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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한국어 서툴러서 양육권 박탈? 대법 “외국인부모 문화도 양육에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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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소송서 “한국어 능력 부족하다고 양육권 박탈 안돼” 전향적 판결

한겨레

대법원 전경.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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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정 이혼소송에서 양육자를 지정할 때 결혼이민자의 한국어 소통 능력을 지나치게 고려하는 것은 자칫 출신국가를 차별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특히 외국인 부모의 모국문화에 대한 이해 역시 자녀 양육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백인 결혼 가족은 예능, 동남아 출신 가족은 다큐’라는 식의 차별적 시선이 여전한 한국 사회에서 문화 다양성에 대한 사법적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베트남 국적 여성 ㄱ씨와 한국인 남성 ㄴ씨 사이 이혼 및 양육자 지정 소송에서 남편 ㄴ씨를 친권자 및 양육자로 지정한 원심을 일부 파기하고 사건을 전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7일 밝혔다.

ㄱ씨는 2015년 ㄴ씨와 결혼해 한국에서 살며 두 자녀를 낳았다. 그러나 가정불화로 2018년 큰딸을 데리고 베트남을 다녀오면서 ㄴ씨와 별거를 시작했다. 두 사람은 1년 뒤 각자 이혼소송을 냈는데, ㄴ씨는 자신이 큰딸 양육자로 지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1·2심은 두 사람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면서 ㄴ씨를 큰딸 친권자와 양육자로 지정했다. ㄱ씨가 큰딸과 친밀도는 높지만 한국어 소통능력이 부족하고 거주지나 직장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판단에서였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한국어를 충분히 습득하기 전 이혼하게 된 외국인보다 대한민국 국민이 자녀 양육에 더 적합할 것이라는 추상적이고 막연한 판단으로 양육자를 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대법원은 “대한민국은 공교육 등을 통해 미성년 자녀가 한국어를 습득할 기회를 충분히 보장하고 있어 외국인 부모의 한국어 능력이 자녀의 건전한 성장과 복지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정법원이 양육자 지정에 있어 한국어 소통능력을 고려하는 것은 자칫 출신국가 등을 차별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외국인 부모의 모국어 및 모국문화에 대한 이해 역시 자녀의 자아 존중감 형성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의 경우 오히려 남편 ㄴ씨가 별다른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반면, ㄱ씨는 별거 이후 직장에 다니며 매월 고정적인 수입이 있는 점도 고려했다. ㄴ씨는 ㄱ씨에게 양육비를 지급할 의사는 없다면서도 자신이 양육권자가 되더라도 어머니에게 큰딸을 맡기겠다고 한 것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사와동행’ 대표인 고지운 변호사는 “한국어 능력 부족이 양육권 박탈 사유가 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은 사실상 처음인 것 같다. 그동안 한국어 능력 부족으로 이주여성이 진행 중인 이혼 조정단계부터 피해를 입은 경우가 많았다. 법원에서도 이주여성이 직접 한국어 시험을 합격했다며 능력을 입증했어야 했다”며 이번 대법원 판결을 반겼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 10년간 한국 남성과 외국 여성 사이 결혼에서 베트남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이 28.3%로 가장 많다. 2019년 6712건, 지난해에는 3136건이었다. 같은 기간 이혼 사례를 보면 중국 출신 비율이 38.2%, 베트남 출신이 32.2%였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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