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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탈레반, 아프간 장악

아프간 사태로 유럽에서 ‘전략적 자율성’ 목소리 다시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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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유럽연합(EU) 외교 수장인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가운데)가 17일(현지시간) 회원국 외무장관들과 아프가니스탄 상황에 대한 화상회의를 하는 모습이 벨기에 브뤼셀 회의장에 설치된 화면에 비치고 있다. 브뤼셀 |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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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철수와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점령 이후 유럽에서는 독자 방위력을 키워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자는 목소리가 다시 힘을 얻고 있다. 미국의 국익 우선 전략이 드러난 만큼 유럽 동맹국들도 언제까지나 미국의 방침에만 따라갈 수는 없다는 판단이다.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하는 기류는 18일(현지시간) 영국 하원에서 열린 아프간 사태 관련 비상회의에서 확인됐다. 다수의 의원들이 아프간 방어를 위한 영국의 개별적인 노력이 없었던 문제를 지적했다. 테레사 메이 전 총리는 영국이 미국 철수 후 아프간 정부를 계속 지원하기 위해 다른 동맹국들을 모으지 않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고, 걱정된다”며 “영국 외교정책에서 주요 실패 사례”라 지적했다. 토비아스 엘우드 국방위원장도 “영국이 아프간을 떠나선 안 됐다”고 비판했다.

아프간 참전 용사인 톰 투겐트하트 하원 외무특별위원장은 전략적 자율성을 강화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새 비전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는 향후 하나의 동맹국이나 한 명의 리더가 내리는 결정에 의지하지 않고, 유럽의 나토 동맹국들에 다시 힘을 불어넣는 비전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앞서 유럽연합(EU)의 전략적 자율성을 요구해온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주장과도 유사한 것이다.

영국의 분위기는 EU 차원으로도 확대될 조짐이다. 나탈리 루아조 EU 의회 국방소위 위원장은 이날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에 기고한 글에서 “새 미국 지도부가 국제 문제에 더 많이 관여할 것이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라며 “유럽이 전략적 자율성을 강화해 필요할 때 언제든지 자율적으로 행동하거나 동맹국과 협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아프간 사태로 EU의 전략적 자율성 논의가 한 걸음 나갈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앞서 EU는 1990년대 중반 발칸지역 안보 위기를 겪은 뒤 나토에 대한 의존을 줄일 필요성을 느꼈으며, 꾸준히 자체적인 방위 능력을 강화했다. 최근에는 러시아의 위협이 커지면서 방위력 증강의 필요성이 더 커졌다. 하지만 아직 수송이나 정보·감시능력 등이 부족해 미국 없이 독자적으로 작전을 수행하기는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U의 전략적 자율성 확보에는 미국의 외교 노선도 주요 변수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일방주의적 노선을 보이고 방위비 압박을 강화하자 전략적 자율성을 요구하는 프랑스의 목소리가 커졌다. 조 바이든 정부는 나토의 결속을 강조하며 유럽의 환영을 받았으나, 이번 아프간 사태로 EU의 불안감은 다시 커졌다. 데이브 키팅 애틀랜틱카운슬 유럽센터 선임연구원은 “갑작스러운 아프간 철수로 동맹을 보호하겠다는 미국의 약속과 나토의 진정성에 의문이 나오고 있다”라며 “이는 EU의 독자 방어 능력에 대한 논의를 가속화할 것”이라 말했다.

다만 유럽의 독자 방어론이 현실화되기까진 난관이 많다. 나토 체제에서는 미국과 영국 등 비EU 국가에 방위비를 의존할 수 있었으나, 자체적인 방어 능력을 강화하려면 EU의 재정 부담이 늘어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다수 EU 국가들이 국방비로 국내총생산(GDP)의 2%도 지출하지 않는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이날 의회에서 “영국이 미국 없이 별도의 연합을 결성해 작전을 실행하는 것은 환상에 가깝다”고 말했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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