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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57년 전 ‘강제키스 혀 절단 사건’ 재심 항고도 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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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부산 연제구 거제동 부산법원 전경./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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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년 전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의 해당 여성이 재심 요청을 기각한 법원의 결정에 불복해 제기한 항고도 기각됐다.

부산고법 1형사부(재판장 박종훈)는 “재심 기각결정에 대한 항고인 최모(75)씨의 재심 요청을 기각했다”고 17일 밝혔다.

최씨는 지난 1964년 5월 6일(당시 18세)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노모(당시 21세)씨에게 저항하다 그의 혀를 깨물어 1.5㎝ 자른 혐의(중상해죄)로 부산지법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그 이듬해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법원행정처가법원 100년을 정리해 1995년 발간한 ‘법원사’에도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으로 소개돼 있을 정도로 법조계에선 유명한 사건이었다.

최씨는 2018년 미투 운동이 한창일 때 용기를 얻어 여성의전화와 상담하고 여성단체 등의 도움으로 사건 발생 56년 만인 지난해 5월 “(혀 절단 행위의) 정당방위를 인정해 달라”며 부산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이 청구는 2월 기각됐다.

부산지법 재판부는 기각 이유에 대해 “청구인들이 제시한 새 증거들이 재심 사유로 규정된 ‘무죄 등을 인정할 새롭고 명백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성범죄의 보호 법익을 현재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아니라 ‘여성의 정조’, ‘성적 순결’에 두는 사회문화적 관념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던 1960년대의 공판 과정을 지금의 잣대로 평가하고 직무상 범죄라고 단정하긴 어렵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당시 이례적으로 “청구인의 재심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최씨의 용기와 외침이 헛되이 사라지지 않고,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 공동체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커다란 울림과 영감을 줄 수 있도록 ‘성별이 어떠하든 모두가 귀중하고 소중한 존재임을 선언한다”는 내용을 담은 장문의 해명문을 발표했다.

부산고법 재판부는 이 사건 항고 기각 결정문에서 “청구인들이 제시한 증거들이 무죄 등을 인정할 새로운 명확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당시 법원의 소송지휘권 행사는 1960년대 사회적, 문화적, 법률적 환경하에서 범죄의 성립 여부와 피해자의 정당방위 등 주장에 대한 판단을 위해 이뤄진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하였다는 점이 증명되었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씨의 재심 청구 등을 돕고 있는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 재심 기각결정문을 그대로 복사한 듯 똑같다”면서 “사건을 제대로 심리하려는 노력이 있었는지 의심스럽고 재심을 청구하는 성폭력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최씨 측은 지난 10일 이 사건에 대해 재항고했다.

[박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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