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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막내 매일 아빠사진 본다" 택배점주 아내, 노조원 13명 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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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노조를 원망하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한 40대 김포 택배대리점주의 아내 박모씨가 17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 장기동 김포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박씨는 이날 명예훼손 및 모욕 혐의로 전국택배노조 노조원 13명을 고소했다. 심석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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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둥이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아빠 사진을 보면서 인사를 해요….”

17일 오전 경기 김포경찰서 앞. 6살 막내아들 이야기를 하는 엄마 박모(40)씨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는 보름 전 20여년을 함께한 동갑내기 남편을 잃었다. 지난달 30일 극단적 선택을 한 김포의 한 택배 대리점주 이모(40)씨다. 세 아이의 아버지인 이씨는 유서에 “처음 경험한 노조원 불법 태업과 업무방해 등으로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고 적었다.

남편이 떠난 지 보름이 지났지만 남은 가족은 아직 일상을 되찾지 못한 듯 보였다. 박씨는 이날 택배노조원 A씨 등 13명을 정보통신망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및 모욕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다시는 남편과 같은 피해자가 나오면 안 된다는 결심에서다.

이날 박씨는 고소장을 접수한 뒤 기자들 앞에 섰다. 검은색 옷을 입은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저는 택배노조 소속 택배기사들의 집단적 괴롭힘 행태를 폭로하는 유서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난 CJ대한통운 김포 택배대리점 대표의 아내”라며 운을 뗐다. 박씨는 “전국택배 기사노동조합 소속 택배기사들이 단체 대화방에서 허위 사실이나, 도저히 입에 올리기 어려운 심한 욕설을 올려 남편과 저의 명예를 훼손하고 모욕했다”고 했다. 이씨 부부가 있는 대화방에서도 노골적으로 명예훼손과 모욕을 일삼았다는 게 박씨의 말이다.



“대리점 가지기 위해 남편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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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 한 택배업체 터미널에 마련된 40대 택배대리점주 이씨의 분향소 인근 도로변에 전국 택배대리점 점주들이 보낸 근조화환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이씨는 노조를 원망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지난달 30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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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한 대화방에서 택배노조 소속 택배기사들이 남편을 집단으로 괴롭혀 대표에서 물러나게 하고 스스로 대리점 운영권을 가져가겠다고 하는 걸 보고 놀라움과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고소장에 적시하지 않은 부분도 언급했다. “노조 소속 택배기사들이 남편을 도왔던 비노조원 택배기사를 욕하면서 괴롭혔고 그중 한 분의 아내는 유산의 아픔을 겪기까지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명백한 증거 자료와 이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비노조원 택배기사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사실은 반드시 드러날 것”이라며 “(수사기관이) 사랑하는 남편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이들의 범죄행위를 명명백백히 밝혀달라”고 말했다.



노조 생긴 후 깊어진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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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대리점주가 민주노총 노조로부터 당했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는 유서에서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고 했다. 사진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연합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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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연합회 등에 따르면 지난 5월 이씨가 운영하는 택배대리점 내에 민주노총 소속 노조가 들어서면서 갈등이 점차 심해졌다고 한다. 수가 늘어난 조합원들은 배송수수료, 집하 수수료 등을 인상해달라고 이씨에게 요구했다. 이씨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노조 소속 택배기사들은 일부 업무를 거부했다고 한다.

대리점에 소속된 기사 18명 가운데 12명이 민주노총 조합원인 상황. 결국 이씨와 가족이 그 짐을 짊어졌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일부 택배 기사들이 일손을 거들면서 위기를 넘겼지만, 또 다른 반발로 이어졌다. 택배대리점 구성원이 들어와 있는 카카오톡 단톡방에서는 비노조 택배기사를 향한 조롱과 비난이 연일 이어졌다고 한다. 계속된 상황을 견디다 못한 이씨는 원청업체인 CJ대한통운에 대리점 포기 각서를 냈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날 박씨가 접수한 고소장에는 택배기사 A씨 등 13명이 지난 5월쯤부터 지난달까지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 명예훼손 행위를 30회하고 모욕 행위를 69회를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A씨 등이 단체 대화방에서 이씨가 택배기사에게 돌아갈 돈을 빼돌리는 방법으로 많은 돈을 벌어갔다는 등의 허위사실을 올리고 ‘누구 말대로 XX인 건가…뇌가 없나…멍멍이 XX 같네…ㅋㅋㅋ’ 같은 욕설을 했다는 게 유족 측의 주장이다.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연합회 관계자는 “유서와 단체 대화방에서 오간 피고소인 등 택배노조 소속 택배기사들의 대화를 종합해보면 피고소인들이 고인을 집단으로 괴롭혀 대표에서 물러나게 하고 대리점 운영권을 가져가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고소장을 접수한 뒤 논의를 거쳐 담당 부서에 배정해 수사할 방침이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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