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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찜통 같은 방에서 다한증까지…에어컨 못 켜고 참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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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정한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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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가 없음.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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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생활수급 가정의 상훈(가명·12)이는 요즘 하루 세번 샤워를 한다. 폭염에 다한증까지 있어 땀이 계속 나서다. 찬물이 그나마 더위를 잠시나마 잊게 만든다.

35도를 웃도는 불볕더위가 찾아왔지만 코로나19 상황으로 갈 곳이 없다. 집에 있는 에어컨은 연식이 10년도 넘은 구형으로 효율이 높지 않고, 월말에 청구될 전기요금이 겁나 틀 수가 없다.

배달기사로 일하던 아버지는 사고로 지난해 발목 신경을 다쳐 직장을 잃었다. 1년 가까이 한시적 생계비, 근로장려금, 긴급재난지원비 등으로 버티다가 이달에는 기초생활수급비 약 140만원이 수입의 전부다. 여름철 월 6만~9만원이 청구되는 전기요금은 버겁다.

한낮 실외 최고기온이 35도를 찍을 때, 상훈이네 실내온도는 32도. 더위를 식히려 창문을 열고 싶어도 30년도 넘은 주택이라 고장난지 오래다. 현관문만 열고 선풍기를 켜지만 좀처럼 바람이 안 통해 사우나와 다름없다. 도저히 무더위를 버틸 수 없을 때는 에어컨을 아침에 1시간, 자기 전 1시간만 튼다.

방학 직전 코로나로 모든 수업이 비대면으로 전환됐을 때는 더 끔찍했다.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 찜질방 같은 집에서 휴대전화로 수업을 봤다. 물려받은 컴퓨터는 오래 전 망가졌다.

상훈이 어머니 A씨는 기자와 통화에서 "예민한 나이의 아이들이 무더위쉼터에서 비대면 수업을 받기는 어렵다"며 "어르신들도 많이 계시는데 피해를 끼칠 수 있어 꺼려진다"고 했다.

그는 "월수입 140만원 중 전기요금으로만 9만원이 나가면 정말 생활이 힘들다"며 "(저소득층에) 에어컨 달아주는 사업이 있지만 설치하더라도 (전기요금 때문에) 마음대로 틀 수 없다"고 털어놨다. 땀 흘리며 자는 상훈이를 볼 때마다 A씨의 마음은 쓰리다.


최빈곤층 가구당 에어컨 0.5대…"노후화돼 전기요금 더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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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폭염까지 겹친 올여름을 버티기 힘든 것은 상훈이네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처분소득의 10% 또는 최소생계급여 중 약 7만원 이하를 광열비로 썼을 때 '에너지 빈곤층'으로 분류되는데, 지난해 기준 이는 총 127만 가구에 달한다.

특히 저소득층은 에어컨 보급률도 낮았다. 소득이 100만원 이하인 가정은 2019년 기준 에어컨을 0.5대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 가까이가 에어컨 한 대조차 없었다는 의미다. 소득이 높을수록 에어컨 보급률도 올라 가구 소득이 701만원 이상인 가정의 경우 에어컨을 1.38대 보유했다. 전체 가구 평균은 0.97대로 한 대에 가깝다.

설령 에어컨이 있더라도 저소득층이 무더위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에어컨은 연간 전력사용량(약 69만Wh)이 가장 많은 가전 기구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저소득층 대부분이 노후화된 장비를 사용해 전력효율이 낮다.

아동옹호대표기관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관계자는 "에너지 빈곤층은 노후화된 집에 거주해 일반적으로 냉방비가 더 많이 든다"며 "더위가 길어지는데 장기간 제품을 사용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는 에너지 바우처 등을 통해 전기요금을 지원하지만 충분치 않다"며 "지속적으로 지원규모를 확대하고 낡은 냉방기를 교체하면 에너지 빈곤층의 어려움과 함께 불필요한 전력 소모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단은 현재 '기후일기 챌린지' 등 SNS 활동을 통해 더위 속 고통받는 아동에 대한 지원을 요청 중이다.

정한결 기자 hanj@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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