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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언론중재법 언론 자유 위축시켜”···인권위, 국회의장에 ‘신중 검토’ 의견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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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조작보도 개념 모호···고의·중과실 추정 규정도 추상적

“주관·자의적인 해석에 맡겨질 가능성···언론 위축효과 우려”

허위·조작보도 명확히 규정, 고의·중과실 추정조항은 삭제 필요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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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비판을 마주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도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국회의장에게 표명했다.

17일 인권위는 “일부 신설 조항이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판단된다”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국회의장에게 표명한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헌법에 비춰봤을 때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한다고 판단했다. 또 언론이 스스로 처벌을 두려워 해 소극적으로 표현하는 언론의 위축효과도 우려했다.

인권위는 “헌법재판소는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 사회 발전의 초석이 되는 기본적 권리로 표현의 자유 규제에 대한 합헌성 판단은 보다 엄격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며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경우에는 보다 엄격한 비례의 원칙뿐만 아니라 명확성의 원칙, 명백한 위험성의 원칙 등의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인권위는 ‘독소조항’이라고 비판을 받는 조항들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우선 인권위는 ‘허위·조작보도’ 개념이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개정안은 언론 등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허위·조작보도에 따라 피해자에게 재산상 손해 등이 있다고 판단하면 법원이 손해액의 5배 범위 내에서 손해배상책임을 지울 수 있게 했다. 이때 허위·조작보도를 ‘허위의 사실 또는 사실로 오인하도록 조작한 정보를 언론 등을 통해 보도하거나 매개하는 행위’로 규정했다.

인권위는 “언론보도는 확인 가능한 사항을 중심으로 해당 사안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거나 쟁점화를 통해 사회문제로의 여론을 형성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면서 “결과적으로 사실 확인이 미진했거나 일부 오류가 있는 경우 어디까지를 진실성을 갖춘 보도이고 허위 사실에 기반한 보도로 볼 것인지 명확히 확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권위는 “헌법재판소 역시 ‘허위사실’이라는 것은 언제나 명백한 관념이 아니어서 어떠한 표현에서 의견과 사실을 구별해내는 것은 매우 어렵고 현재는 거짓으로 인식돼도 시간이 지난 후에 판단이 뒤바뀌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인권위는 특정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보도행위에 고의·중과실이 있다고 추정하는 규정도 강하게 비판했다. 개정안은 △보복적·반복적으로 허위·조작보도를 한 경우 △ 정정보도·추후보도가 있음에도 별도의 충분한 검증 절차 없이 복제·인용해 보도한 경우 △기사의 본질적인 내용과 다르게 제목·시각자료를 조합해 새로운 사실을 구성하는 등 기사 내용을 왜곡하는 경우를 허위·조작보도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인권위는 고의·중과실 추정요건으로서 ‘보복적’, ‘기사의 본질적인 내용과 다르게’ 등의 표현이 매우 추상적이고 불명확하다고 지적했다. 제목과 시각자료를 조합해 유추할 수 있는 새로운 사실의 범주는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당초 기사가 의도한 주제와 어느 정도 달라져야 본질적인 내용과 다른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인지 등을 명확하게 예측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인권위는 “개정안에서는 보복적 행위에 대한 구체적 예시를 찾아볼 수 없어 ‘보복’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에만 의존해 이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정보를 접하는 주체에 따라 달리 판단할 가능성이 있고 의미 내용이 쉽사리 객관적으로 확정될 수 없어 고의·중과실의 존부가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해석과 판단에 맡겨질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밝혔다.

이에 인권위는 언론의 책임성이 강조돼야 한다는 점과 ‘가짜 뉴스’로 인한 사회적 폐해를 고려할 때 개정안의 입법이 필요하다면서도 독소조항의 개선을 촉구했다. 인권위는 “가짜 뉴스로 인한 사회적 폐해와는 별개로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하려면 헌법에서 요구하는 ‘과잉금지의 원칙’이나 ‘명확성의 원칙’ 등이 엄격하게 준수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헌법재판소는 불명확한 규범에 의해 표현의 자유를 규제할 경우 주체는 자신의 표현이 규제 대상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규제나 처벌을 두려워 해 스스로 표현을 억제하는 ‘위축효과’가 나타난다고 판시했다”며 “일부 조항이 내포하는 추상성·모호성으로 인해 정치적 성향이 다른 비판적 언론 보도나 비리 등을 조사하려는 탐사보도까지 허위·조작보도의 규제 범위로 포섭시킬 가능성을 배제시킬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인권위는 독소조항을 보다 명확하게 구체화하거나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선 허위·조작보도의 개념을 허위성, 해악을 끼치려는 의도성, 정치·경제적 이익을 얻으려는 목적, 검증된 사실로 오인하게 하는 조작행위 등이 포함돼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고의·중과실 추정 규정은 요건 개념이 추상적이고 불명확해 부당한 위축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심기문 기자 do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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