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극한 폭염 속 ‘생존 아이템’이 되어버린 에어컨...‘모두의 온도’를 낮추기 위한 답을 찾아야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경향신문

7월20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 건물 외벽에 빼곡히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들. 박민규 선임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폭염일수 31.4일, 서울 기온 39.6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더웠던 해로 기록된 3년 전 여름, 여성환경연대 A 활동가는 퇴근 후 곧바로 짐을 싸 다시 집을 나왔다. 집 근처 게스트 하우스를 찾았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그가 일하는 사무실에도, 집에도 에어컨이 없었다. “하루종일 달궈졌는데 집에 오면 또 온도가 30도인거에요. 아예 한 3일을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냈어요.” 1년 뒤 그는 고민 끝에 에어컨을 마련했다.

올해 더위도 2018년 못지않다. 지난 22일 서울의 낮 최고기온은 36도까지 올랐다. 많은 인구, 아스팔트로 뒤덮힌 도로, 밀집한 건물, 차량 등으로 뒤덮힌 도시의 기온은 다른 지역보다 더 높다. 도시에서 ‘인공 열’을 내뿜는 것 중 하나는 에어컨이다. 무더위가 계속되면서 도시의 아파트 곳곳에선 에어컨 사용량이 급증하며 정전이 잇따르고 있다. 에어컨과 냉풍기 등 냉방용품 판매량은 계속 늘고 있다. 극한 폭염 속에서 적절한 냉방은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필수적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에어컨을 틀어 더위를 피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환경에도, 인간에게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결국엔 모두가 더 더워지는 악순환만 불러오기 때문이다. 그 피해는 쪽방 거주민 등 에어컨을 쓸 수 없는 취약계층에게 더 가혹하게 돌아간다. 전문가들은 기후위기 시대에 맞는 도시환경과 노동조건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경향신문

7월21일 오후 8시가 넘은 시각, 서울 관악구의 한 아파트 건물을 열화상 카메라로 찍은 모습. 각 세대별 보이는 동그라미가 에어컨 실외기에서 내뿜는 열기다. 온도가 높은 부분은 붉은색, 온도가 낮은 부분은 푸른색으로 표시된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극한 기후 속 ‘생존 아이템’이 된 에어컨

에어컨을 사긴 했지만, A 활동가는 29~30도가 될 때까지도 선뜻 에어컨을 틀 수가 없다. “저희 동네만 해도, 아직 에어컨이 없는 집들이 많거든요. 제가 덥다고 막 틀어대는건 미안한 일이라는 마음이 들었어요. 실외기 열기 때문에 더 더울 것 아니에요.” 하루 중 가장 더울 때는 한낮이지만, 그는 낮에 ‘시원한 공공장소’를 찾아 밖으로 나간다.

김혜린 기후미디어허브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도 2년 전 고민 끝에 에어컨과 베란다형 태양광을 동시에 설치했다. 그는 “지구온도 상승에 석탄화석연료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그래서 폭염 등이 더 극심해지고, 그래서 (에어컨 등) 더 전기를 많이 쓰게 되는 악순환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쉽게 구매를 결정하지 못했다”며 “‘생존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전까진 최대한 구매를 안하고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텼다”고 했다.

여성환경연대는 지난해에야 사무실에 에어컨을 들여놨다. 그 전까진 활동가들이 등이나 배에 아이스팩을 붙이고 있거나, 대야에 물을 받아 발을 담그면서 일을 했다. 녹색연합도 2019년에야 사무실에 에어컨을 들여놨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모두의 온도’를 낮추기 위한 법

녹색연합 배제선 자연생태팀장은 최근 강원도 삼척의 검봉산에 자연생태조사를 하러 나갔다가 깜짝 놀랐다. 보통 산에 조사를 하러 가면 오전 7시쯤 시작해 오후 3시쯤에는 하산하는 일정으로 움직이곤 했는데, 이번에는 아침부터 내리쬐는 햇볕이 너무 따가워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 조사를 오전 5시 시작해 12시까지는 끝내는 걸로 바꿨다. “아무리 여름이어도 산에 들어가면 좀 시원했거든요. 그런데 올해는 달라요. 기후 자체가 정말 아열대화 되는 것 같아요.”

‘나만의 온도’가 아닌 ‘모두의 온도’를 낮추기 위한 근본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도시 온도를 낮추는 첫 번째 방법으로는 녹지 조성이 꼽힌다. 오충현 동국대 교수는 열섬현상을 줄이기 위한 대안으로 도시 내 수목 중에서도 ‘큰 나무’의 밀도를 높여주는 것을 꼽았다. 오 교수는 “큰 나무를 심는 것이 체감온도를 낮출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큰 나무는 ‘도시의 양산’ 같은 역할을 해서, 콘크리트로 노출된 지역과 큰 나무 그늘 지역의 온도차는 10도씩 난다”고 했다. 땅에 물을 뿌리면 기화열 때문에 잠시 시원해지는 것처럼, 나무는 그늘 뿐 아니라 수증기를 바깥으로 내뿜으면서 반경 25m의 기온을 2도쯤 낮추는 효과도 있다. 주차장에 잔디를 까는 것, 옥상 녹화나 벽면 녹화 등의 녹지 사업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박찬 서울시립대 교수는 “도시와 외곽 지역의 기온 차이는 적게는 2도, 많게는 5~6도까지 난다”며 “특정기간에 휴가를 촉진하는 등의 수요관리의 방법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녹지가 균등하게 조성되고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생명의 숲 최승희 정책활동팀장은 “지자체별로 돈이 많은 곳은 녹지율이 높고, 가난한 지자체는 낮은 ‘녹지 불평등’이 있다. 공원들이 지역별로 균등하게 분포되고 있는지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했다.

녹지 조성이 도시환경을 개선하는 방법이라면, 휴가와 휴식을 늘리는 식의 ‘노동환경’을 바꾸는 방법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배 팀장은 “근본적으로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인 ‘기후위기 적응 정책’을 보완해야 한다”며 “동남아처럼 점심시간을 길게 가지거나, 출근시간을 당기고 오후 일찍 업무를 마치는 등의 대책에 필요하다”고 했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 [뉴스레터] 식생활 정보, 끼니로그에서 받아보세요!
▶ 경향신문 프리미엄 유료 콘텐츠가 한 달간 무료~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