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검찰단과 고등군사법원을 표시한 이정표. 최종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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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군인이 아닙니다. 사건을 민간법원으로 옮겨주세요.”
8월 말 군사법원 재판을 앞두고 있던 국방부 직할부대 소속 A 육군 준장은 돌연 자신이 ‘민간인’이라며 사건을 일반법원으로 이관해 달라는 내용의 ‘재판권 쟁의에 대한 재정신청’을 대법원에 냈다. 그는 6월 말 같은 부대 군무원을 강제추행한 혐의(군인등강제추행치상)로 국방부 검찰단에 구속기소된 상태였다.
공교롭게도 이날 국회에서는 고등군사법원을 폐지하고 성범죄 등 군 3대 범죄 관련 수사와 재판을 민간에 넘기는 내용의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하지만 해당 개정안이 내년 7월 발효돼 A 준장 성범죄 사건은 군사법원에서 그대로 다루게 되자 군사재판을 피하기 위해 ‘꼼수’를 쓴 것이다.
그가 일반법원 재판을 간절히 원한 이유는 만연한 군 성폭력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것과 무관치 않았다. 군 당국이 “성범죄만큼은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공언한 상황에서 군사법원 재판을 받을 경우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이 민간인으로 판단하면 사실상 군 당국의 사법처리나 징계 없이 전역이 가능해 연금 수급 등의 불이익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다.
A 준장의 주장에는 나름 근거가 있었다. 군인사법은 장성급 장교가 직위해제되면 자동전역 조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 역시 성폭력 사건에 연루돼 보직에서 해임된 만큼, 규정에 따라 민간인과 다름없으니 군사법원이 아닌 민간법원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전례도 있었다. 2017년 ‘공관병 갑질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은 사건 발생 후 대법원에 같은 취지의 재정신청을 냈다. 대법원은 당시 “박 대장은 보직에서 물러난 시점에 전역한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그가 민간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했다. 법원이 박 전 대장처럼 A 준장을 민간인으로 인정해주면 군사적 처벌을 피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꿈은 산산조각 났다. 대법원은 지난달 사건 관할권이 군사법원에 있다며 A 준장의 재정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 전 대장의 경우 대법원은 제2작전사령관 직위 박탈 뒤 다른 보직으로 옮기게 한 인사명령을 사유가 불분명해 위법한 것으로 봤다. 반면 성폭력을 저지른 직후 A 준장에게 내려진 ‘전역 준비를 위한 임시직’ 발령은 범죄 혐의가 명확한 만큼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전역 준비를 위한 3개월 이내의 임시 직위에 보직돼 근무하던 중 형사사건으로 기소돼 휴직 처리가 된 경우 이 기간은 임시보직 기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당연히 전역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김민순 기자 s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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