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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샘플만 수만마리"…비린내 없앤 생선구이, 이것 때문에 가능했다?[언박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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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HMR 제품들이 한 대형마트에 진열돼 있다. 한희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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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한희라 기자] ‘뿌리채소가 들어간 영양밥, 즉석 수타면을 능가하는 냉동면, 전자레인지에 데우면 바로 먹을 수 있는 생선구이, 닭껍질·닭똥집·돼지껍데기 같은 특수부위 안주’

‘설마 이런것도 가능할까?’ 싶은 가정간편식(HMR) 제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무균화 기술, 비린내 제어 기술, 냉장유통 기술 등 갈수록 고도화되는 첨단 과학이 식품에 적용되면서다. ‘요리는 과학이다’는 말이 이렇게 딱 맞아떨어지는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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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R의 진화…‘손품’이 아니라 ‘첨단과학’ 덕분

HMR은 미리 가공한 식재료를 간단한 조리를 거쳐 먹을 수 있도록 포장한 상품이다. 어느 정도 조리가 된 상태에서 가공, 포장하기 때문에 데우거나 끓이는 등 단순한 조리 과정만 거치면 음식이 완성된다.

그동안 HMR은 맛이나 영양은 별로 없지만 가성비 때문에 먹는 식품 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이런 인식조차 바뀌고 있다. 한끼 떼우는 대용품이 아니라 근사한 상차림까지 가능하게 만드는 똘똘한 음식으로 격상된 것이다.

밥, 국물, 반찬 등으로 이뤄진 한식은 특히나 조리과정이 복잡해 HMR로 만들기가 까다롭다. 이를 극복할 수 있게 만든 것은 살균, 온도, 포장 등 기술이 진화한 덕분이다.

HMR 업계의 ‘시조새’격인 즉석밥의 경우 보존기간이 무려 9개월이다. 그것도 상온 보존이다. 출시 초기만해도 ‘설마 밥을 상온에 보관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즉석밥을 냉장고 안에 켜켜이 보관하는 의심 많은 소비자들도 있었다 .

장기 보존과 밥맛 유지의 비결은 완벽한 살균제어에 있다. 쌀과 물이 원물인 즉석밥은 우선 고온고압 스팀살균으로 미생물을 차단해 완전 무균 상태로 만들어진다. 이어 외부 공기 유입을 차단하는 포장을 하는데, 한낱 비닐처럼 보이는 즉석밥의 뚜껑은 4겹 특수 필름으로 구성된다. 이 얇은 비닐이 음식물의 변질을 막고 유통 중에 생길 수 있는 충격도 차단해준다.

CJ제일제당 소속 연구원은 “즉석밥 공정은 반도체 공장 수준의 청결을 유지한다. 밥맛을 지키기 위해 당일도정한 쌀을 사용하고, 공정과정에서 한국인의 입맛에 가장 잘맞는 찰기를 잡아낸다”면서 “기술이 진화하면서 기존에는 불가능했던 잡곡밥, 영양밥, 약밥, 통곡물밥 등 다양한 밥이 HMR로 탄생할 수 있게됐다”고 말했다.

즉석밥 용기 모양에도 밥맛을 살리는 기술이 녹아있다. 즉석밥은 대부분 원형 용기를 도입하는데, 원형이 전자레인지의 전자파가 가장 효율적으로 닿는 형태여서 사방에서 고르게 열이 전달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하면 조리시간이 단축돼 수분 손실이 줄면서 밥맛도 좋아진다.

그렇다고 즉석밥이 둥근 용기만 있는 건 아니다. 도시락 모양의 즉석밥 ‘순수한 밥’을 판매하는 하림의 관계자는 “둥근 용기든, 네모난 용기든 나름의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둥근 즉석밥은 대부분 뚜껑이 살짝 눌려 있는데, 냉각과정에서 수축된 탓”이라면서 “하림 ‘순수한 밥’은 뜸들이기 과정이 있고 열을 서서히 식히기 때문에 필름과 밥이 닿지 않는다. 사각형으로 면적이 크다보니 공간 때문에 밥알이 부드럽게 살아있다”고 말했다. 사각형 용기는 밥에 소스를 얹어 먹는 소비자들이 선호한다고 한다. 필름과 밥 사이 공간에 소스를 뿌려 그대로 데울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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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사벽이던 수산물도 HMR로...샘플만 수만마리 거쳐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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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린내가 나고 뼈가 많아 제품화가 힘들었던 상온 수산물도 첨단과학 기술의 발달로 HMR로 속속 탄생하고 있다.

식품업계는 수산물 HMR이야말로 가장 많은 한계를 뛰어넘은 제품이라고 입을 모았다. CJ제일제당의 순살 고등어구이·삼치구이는 비린내 제어, 겉바속촉 식감 등을 구현하기 위해 1년가량 연구개발을 통해 출시됐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수산 HMR 시장이 걸음마 단계이다 보니 설비를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어려움이 있었는데, 공장에서 수만마리의 생선을 샘플로 생산한 끝에 안정화된 생산 라인을 구축했다”고 말했다.

생선 비린내를 잡는 것만해도 어종에 따라 소재를 달리해야 했다. 고등어는 사과추출물을 적용해 비린내의 원인인 트리메틸옥사이드(TMA)를 저감화했고, 삼치와 가자미는 복합조미소재와 밀가루를 사용해 비린내를 잡았다.

생선에는 또 다량의 불포화 지방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런 지방이 산화돼 냄새를 유발하기 때문에 300도 이상의 과열증기를 활용해 저산소 조건에서 구워 지방산화를 최소화했다고 한다. 포장시에도 산소를 제거하는 게 필수다. 그래야 유통기한 내 갓 구운 듯한 식감을 유지할 수 있다.

생선구이는 가정에서 팬으로 요리할 때도 ‘겉바속촉’의 식감을 살리기가 쉽지 않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300도 이상의 과열증기 오븐을 사용해 생선 내부까지 단시간에 익혀 수분손실을 최소화하면서 풍미를 살렸다.

기술이 간편식의 다양화를 가능하게 하면서 식품기업의 특허 경쟁도 치열하다. 식품업 관련 특허와 실용신안 출원 건수는 지난해 사상 최대를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허청에 따르면 2011년 1407건이던 출원 건수는 2017년 2560건에 달했고 지난해에는 약 3000건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니어, HMR 주력 소비층으로...차례상에도 HMR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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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장기화는 HMR 시장의 성장에 기폭제가 됐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국내 HMR시장 규모는 2016년 2조2700억원에서 내년 5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HMR시장의 폭발적 성장은 제품의 다양화로 이어졌다. 간단한 레토르트나 즉석밥 위주였던 HMR은 국·탕·찌개는 물론 반찬류 등으로 다변화됐고 유명 맛집과 협업한 제품도 쏟아졌다. 차별화 경쟁 덕분에 특정 국가 음식, 특정 계층을 겨냥한 간편식 개발도 줄을 잇고 있다.

심지어 명절 상차림이나 제사상에도 간편식을 활용한다. 손수 차린 음식이여야 한다는 인식을 깰 만큼 HMR이 다양해지고 질도 좋아지면서다. 송편, 전, 나물 무침, 갈비찜, 잡채 등 하루 종일 마련해야 하는 음식이 HMR을 활용하면 1시간도 안 걸린다. 식품업체들이 앞다퉈 관련 신제품을 쏟아내면서 소비자들은 그저 취향 따라 고르기만 하면 된다.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시니어 계층의 HMR에 대한 인식이다. 시니어 가구의 HMR 제품 침투율을 보면 국·탕·찌개는 2015년 9.7%, 2018년 26.5%로 높아졌고, 조리냉동은 24.6%에서 61.4%로 상승했다.

시니어 소비자의 HMR 구매는 즉석밥, 국물요리, 냉동만두, 조리냉동 등 모든 카테고리에서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20~30대보다 반찬을 갖춰 먹는 시니어 세대의 특성상 향후 1~2인 시니어가구가 HMR의 주력 소비층이 될 것으로 식품업계는 보고 있다. 이들의 가공식품 구입 금액도 늘고 있어 앞으로 시니어 맞춤형 HMR 시장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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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r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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