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안전 통행 제공' 협상 뒤집으며
직선거리 5.5㎞의 짧은 길 '통곡의 벽'으로
통행 허가증 있어도 무용지물…채찍 날아와
미국 협력자 8만명, "안전통행 보장 못해"
지난 18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에서 카불 공항으로 이동하려는 시민을 몽둥이로 때리는 탈레반의 모습. [CNN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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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뉴욕타임스(NYT)는 카불 공항으로 가는 길은 탈레반으로 인해 각종 위험과 혼란으로 가득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탈레반은 민간인들에게 공항까지 안전한 통행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우리에게 알려 왔다”면서 “우리는 그들이 이 약속을 지킬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한 지 하루 만이다.
NYT에 따르면 공항으로 향하는 길 곳곳에는 탈레반의 검문소가 세워졌다. 이곳에서 탈레반은 사람들의 짐을 검사하며 미국과 협력한 이들을 향해 채찍질과 구타를 일삼고 있다. 다른 길을 이용하려 해도 각 지역에서 순찰하는 탈레반들의 눈을 피해 이동해야 하는 실정이다.
탈레반 점령한 카불서 공항 가려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
이날 CNN 아프간 특파원 클라리사 워드가 공항으로 향하는 중앙로에 들어서자 수많은 아프간인들은 자신의 미군 협력 이력을 알릴 수 있는 증명서를 흔들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곧 탈레반 전사들이 현장에 와 총으로 위협하며 사람들을 내쫓았고, 위협을 받은 워드도 차량으로 돌아가야 했다.
워드는 “이들은 통역사로 활동하는 등 ‘미국’을 위해 일했던 사람들”이라며 “지금도 여기저기선 총소리가 들리고 있고, 이들은 공항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힘들게 공항 앞에 도착한 소수의 사람들도 출입구를 지키는 탈레반들에 가로막히고 있다.
NYT는 “칼라시니코프 돌격소총을 어깨에 둘러멘 탈레반 지휘관이 연신 ‘이 문은 막혔다. 외국인과 허가 서류 소지자만 지나갈 수 있으니 돌아가라’고 외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CNN도 “미국으로부터 입국 허가증까지 받은 아프간 남성이 탈레반의 저지에 막혀 공항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에 아이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높은 담을 넘어 공항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탈레반이 하루 만에 약속을 뒤집었지만, 미국 정부는 우선 공항 내부의 치안 사수에 집중한다는 입장이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도 언론 브리핑에서 “공항을 확보하는 게 현재 최우선 과제이며 이를 방해하는 어떤 것도 원하지 않는다”면서 “공항 밖으로 나가서 더 많은 사람들을 데려올 수 있는 역량이 없다”고 밝혔다.
16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국외 탈출을 위해 주민들이 담을 넘어 공항으로 들어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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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주재 미국 대사관도 18일 공지문을 통해 “공항을 포함해 카불의 안보 상황이 계속해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며 “미국 정부는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으로의 안전한 이동을 보장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현재 아프간에는 미국인 1만1000명, 미국 조력자 아프간인과 그 가족 8만명이 있다. 미국 정부는 한 시간에 1대씩 항공기를 이륙 시켜 하루 5000~9000명씩, 8월 31일까지 이들 모두에 대한 후송 작전을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당초 기대와 달리 대피 인원도 하루 2000명 수준에 머물고 있어 현 상태가 유지된다면 많은 이들이 아프간에 남겨지게 된다.
논란이 커지자 바이든 대통령은 18일 미 ABC 뉴스 인터뷰에서 “만약 (아프간에) 미국인이 남아 있다면 우리는 그들이 모두 빠져나갈 때까지 머무를 것”이라며 “철군 시한을 이달 31일 이후로 연장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김홍범 기자 kim.hongbu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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