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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뉴스룸에서] 자영업 ‘오징어게임’, 이대로 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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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코로나로 강제 구조조정을 겪은 자영업이 제대로 재기하려면, '위드 코로나'를 넘어 보다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지난 8일 정부서울청사 옆 세종로공원 농성장에서 소상공인, 자영업자 대표들이 정부 지원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배우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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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거리두기 제한이 한창이던 때도, 버젓이 4인 이상 모여 앉은 식당의 손님 무리에 한번도 뭐라 하지 못했다. 자영업자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매상 한 푼이 아쉬울 그들 앞에 투철한 방역 신고정신은 무뎌지고 말았다.

어느덧 ‘위드 코로나’를 검토하는 요즘도 우울한 자영업 뉴스는 계속된다. “확인된 자살자만 22명”(코로나19 대응 전국 자영업자 비대위), “1년 반 사이 자영업자 부채 66조 원 급증”(오세희 소상공인연합회장), “10명 중 4명은 폐업 고려 중”(한국경제연구원 설문조사) 등등.

실로 지난 코로나 2년간 자영업은 구조적인 변화를 겪었다. 그나마 번듯했을 ‘종업원 둔 사장님’은 34개월째 줄어 1990년 이후 가장 적다(8월 현재 130만1,000명). 반면 한계선상의 ‘나 홀로 사장님’(8월 424만9,000명)만 크게 늘었다. 불과 수년 전 “선진국의 2, 3배인 25%나 된다”고 지적받던 전체 취업자 대비 자영업자 비중은 지난 9월 마침내 20% 아래로까지 떨어졌다. 한국경제의 만성 골치였던 ‘과도한 자영업자’ 문제를 코로나가 화끈하게 강제 구조조정한 것이다.

마치 코로나 때문인 것처럼 얘기하지만 사실 자영업자는 오래전부터 어려웠다. 민주화 바람 속에 탈공업화 바람이 불어닥친 1990년대 초, 그리고 90년대 후반 외환위기 구조조정 와중 직장에서 대책 없이 밀려난 숱한 사람들이 자영업의 길로 들어섰다.

신출내기 자영업자 대다수는 경쟁력이 없었다. 그들이 택한 음식점, 숙박업소는 진입장벽도 낮다. 을(乙)들의 아귀다툼 속에 몸을 갈아 넣어 버티는 악순환이 지난 30년간 지속됐다. 선진국에선 경제가 발전하며 기업 규모가 커져 자영업자가 다시 임금근로자로 흡수됐지만, 우리는 그걸 놓쳤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처럼, 어떻게든 동료를 제치고 살아남아야 과실을 따먹는 게 지금의 자영업이다. 이런 구조를 놔둔 채, 다시 영업시간을 늘리고 손님을 받는다 해도 그들의 개미지옥은 계속될 것이다.

코로나 이전이던 2019년 초 한국일보는 <자영업, 한국경제 늪이 되다> 시리즈를 실었다. 모두가 알지만 해결 못한 자영업 문제를 풀어보자는 취지였다. 당시 전문가들의 조언은 이랬다.

“자영업자가 실패하면 다시 임금근로자로 돌아갈 시스템이 필요하다”, “생계형 자영업자가 기술력을 갖춰 기업가로 크도록 교육을 지원해야 한다”, “실업급여 수급기간을 늘려야 조급한 창업을 막을 수 있다”, “기업의 연공형 임금체계를 직무급으로 바꿔야 재취업이 원활해진다”. 여전히 어느 하나 제대로 이뤄진 건 없다.

작년과 올해 코로나19 쓰나미에 자영업은 결정적인 방파제 역할을 해줬다. 정부가 강제 영업제한으로 이들의 재산권을 제약한 건, 국민 안전과 경제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이제 제대로 갚을 때다. 위드 코로나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우선은 현실적인 손해보상. 그들의 매출 감소가 방역조치 때문이었다면 세금을 더 써서라도 피해를 분담하는 게 공정이다. 더 중요한 건, 그들을 또 개미지옥으로 내몰지 않는 것이다. 자영업이 지나친 경쟁을 줄이고, 혁신을 이룰 체계적인 개혁도 서둘러야 한다. 550만 자영업자뿐 아니라, 우리 사회 미래를 위한 투자다.

김용식 경제산업부장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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