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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레핀 "나이들수록 근육은 약해지지만 귀는 좋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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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레핀(50)이 한국에 왔다. 60대 이상의 애호가들에게는 예브게니 키신과 더불어 ‘러시아의 천재’로, 보다 젊은층에게는 1997년 첫 내한 이후의 모습, 또 세계적인 발레리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42)의 남편으로 기억되는 바이올리니스트다. 내한 연주회는 1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 이어 18일 대전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지난 15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소탈하고 유머러스한 태도로 인터뷰에 응했다. “나이가 좀 드니까 (듣는) 귀는 점점 좋아지고, 음악을 연주하는 근육은 점점 약해진다”는 진솔한 답변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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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asha Gus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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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의 당신은 볼살이 통통했다. 당시 소련의 국영 음반사 ‘멜로디아’에서 어린 천재의 음반을 내놨는데, 그 음반에서 흘러나온 연주는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웠다. 그 나이에 어떻게 그런 테크닉과 감정 표현이 가능했을까? 혹시 집안에 음악적 유전자가 있나.

“전혀 없다. 아버지는 극장 간판을 그리는 화가셨다. 내 고향 노보시비르스크의 영화관들에는 아버지가 그린 간판들이 걸려 있곤 했다. 어머니는 간호조무사로 일하셨다. 내가 태어나기 전까지 집안에 음악가는 없었다. 어머니의 기억에 따르면 나는 세 살 때부터 음악 소리가 나는 장난감만을 집요하게 원했다. 실로폰이나 리코더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을 뚱땅거리며 갖고 놀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그런 나를 계속 주시하다가 음악학교에 보내셨지.”

- 너무 이른 나이에 유명해졌다. 스트레스는 없었나.

“열한 살 때 비에냐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 참으로 많은 상들을 계속 받았다. 어머니는 굉장히 엄격했고 스승이었던 자카르 브론 선생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날마다 하드 트레이닝을 감당해야 했다. 바이올린뿐 아니라 피아노도 쳐야 했고 다른 공부도 해야 했다. 당연히 스트레스가 심했지.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어떤 사람이 어린 나한테 ‘너는 오늘도 어제만큼 잘했구나!’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마치 레코드처럼, 날마다 완벽하게 연주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힘들게 했다. 정말 ‘터프한 시절’이었다. 다만 한 가지,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것만은 행복했다. 어린 시절의 고통을 오로지 그런 즐거움과 맞바꿨다.”

- 2010년 피아니스트 라두 루푸가 서울시향과 협연하기로 했다가 건강상 이유로 내한이 갑자기 취소됐다. 그때 당신이 ‘긴급 대타’로 와서 시벨리우스 협주곡을 연주했다.

“충(Chung, 정명훈)의 부탁이었으니까. 그는 나와 음악적 호흡이 아주 좋다. 그래서 내 일정을 변경하고 한국행 비행기를 탔지. 충은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지휘자 가운데 한 명이다. 어떤 지휘자는 테크닉은 좋은데 지식과 감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고. 그런데 충은 두 가지를 모두 갖춘, 밸런스가 완벽한 지휘자다.”

레핀은 골초였다. 호텔 커피숍에서 대화를 나누면서 수시로 전자담배를 흡입했다. 그럴 때마다 약간 민망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좀 봐줘’라는 눈빛을 보냈다. “괜찮아. 나도 골초야!”라고 하자 그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런데 그 담배는 연기도, 냄새도 거의 나지 않네?”라고 묻자, “응, 이거 아주 좋은 거야!”라고 했다. 이어 그에게 “당신도 어느새 50대에 접어들었는데, 어린 시절의 커리어가 압박으로 작용하진 않나”라고 물었다.

“그런 건 별로 없지만, 이제 내 근육은 20대 시절과 달라. 나이가 들면서 귀는 점점 더 좋아져서, 좋은 음악에 대한 감식안은 더욱 발달하는데 몸은 그걸 따라가기가 어려워져. 예전에는 한 번 연습하면 되던 것이 이젠 잘 안 되는 경우들이 많거든. 도리가 없어. 더 많이 연습하는 수밖에. 물론 내 귀를 뛰어넘을 만큼 연습하는 일이 쉽진 않아. 좀 고통스러워.”

그에게서 초면의 긴장감은 거의 해소됐다. 대화는 한층 편안해졌다. “한국 언론에서 당신을 ‘21세기의 하이페츠’라고 수식하는 경우들이 많던데”라고 한마디 툭 던지자, 그는 파안대소했다. “엄청나네! 하지만 하이페츠가 ‘나의 신’이라는 것은 명백해. 그는 악보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구현했던 기념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였어. 하지만 나는 아냐. 하이페츠는 하이페츠, 나는 나!(크게 웃음)”

레핀은 2011년 발레리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와 결혼했다. 러시아는 물론이거니와 유럽 예술계에서도 화제가 됐던 결혼이었다. 30대 시절에 한동안 방황했던 레핀은 두 번째 결혼이었던 자하로바와의 결합 이후 안정감을 찾았노라고 유럽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몇차례 밝힌 바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스베틀라나와 결혼한 이후 내 삶은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라고 했다. “세계의 많은 남성들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행운아”라고 한마디 거들자, 그는 신이 나서 ‘아내 자랑’을 쏟아냈다. “어떤 때는 나도 나를 질투해!(크게 웃음) 스베틀라나가 옆에 있으면 세상이 환하게 바뀐다니까”라고 했다. 대화가 딸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가자 레핀은 “지금 열 살인데 체조를 공부해. 언젠가 올림픽에 나갈 거야”라고 했다.

인터뷰가 길어지는 바람에 리허설 시간이 촉박해졌다. 레핀은 이번 연주회에서 드뷔시의 소나타 g단조, 그리그의 소나타 3번, 프랑크의 소나타 A장조를 한국의 피아니스트 김태형과 함께 선보인다. 인터뷰 도중,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로부터 “나도 바딤 연주회에 갈게”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레핀은 마지막 인사를 나누면서 두 손을 합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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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ela Megrelid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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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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