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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탱크’ 최경주가 가면 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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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A 개척자 최경주, 한국 선수 최초로 시니어투어도 제패

어니 엘스 조언으로 노란 컬러 볼 사용하고 지난주 준우승 이어 정상 올라

아름다운 풍광으로 ‘신이 만든 골프장’이라 불리는 페블비치에서 챔피언 퍼팅을 하고 모자를 벗은 최경주(51)의 머리는 여기저기 하얗게 세어 있었다.

모자 벗은 타이거 우즈가 줄어든 머리숱으로 사람을 놀라게 하듯 최경주의 머리도 세월의 변화를 느끼게 했다. 태평양에서 밀려오는 파도가 끊임없이 코스 옆구리를 철썩철썩 때리는 이 골프장에서 트로피를 들고 웃는 듯 우는 듯 감격에 찬 최경주는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했다.

그는 19년 전에도 그렇게 말했다. ‘한국 골프의 선구자’인 최경주는 2002년 컴팩 클래식에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우승을 차지하고 세상을 다 얻은 듯 감개무량해했다. 서른둘 청년이었던 그가 이제 50세 이상 선수들 무대인 미 PGA 투어 챔피언스 투어에서 또다시 한국 선수 첫 우승을 올렸다.

최경주는 2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의 페블비치 골프 링크스(파72)에서 열린 미 PGA 챔피언스투어 퓨어 인슈어런스 챔피언십(총상금 220만 달러) 대회 마지막 날 3라운드에서 버디 5개와 보기 1개로 4타를 줄여 최종합계 13언더파 203타를 기록, 공동 2위인 베른하르트 랑거와 알렉스 체카(이상 독일)를 2타 차로 따돌렸다.

최경주는 이날 전성기처럼 레이저 같은 아이언 솜씨를 뽐내며 이렇다 할 위기 상황 없이 여유있게 승리했다. 100야드 이내 어프로치 샷은 깃대를 맞히거나 홀에 들어갈 듯했다. 트레이드 마크인 벙커 샷도 여전했다. 이번 대회 기간 최경주와 통화했을 때 그는 “요즘 정말 감(感)이 좋아서 곧 좋은 소식을 전할 것 같다”며 자신감에 넘쳤다. 어니 엘스(남아공)의 조언으로 지난주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노란 컬러 볼도 행운을 가져다 주는 것 같다고 했다. 노란 볼이 분위기를 바꾸고 그린에서 공이 굴러가는 모습도 선명하게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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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주가 27일 페블비치에서 열린 미 PGA챔피언스 투어 퓨어 인터내셔널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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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우승 상금 33만 달러(약 3억8000만원)를 받은 최경주는 지난주 연장 접전 끝에 준우승한 샌퍼드 인터내셔널 상금까지 2주 동안 47만4000달러(약 5억5000만원)를 상금으로 받았다.

미 PGA 정규 투어 8승으로 아시아 선수 최다승 기록 보유자인 최경주가 PGA 투어 주관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제5의 메이저 대회로 불리는 2011년 5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이후 10년 4개월여, 날짜로는 3788일 만이다. 국내 대회까지 따지면 2012년 10월 자신이 주최자로 나섰던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CJ 인비테이셔널 이후 거의 9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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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주가 27일 페블비치에서 열린 미 PGA 챔피언스 투어 퓨어 인슈어런스에서 우승하고 기뻐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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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주는 “챔피언스 투어와 주니어 선수들이 한 코스에서 함께 치르는 대회 방식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며 “10년 만에 우승컵을 들고 한국에 가게 돼 정말 기쁘다”고 했다.

지난해 만 50세가 되면서 최경주가 뛰어든 챔피언스 투어는 ‘58타의 사나이’ 짐 퓨릭과 PGA 정규 투어에서도 우승하는 필 미켈슨을 비롯해 왕년의 메이저 챔피언인 프레드 커플스(미국), 비제이 싱(피지), 레티프 구센(남아공) 등 스타 선수가 즐비하다. 최경주는 “여기도 경쟁이 치열해 우승이 쉽지 않았다”며 “올해 64세인 베른하르트 랑거도 여전히 멀리 치고 스코어 관리도 잘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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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주는 지난 고난의 10년을 되돌아보며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며 “연습도 더 많이 하려고 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2018년 8월 갑상샘 종양 제거 수술을 받고 체중이 10㎏ 이상 빠진 모습으로 국내 대회에 나온 적도 있다. 건강을 위해 단식한 것이 ‘암 투병설’로 와전될 정도로 깊은 부진에 빠져 있던 시기였다. 2년 전에는 허리 통증이 심해 한동안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는 재기를 위해 노력하면서 한국 골프의 미래를 위한 활동도 꾸준히 했다. 최경주재단을 통해 100여 명의 골프 꿈나무를 키우고 미국에서 미국주니어골프협회(AJGA) 주관 대회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그의 차남인 최강준(18)군이 미국 최경주재단 주니어챔피언십에서 공동 3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아들 영문 이니셜이 그와 같은 ‘KJ CHOI’다.

다시 우승 고지를 밟은 ‘코리안 탱크’는 선수로서 희망도 이야기했다. 그는 “2002년 첫 우승도 힘들었지만 두 번째 세 번째는 시간과 함께 따라오더라”라며 “국내 팬 앞에서도 다시 우승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다.

최경주는 30일 경기도 여주에서 개막하는 KPGA 코리안투어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에 출전하기 위해 곧바로 귀국길에 올랐다.

[민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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