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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체조팀 주치의 상습 성범죄, 美사회 전체가 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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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체조 스타 시몬 바일스, 청문회서 래리 나사르 혐의 증언

“팀 관계자·FBI, 학대 사실 묵살… 운동법 잊을만큼 고통스러웠다”

미국의 체조 여왕 시몬 바일스(24)는 올여름 도쿄올림픽에서 체조 역사상 최초로 6개 부문 전 관왕에 오를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그는 대회가 시작하자 “세상의 무게를 어깨에 다 짊어진 기분”이라며 출전을 줄줄이 포기했다. 점프 착지 방법을 잊을 만큼 스트레스가 크다고 토로했다. 대회 마지막 날 평균대 동메달을 따는 것으로 올림픽을 마무리했다.

두 달이 지난 16일(한국 시각). 바일스가 체조복 대신 정장을 차려입고 미국 상원 청문회장 마이크 앞에 앉았다. 그는 울먹이면서 자신의 어깨를 짓눌렀던 무게의 정체를 조목조목 폭로했다.

“저는 올림픽 메달 7개와 세계선수권 메달 25개를 딴 선수이자, 성폭력 생존자입니다. 저와 제 동료들이 겪었던 공포를 그 누구도 더 이상 안 겪게 하려고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래리 나사르는 물론 그의 성범죄가 계속될 수 있도록 방관했던 미국 사회 시스템 전체를 비판합니다.”

래리 나사르(58)는 미국 체조 대표팀 주치의로서 1986년부터 30년에 걸쳐 330명이 넘는 여자 체조선수들에게 상습 성폭행을 저지른 인물이다. 2017년 아동 포르노 소지 혐의로 구속된 뒤 미성년자 성폭행 사실이 잇따라 드러나 최장 360년형을 선고받았다. 나사르가 복역 중인데도 상원 청문회가 열린 이유는 미 연방수사국(FBI)과 미국체조협회, 미국 올림픽위원회의 부실한 대응을 규탄하기 위해서다. 지난 7월 미 법무부는 FBI가 2015년 7월 나사르의 성폭행 신고를 처음 접수하고도 뭉갰다는 내용의 감찰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1년 뒤인 2016년에도 FBI 로스앤젤레스 지부가 같은 내용의 신고를 접수했지만, 수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그사이 선수 70여 명이 나사르에게 추가로 성폭력을 당했다. 일부 FBI 요원은 조사 과정에서 선수들에게 “그게 다냐” “이 사건(나사르의 성범죄)은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다” 등 치욕적인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일스는 매카일라 마로니(26·2012 런던 올림픽 금메달), 알리 레이즈먼(27·런던 올림픽 2관왕), 매기 니콜스(24) 등 다른 선수 3명과 함께 나왔다. 바일스는 “체조 대표팀 관계자들은 내가 나사르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았고, FBI조차 피해 신고를 받고서도 묵살했다. 이로 인해 나사르는 계속 성폭행을 저지를 수 있었다”며 “우리는 당할 만큼 당했다. FBI 요원들과 관련 책임자들을 기소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로니가 울면서 말을 받았다. “열다섯 살에 나사르가 저를 발가벗기고 추행했을 때 ‘이제 곧 죽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는 페도필리아(소아성애자)입니다. FBI는 선수들의 증언을 하찮게 여겼고, 조사도 계속 지연시켰습니다.”

레이즈먼도 폭로했다. “FBI는 나사르와 합의를 보라고 우리를 독촉했고, 몇몇 수사관은 별일 아니라고 깎아내렸습니다. FBI는 명백한 학대 증거를 갖고서도 14개월이나 수사를 방치했고, 심지어 보고서엔 제 증언과 다른 내용이 담겼어요. 그들은 보고서를 위조했습니다.”

크리스토퍼 레이 FBI 국장은 “요원들이 신뢰를 저버린 행동을 했다”며 “피해 선수들을 실망시켜서 미안하다”고 했다.

[양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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