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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추석 안쇠면 불효? 명절 모이기 힘들땐 다른 주말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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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우리 예절 2021 新禮記]

〈2〉명절 문화, 바꿔도 괜찮아요

‘밀키트 차례상’도 정성 다하면 OK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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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가 어른들은 ‘괜찮다’고 하시지만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일까요?” 서울 노원구에 사는 주부 서모 씨(36) 가족은 추석 때 양가 모두 방문하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미리 선물을 보내고 영상통화로 인사드릴 계획이다. 가족이 함께 결정했지만 마음은 편치 않다. 서 씨는 “명절 풍습을 마음대로 생략하고 줄이는 것이 예(禮)에 어긋나는 건 아닌지, 어른들이 섭섭해하시진 않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이후 맞이하는 세 번째 명절. 정부는 추석 이후 방역과 일상이 함께하는 ‘위드(with) 코로나’ 전환을 예고했다. 코로나19와 공존하는 일상이다. 이제 집집마다 “새로운 명절 풍습을 만들자”는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예법’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혹시 실례는 아닐까’ ‘전통의 의미가 완전히 퇴색하는 건 아닌가’ 걱정하는 이들을 위해 동아일보 기자들이 전문가에게 물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문가들이 형식보다 더 중요하게 꼽은 기준은 ‘가족의 화목’이었다.

설-추석 안쇠면 불효? 명절 모이기 힘들땐 다른 주말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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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계속되면서 명절도 변해야 한다는데… 왜 이렇게 현실에선 바꾸기 어렵죠?”

서울 성북구에 사는 이모 씨(41·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올해 설 연휴를 앞두고 이 씨는 시부모에게 “4명 이상 집합금지니 따로 모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순간 말 그대로 분위기가 ‘싸해졌다’. 이 씨는 “시베리아를 경험했다”고 털어놨다. 겨우 인원을 나누는 방식으로 거리 두기 기준을 맞췄지만 명절 분위기는 나아지지 않았다. 추석이 다가오면서 이 씨는 어떻게 지내야 할지 ‘눈치 보기’ 중이다. 많은 가족이 비슷한 걱정을 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가족의 화목만 생각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명절 문화를 바꿀 키는 어른들이 쥐고 있다”고 강조했다.

○ “꼭 명절에만 모여야 하나요?”

아니다. 서애 류성룡 선생 종가가 있는 안동 하회마을은 추석을 쇠지 않는다. 추석에는 햇곡식이 충분히 여물지 않아서다. 그 대신 음력 9월 9일인 중양절(重陽節)을 추석처럼 지낸다. 서애 선생 종손 류창해 씨(65)는 “우리 집안에서 추석은 해외여행을 가는 등 부담 없이 쉬는 기간”이라며 “각 집안 사정에 맞춰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명절이 설과 추석만 있는 것도 아니다. 과거 조상들은 단오 같은 절기도 설과 추석 못지않은 명절로 쇠었다. 전문가들은 “설이나 추석을 쇠지 않는 것이 곧 불효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명절이 어려우면 다른 주말이나 가족에게 의미 있는 날로 정해도 된다는 얘기다.

○ “줄줄이 제사, 합쳐도 되나요?”

그렇다. 석주 이상룡 선생 종가는 4대 조상(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의 제사 8개를 광복절인 8월 15일에 몰아 지낸다. 독립운동가를 배출해낸 가문으로 광복절에 조상들을 기리기 위해서다. 동시에 후손들의 부담을 덜자는 의미도 담았다. 석주 선생 종손 이창수 씨(56)는 “연간 제사를 8번 지내는 것은 자식들이 뿔뿔이 흩어져 사는 지금의 현실과 맞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여러 제사를 합쳐 한번에 지내는 것을 ‘합사’ 또는 ‘합제’라고 부른다. 옛 문헌에는 선조들이 추석 차례를 11월에 있는 ‘묘사(무덤 앞에서 지내는 제사)’와 합쳐 한번에 쇠는 등 합사를 적극 활용해온 기록도 있다.

○ “차례상 음식, ‘밀키트’는 안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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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다. 정성이 중요하지, 음식 가짓수와 형식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종가와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종가들의 차례상은 떡과 과일 등으로 간소하다. 전과 같은 기름 두른 음식도 올리지 않는다. 특히 추석에 차례를 지내지 않는 집이 많다. 최근에는 데우기만 하면 음식을 간단히 만들 수 있는 ‘밀키트’가 인기다. 나물, 잡채, 동그랑땡 등이 대표적이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올해 설 명절 간편식은 지난해 추석 대비 두 배가량 많이 팔렸다.

간편식, 사온 음식 등은 물론이고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만 있다면 ‘냉수 한 잔’도 괜찮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는 “간편식도 조상을 기리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며 “과거 결혼식의 예법은 위패 앞에서 고하는 것이었지만 최근 다양한 방식이 존중받듯, 제사라고 바뀌지 말란 법은 없다”고 말했다.

○ “‘줌(ZOOM)’ 제사, ‘영상통화’ 괜찮아요?”

괜찮다. 우리 선조의 제사 풍습 중에서도 ‘줌 제사’와 유사한 전통이 있다. 선조들은 타향에 있는 사람이 명절이나 기일에 맞춰 고향 방향 또는 조상의 무덤이 있는 곳을 바라보며 지내는 제사를 ‘망제(望祭)’라고 불렀다. 벼슬을 해 고향에서 먼 곳으로 부임할 경우에는 아예 사당을 그린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를 가지고 기일에 그림에다 절을 했다. 감모여재도에는 사당뿐 아니라 제사상까지 차려져 있어 큰 비용이나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제사를 지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안승준 한국고문서학회장과 김미영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은 “망제와 감모여재도를 보면 조선시대부터 이미 비대면 차례를 지낸 것”이라고 설명한다.

○ “‘우리 집 명절은…’ 어떻게 바꾸자고 할까요?”

어른이 먼저 말을 꺼내고, 가족 간 합의를 바탕으로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명절 문화에서 가족관계는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집안 어른들이 먼저 배려해 이야기하는 것이 원만한 소통 방법”이라고 말했다.

다만 명절 문화가 ‘가족 내 위계’를 중시하는 유교적 관습과 관련이 깊다는 점에서, 어른이 먼저 나설 때 갈등이 적었다는 의견이 많았다. 종가들도 종손이 이야기를 주도하되 문중의 합의로 변화를 만들었다. 고서에서도 문중 합의만 있으면 시대와 개별 사정에 맞춰 집안에 맞는 예를 갖춰나갈 것을 권하는 구절이 많다. 새로운 예법에 권위가 깃들려면 구성원의 합의가 필수다.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박정훈 인턴기자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4학년
이승우 인턴기자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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