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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일 잘하고 건강한 고령자 시대…정년연장보다 인력 재배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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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경·서울대 경제학부 공동기획 Rebuild Korea ③ / 이철희 교수 ◆

매일경제

인구학자로 저명한 이철희 서울대 교수가 본인 연구실에서 매일경제와 만나 인구 감소에 대비한 향후 노동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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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절벽으로 인한 노동인구 소멸. 많은 이들이 머지않은 미래에 닥칠 것으로 우려하는 디스토피아다. 그러나 저명한 인구학자인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노동력 절벽'에 대한 공포가 과장돼 있다"고 했다. 그는 인구가 줄어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감소하는 것은 맞지만, 앞으로 나이 든 사람들이 더 '많이' 일하고 더 '잘' 일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향후 20년간 노동력 총량은 변하지 않거나 오히려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교수는 앞으로 불거질 '진짜' 문제로 산업별 노동력 공급 불균형을 우려했다. 그래서 이 교수는 "단순히 한 직장, 같은 자리에서 더 오래 일할 수 있게 하는 기계적 정년 연장은 무의미하다"며 "산업별 노동력 이동이 용이하도록 노동 공급의 '탄력성'을 획기적으로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계로 못 보는 인구 변화가 있나.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총인구가 감소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통계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사실이 있다. 바로 인구의 질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고령자를 기준으로 초고령사회의 모습을 예단하면 안 된다. 몇십 년 후 고령자들은 지금과 다른 사람들이다. 고학력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 전체에서 대졸자 비중이 현재는 절반도 안 되지만, 20년 후에는 대졸자 비중이 전체 인구에서 3분의 2 정도 된다. 건강도 많이 개선될 것이다.

―'새로운 노인층'을 전제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렇다. 미래 인구 변화를 대비할 때 현 세대는 이전 세대와 달리 물질적 여건·교육 수준의 개선으로 인적 자본을 더욱 두껍게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질적 변화를 감안하지 않으면 미래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전망하게 된다. 지금의 연령별 의료비나 연령별 생산성을 미래에 투영시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저출산·고령화로 노동인구가 크게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그런 우려가 과대하다고 본다. 비관의 주된 근거는 생산연령인구가 빠르게 감소한다는 것인데, 우리가 진짜 따져봐야 하는 것은 생산가능인구가 아니고 실질적 노동력 총량이다. 즉 성별·연령별·학력별 생산성을 반영한 미래 경제활동인구를 추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9년 성별·연령별·학력별 경제활동비율을 기준으로 노동인구 변화를 시뮬레이션해본 결과 앞으로 20년 동안은 경제활동인구 자체가 크게 줄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과 장년층에서 경제활동비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경제활동인구는 오히려 늘어날 수도 있다. 또 우리나라는 앞으로 20~30년 동안 고학력화가 굉장히 빠르게 진행되는데, 이 흐름이 고령화 효과를 상쇄하게 될 것이다.

―저출산·고령화에도 불구하고 미래 노동시장은 끄떡없다는 얘기인가.

▷가까운 장래에 나타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는 노동인구 부족 문제가 아니고 노동 수급 불균형 문제다. 20년 동안 취업자 규모와 취업자의 연령 구조가 산업별로 매우 상이하게 변화하면서 부문별 노동 수급 불균형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젊은 노동인력 수와 비중이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노동인력 고령화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젊은 노동인력 감소는 노동시장에 어떤 충격을 주나.

▷개별 산업이 필요로 하는 인적자본을 탄력적으로 매칭해 공급하는 노동시장의 기능 자체가 약화된다. 학습능력과 적응력, 지리적·사회적 이동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매력적인 노동시장 신규 진입자들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현재는 연간 출생아 수가 60만명대였던 1990년대생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하고 있지만, 5~6년만 지나면 2002년생 이후 세대가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출생아 수가 연간 40만명대로 급감한 세대다.

―노동 수급 불균형 문제를 풀려면.

▷부문 간 노동 이동성이 높아질 수 있도록 교육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대학이 많이 바뀌어야 한다. 새로운 학문 분야나 과정을 용이하게 개설할 수 있게 함으로써 빠르게 변화하는 노동시장에 신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또 여성의 고용 여건 개선이 필요하다. 경력 단절 여성들이 재훈련 과정을 거쳐 산업에 재배치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제고는 인구 변화의 노동시장 파급효과를 완화하는 데 있어서 고령인구의 고용 확대보다 더 효과적이다.

―탄력적 노동 공급을 꾀하기에는 우리 노동시장이 너무 경직적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노동시장 경직성을 강화하는 연공서열에 기반한 임금제도부터 고쳐야 한다. 지금은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 시대다. 기업과 노동시장의 채용·훈련 시스템에도 변화가 요구된다. 청년인구가 급감하기 시작하면 기업은 점차 신규 채용이 아닌 기존 직원의 재교육·재훈련이나 타 분야 출신 인력의 채용과 교육을 통해 필요한 인력을 충원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교육·훈련과 채용 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뜻이다.

―정년 연장 목소리도 많은데.

▷정년 연장을 주장하는 대표적 논거가 노동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밝혔듯 앞으로 20년 동안은 노동력이 전혀 부족하지 않다. 노동력 총량을 늘리기 위한 정년 연장은 필요하지 않다. 그릇된 전제를 붙잡고 다른 부작용을 감수하면서 정년 연장을 강행하자고 하면 곤란하다. 정년 연장에 따른 대표적 부작용은 청년 고용 위축이다. 정년이 연장되면 인건비 부담이 커지고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의 경우 인건비 책정치를 맞추려면 신규 채용을 줄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게다가 이미 우리나라는 나이 든 사람들이 많이 일하고 있다. 우리나라 문제는 고령자들이 일을 오래 못하는 게 아니고 오래 일함에도 고령자 빈곤율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정년 연장으로는 고령자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나.

▷정년 연장 혜택은 상근 정규직 근로자에게 한정될 뿐이어서 정책 실효성이 매우 낮다. 우리나라 50세 이상 일하는 사람의 40%가 자영업자다. 자영업자는 정년 연장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또 나머지 60%인 임금근로자 중 3분의 2는 '법적 정년 보장' 제도와 무관한 곳에서 일한다. 100인 이하 사업장에서는 정년이라는 게 무의미하다. 정년이 유효한 건 공공부문과 대기업뿐인데, 여기서 일하는 이들은 전체 55세 이상 취업자 중 10~20%밖에 안 된다.

"현금지원으론 저출산 해결 역부족…아이 돌봐주는게 더 도움"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해 출산율을 높이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이다.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고 고령화하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만 해야 한다는 지적은 잘못됐다. 저출산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면 재난적인 수준의 비용이 소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출산·고령화 문제의 핵심은 절대적 인구 규모가 아니라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출생 코호트 간 불균형과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다. 기존 대책이 출생아 수를 획기적으로 증가시키지는 못했어도 좀 더 느린 속도로 떨어지게 하는 데는 효과가 있었다고 본다. 다만, 현금만 쏟아붓는 방식의 저출산 대책은 잘못됐다.

―저출산 대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단기적 저출산 대책과 장기적 저출산 대책은 달라야 한다. 단기적 처방은 현금 지원도 효과가 있다. 다만, 여건이 충분하지 않아 결혼과 출산을 하지 못하는 이들을 보조하는 데 집중돼야 한다. 현금 지원은 '경계'에 있는 사람에게만 효과가 나타난다. 돈을 안 줘도 아이 낳을 생각을 했고, 어느 정도 여건이 갖춰진 사람들에게서 현금 지원 효과가 강하게 나타나고 그렇지 않으면 돈을 더 준다고 해도 효과가 나지 않는다.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은.

▷현금 지원이 모든 사람에게 효과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장기적으로는 전반적인 사회 여건을 개선해서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을 늘려야 한다. 한 방편으로 '아이 돌봄' 시스템 자체가 강화돼야 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보육료 지원 정책 효과는 보육시설 공급률에 따라 달라졌다. 안심하고 애를 맡길 수 있는 곳이 우선 늘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근본적인 사회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은 경계에서 이만큼 떨어져 있지만, 그 경계까지 닿게끔 사회 여건이 개선돼야 한다. 사회적 경쟁도 줄고, 근로시간도 줄어야 한다. 미래에 대한 전망이 어느 정도 개선돼야 더 많은 사람들이 출산에 접근할 수 있다.

▶▶ 이 교수는…

△1965년 출생 △서울대 경제학 학사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 석사 △시카고대 경제학 박사 △미국 빙엄턴대 방문조교수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윤지원 기자 / 사진 = 박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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