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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제가 빠지면 누가… 이번 추석도 고향 못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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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별검사소 의료진의 추석나기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둔 16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중구 서울역광장에 마련된 임시선별검사소엔 50여 명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귀향(歸鄕)에 앞서 검사를 받으려는 시민들이 계속 몰리면서, 의료진과 구청 직원들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검사소 관계자는 “매일 방문자가 평균 1000명이 넘고, 주말이 끝난 월요일에는 1200명까지도 온다”고 했다.

서울시는 추석을 앞두고 일일 코로나 확진자가 2000명 수준으로 치솟자, 추석 연휴 내내 이곳을 비롯한 서울 시내 주요 선별검사소를 정상 운영하기로 했다. 서울역 검사소에서 일하는 의료진 4명과 구청 직원 9명도 연휴 중에 나와서 일한다. 각 보건소와 코로나 병동에서 일하는 의료진 역시 마찬가지다.

조선일보

16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코로나 병동에서 김수현(32) 간호사가 휴대폰으로 친구와 영상 통화 중에 손을 흔들며 안부를 전하고 있다. 1년 넘게 사적 모임을 갖지 않았다는 그는 “작년 12월 결혼하고 처음 맞는 추석인데, 양가 부모님을 찾아뵐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장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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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검사소에서 일하는 간호사 추선영(23)씨는 “원래 매년 명절 때마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뵈러 갔는데 올해는 가지 못할 것 같다”며 “추석이 끝나면 고향을 다녀온 분들이 대거 검사를 받으러 오기 때문에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했다. 용산구 보건소에서 일하는 간호사 이지현(27)씨도 “작년 10월에 일을 시작한 이후 고향 충남에 계신 아버지를 한 번도 못 봤다”며 “저희 같은 의료진은 확진자와 동선(動線)이 겹치면 격리해야 하고, 그러면 또 일할 사람이 비기 때문에 연휴가 있어도 고향에 내려가기가 어렵다”고 했다.

코로나 방역의 최일선에서 일하다 보니, 혹시나 가족에게 코로나를 전파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임상병리사 이모(55)씨는 “물론 백신을 맞고 항체가 생겼지만, 아무래도 선별검사소에서 일하다 보니 코로나를 전파할까 봐 걱정되는 게 사실”이라며 “시댁이 있는 광주에는 남편과 아들만 내려가고, 경기도 연천의 친정에는 올해 가지 않을 예정”이라고 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코로나 병동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김수현(32)씨는 “이번 추석에 일산의 시댁과 친정에 들러도 될지 아직 결정을 못 했다”며 “코로나 병동에서 일하다 보니 혹시라도 주변에 옮길까 봐 혼자 ‘자격지심’이 생긴 탓”이라고 했다. 그는 “친구들과도 혹시나 싶어 ‘코로나 끝나고 보자’고 한다”며 “코로나 이전의 명절 분위기가 참 그립다”고 했다.

의료진은 추석에 일하는 것보다, 일부 시민의 가시 돋친 말에 더 상처받는다고 한다. “일부러 아프게 코 찌르는 거 아냐?” “이런 식으로 할 거면 그냥 갈 거야”란 말들이다. 선별검사소에서 일하는 임상병리사 오지윤(29)씨는 “지난 설날도 그랬고, 올 추석도 계속 일할 예정이라 명절에 일하는 건 익숙해졌지만 의료진에게 심하게 짜증 내는 사람들은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간호사 이모씨는 “검사 받으러 오는 분들은 1분간 머무르는 곳이지만, 저희는 온종일 있어야 하는 공간”이라고 했다.

코로나 의료진은 추석 연휴에도 현장을 지킬 예정이다. 작년 12월부터 중앙보훈병원의 감염병 전담병동에서 일하고 있는 간호사 손경리(28)씨는 “다른 사람들 쉴 때 일하는 게 솔직히 쉽지 않고, 부모님도 ‘언제든 힘들면 (고향으로) 내려오라’고 하시지만 제가 처음 취업한 곳인 만큼 끝까지 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지난 2월 간호대학을 졸업한 간호사 임재은(25)씨는 부산의 한 병원 취업을 앞두고 있지만, 1주일 전부터 서울의 선별검사소에 자원해 근무하고 있다. 그는 “학생 때부터 검사소에서 일하시는 의료진분들을 보며 저도 꼭 한번 일해보고 싶었어요. 어쨌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잖아요”라며 웃어 보였다.

[한예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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