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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대출 혹한기가 온다… 연말까지 은행 대출 月7000억 줄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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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 총량 규제 후폭풍

5대 은행 대출 올해 11조 남아 실수요자들 피해 가능성 커져

조선일보

금융당국이 급증하는 가계대출을 점점 더 강력히 통제하고 나서면서 연말까지 대출 '혹한기'가 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최근 서울 시내 한 은행의 대출 창구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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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결혼하면서 서울 영등포구에 방 2개짜리 집을 마련한 30대 김모씨는 올해 둘째가 태어나 집을 늘려 이사하려고 대출을 알아보았다. 집값이 많이 올라 같은 동네 큰 평수로 옮기려 해도 4억원은 더 있어야 했다. 김씨는 “그동안 모은 돈에 대출을 받으면 될 줄 알았는데 은행에서 ‘연말 대출 상황이 어찌 될지 모른다’고 한다”면서 “이사를 미루기로 했다”고 말했다.

1800조원을 넘어선 가계 대출 증가세를 꺾겠다는 금융 당국의 압박이 강해지면서 연말 대출이 얼어붙는 ‘혹한기’가 닥칠 전망이다. 금융 당국은 지난해 코로나 위기로 중단했던 가계 부채 총량 규제를 올해 재개하며 은행별로 대출 증가율을 작년 대비 6% 이내로 묶으라고 했다.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 등 5개 주요 은행의 대출 상황을 조사한 결과 ‘6% 룰’을 맞추려면 올해 말까지 추가로 대출해 줄 수 있는 금액이 11조5000억원 정도만 남은 것으로 집계됐다. 9월부터 연말까지 매달 약 2조9000억원 남짓만 대출이 가능하다. 8월까지 월 평균 대출 증가액이 3조6000억원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7000억원 정도가 모자라게 된다. 이들 은행이 소속된 5대 금융지주의 대출액은 전체의 절반을 차지한다.

농협은행은 대출을 매달 5000억원씩 줄여야 총량 규제를 맞출 수 있다. 지난 7월 대출 증가율이 7.1%로 정부가 정한 6%를 넘었고, 8월에는 7.6%로 더 높아졌다. 그동안 매월 대출을 평균 7200억원가량 늘렸던 하나은행은 전년 대비 가계 대출 증가율이 4.6%로, 한도가 얼마 남지 않았다. 연말까지 지금까지의 절반 수준인 매달 4000억원 정도만 대출이 가능한 형편이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가계 대출 증가세를 통제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라 대출 축소 압박은 점점 강해질 전망이다. 연말 부동산 거래 감소 등으로 대출 수요가 다소 줄더라도 일률적인 총량 규제로 인한 ‘대출 절벽’으로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총량만 엄격히 관리하면 정말 대출이 필요한 사람이 돈을 빌려갈 수 없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소득과 신용도가 적합한 실수요자라면 대출을 받을 길을 열어놓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그래픽=백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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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는 대출 절벽 우려로 주택담보대출 등을 포기해야 하는지 등을 문의하는 글이 매일 수백 개씩 올라오고 있다. 임대차 3법 등 정부의 정책 실패로 인한 부동산 급등세를 일률적인 총량 규제로 잡으려 한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금융권 관계자는 “초저금리 장기화와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 전세 가격 상승 등으로 대출 증가세가 쉽게 잡히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대출 틀어막는 정책보다는 부동산 가격 안정 대책이 먼저 필요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일부 은행은 이달 들어 대출이 더 늘어나는 상황이라 연말로 갈수록 대출 조이기가 심해질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면 KB국민은행의 작년 말 대비 대출 증가율은 7월까지만 해도 2.6%로 여유가 있었는데 지난달 말 3.6%로 급등했고 지난 14일 4%까지 넘어섰다. 이 추세라면 이달 말에 4.6%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6% 룰’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으로는 연말까지 약 3조8000억원 정도의 대출 여력이 있었는데 한 달 새 1조9000억원으로 반 토막이 나는 셈이다.

대출 한도가 빠르게 소진되자 국민은행은 지난 15일 대출 원리금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를 기존 100~120%에서 70%로 대폭 줄였고 주택·전세자금대출 금리를 인상하는 방법으로 대출 문턱을 높이는 ‘긴급 처방’에 나섰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농협은행이 주택 대출을 축소하자 일부 수요가 흘러들었고 혹시 대출이 막힐지 몰라 미리 받아두려는 이들까지 동시에 몰렸다”며 “지난달 이후 대출 증가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져 어쩔 수 없이 대출 조건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은행권 전체 가계 대출 증가율은 지난 7월 기준 이미 4.7%를 기록하며(한국은행 통계 기준) 금융 당국의 목표치에 빠르게 다가가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 은행권은 연말까지 ‘6% 룰’에 맞추기 위해 전방위적인 대출 축소에 돌입했다. 5대 은행은 최근 마이너스 대출 한도를 일제히 5000만원으로 내렸다. 연봉의 최대 2배까지 받을 수 있던 신용 대출 한도도 ‘연봉만큼’으로 줄였다. 인터넷은행인 카카오뱅크도 개인 신용 대출 한도는 5000만원으로, 마이너스 대출 한도는 5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낮췄다.

[김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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