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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금메달 못 따면 反애국자”…메달 따고도 눈물 흘리는 中선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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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도쿄올림픽 탁구 혼합복식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중국 대표팀./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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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 민족주의 움직임으로 도쿄올림픽 참가 선수들의 심리적 압박이 심각하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중국 내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한 선수들에게 ‘반 애국자’라는 비난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3일(현지시간) BBC는 “중국 선수들의 경기력에 대한 압박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며 “중국 민족주의 성향 네티즌들이 금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을 애국심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중국 네티즌들은 일본 선수들을 상대로 한 경기에서 더욱 공격적인 반응을 쏟아냈다.

지난달 26일 도쿄올림픽 탁구 혼합복식에서 중국팀은 일본팀에 패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중국의 리우 시엔은 시상식 후 소감에서 “팀을 망친 것 같다”며 “모두에게 죄송하다”고 눈물을 흘렸다. 그와 함께 복식 호흡을 맞춘 쉬신도 “전국민이 결승전을 고대하고 있었다. 중국 대표팀이 이번 결과(은메달)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중국 네티즌들은 은메달을 따낸 두 선수를 향해 “국가를 망쳤다”는 악성글을 남기며 몰아세웠다. 그런가 하면 일부 네티즌들은 당시 결승전에서 중국팀과 맞붙은 일본 대표팀 미츠타니 준과 이토 미마를 향해서도 악의적인 글을 남겼다. 또 당시 결승전 심판이 일본팀에 편파적인 판정을 내렸다는 일방적인 주장도 펼쳤다.

중국 네티즌들의 공격을 받은 건 탁구 선수들 만이 아니다. 배드민턴 남자 복식 결승전에서 대만 대표팀에 패한 선수들도 “잠에서 안 깬 거냐. 노력도 안 하느냐” 등의 비난을 받았다. 여자 10m 공기소총 결승전에 오르지 못한 왕루야오는 “나라 약해지라고 올림픽에 내보낸 거냐”는 공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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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올림픽 공기소총 10m 결선에서 이번 대회 첫 금메달을 목에 건 양첸./신화통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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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을 목에 걸고도 공격을 피하지 못한 선수도 있다. 이번 대회 첫 금메달의 주인공인 사격 선수 양첸은 과거 자신의 웨이보(중국의 소셜미디어)에 올린 나이키 신발 컬렉션 사진으로 공격 대상이 됐다. 나이키 불매에 앞장서야 하는 중국 대표팀 선수가 나이키 신발을 수집했다는 이유에서다. 나이키는 소수 민족 강제 노동 의혹이 불거진 중국 서부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 제품과 원자재를 공급받지 않겠다고 밝혔고, 중국 내 불매 운동의 대상이 됐다. 결국 양첸은 해당 게시물을 삭제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민족주의 성향이 짙은 중국 네티즌들에게 올림픽 메달은 단순한 스포츠의 영광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지 못한 선수들을 반역자로 치부한다는 것이다.

플로리안 슈나이더 네덜란드 라이덴 아시아 센터 소장은 “이 사람들(민족주의 성향 네티즌)에게 올림픽 메달은 국가적 기량과 존엄성을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수단”이라며 “그런 맥락에서 보면 외국인과의 경쟁에서 실패한 선수는 국가를 실망시키거나 배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민족주의는 최근 몇 년 동안 급격히 증가했다. 중국에 대한 국제적 비판이 민족주의 영향력을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 조나단 하시드 아이오와 주립대학 정치학 박사는 “소위 ‘소분홍’(小粉紅, little pink)세대로 불리는 강한 민족주의 감정을 가진 젊은이들이 온라인에서 편향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국가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 점점 용납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목소리가 더 증폭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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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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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7월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아 “중국을 괴롭히면 피를 흘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슈나이더 박사는 “중국 국민은 국가의 성공이 중요하다는 말을 들었고, 중국 선수들은 도쿄에서 성공을 쟁취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민족주의 목소리가 중국 대다수의 의견을 대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하시드 박사는 “유일하게 허용되는 목소리가 민족주의자의 목소리라면 이들의 실제 수에 비해 온라인에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웨이보에는 중국 대표팀 선수들을 향한 분노의 글 외에도 선수들에 대한 응원글도 올라왔다. 또 중국 국영 언론이 과열된 네티즌들을 향해 당부의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신화통신은 “금메달과 승패에 대한 합리적인 시각을 확립해 올림픽 정신을 만끽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자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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