 세 번째 에어엠뷸런스가 한국을 향해 이륙했습니다.

저는 제가 소속된 공동체에서 한인회와 연합해 3차 긴급 환자 이송팀의 오퍼레이터를 맡았습니다. 에어엠뷸런스 이륙 전까지 나흘 동안의 상황은 그야말로 하루하루 위기였습니다. 환자분들의 증상과 상태가 사진으로 올라오고 여기저기서 산소통을 요청하면 한인회와 소공동체의 자원 봉사자분들이 야간 통금을 무릅쓰고 직접 산소통을 나르고 교환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활동 와중에 재감염된 분들도 생겨 다시 격리되는 상황입니다. 그야말로 미얀마 교민들끼리 똘똘 뭉친 상황입니다.

지금 전 세계에서 한국은 가장 안전한 나라 중 한 곳입니다. 코로나19에 확진되더라도 별 걱정 없이 시스템에 의해 치료가 이뤄지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해야 하는지 이곳 상황을 보면서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미얀마는 국제 사회와 한국의 도움이 절실하지만 이런 도움이 전달되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멈춰진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양곤/천기홍 부산외국어대 미얀마어과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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