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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전국 수석 → 대장동 1타 강사’ 원희룡 결정적 순간 셋 [조은산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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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힘 경선주자 4人의 3가지 결정적 순간들

지난 8일 국민의힘 대선 경선 주자 4명이 결정됐습니다. 중앙일보는 논객 '조은산'의 목소리를 영상에 담아, 국민의힘 경선 주자들의 오늘을 있게 한 3가지 결정적 순간을 살펴봅니다. 윤석열-홍준표-유승민-원희룡 후보 순으로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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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은 서울에서 3선 의원을 지냈고, 제주지사를 두 번 맡았다. 제주는 그의 정치적 공백을 메워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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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국 수석’ 원희룡을 품어준 제주

현재 활약 중인 정치인 중에서 공부 잘했던 분을 꼽으라면 서울의대 출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하버드 대학 출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대입 학력고사와 사법 시험 수석을 차지한 원희룡 전 제주지사(이하 직함 생략)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원희룡은 나머지 분들과는 조금 다릅니다. ‘전국 수석’, ‘1등 전문’ 같은 말이 중앙정치와 제주를 오간 원희룡의 정치 행보를 설명하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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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원희룡은 신구범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제치고 37대 제주지사에 당선됐다. 이전까지 신구범, 우근민, 김태환 등이 번갈아가며 제주지사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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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학력고사 전국 수석으로 서울 법대에 입학한 원희룡은 당시 “법사회학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힙니다. 하지만 대학 시절 민주화 운동과 노동 운동 경험은 “20년 동안 천재 소리 들으며 살았다”는 그의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 놓죠. “사회 불의와 불평등 앞에 재능에 대한 자부심은 박살 났다”는 원희룡은 결국 학자의 길을 접고, 1992년 사법시험에 도전해 또 한 번 수석을 차지합니다. 그는 “시험 치는 데 뛰어난 재주를 한두 차례 보였을 뿐”이라며 몸을 낮췄지만 세상은 ‘천재’ 원희룡을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원희룡은 3년 반 검사생활을 마치고 정치권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는 한나라당에 입당해 1996년부터 서울 양천 갑에서 내리 3선을 합니다.

당시 ‘제주 천재’ 원희룡의 서울 출마를 서운해 하는 제주도민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원희룡도 ‘제주 출마’가 편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제주 출마를) 고민했지만, 지역구보다 국민을 위한 국회 활동이 절실했다’며 서울에서 정치를 시작합니다. 정치 신인 원희룡은 22년 전 ‘전국구’ 정치인이 되겠단 꿈을 꾼거죠.

원희룡의 중앙정치 도전은 난관도 많았습니다. 2010년 서울시장 당내 경선에 도전했지만, 나경원과의 단일화에 실패합니다. 2011년 ‘총선 불출마’라는 배수진을 치고 당대표 도전에 나섰지만 4위에 그칩니다. 결국 원희룡은 제주로 향합니다.

2014년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신구범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꺾고 제주지사에 당선됩니다. 제주도는 이전까지 신구범, 우근민, 김태환 등이 번갈아가며 도지사를 했는데, 원희룡이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 거죠. 제주도는 정당보다는 인물과 ‘괸당’(친·인척이라는 뜻의 제주 사투리)이 더 잘 통하는 특유의 정치문화가 있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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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 원희룡, 남경필, 정병국은 '남원정' 트리오를 결성해 보수·소장개혁파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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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사 시절은) 공백이 아닌 정치의 여백이었다. 백지에서 미래를 그린 시간을 보냈다”는 그는 안정적인 도정 운영으로 2018년 재선에 성공합니다. 그 의미는 컸습니다. 문재인 정부 2년 차였던 2018년은 탄핵 여파가 채 가시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선거 1달 전엔 남북정상회담도 성사됐습니다. 여당인 민주당에 유리한 선거였죠. 이 선거에서 민주당은 대구·경북을 제외한 14곳에서 광역자치단체장을 휩쓸었습니다. 보수정당 출신인 무소속 후보가 이긴 건 제주에 출마한 원희룡이 유일했습니다. 2016년 박근혜 탄핵 이후 새누리당을 나와 바른정당, 바른미래당 탈당마저 감행한 원희룡의 무소속 출마 전략이 성공한 겁니다.

국회의원 3선 이후 부침을 겪던 원희룡의 정치적 공백을 메워 준 건 결국 고향 제주였습니다. 민주당을 상대로 ‘5전 5승’의 ‘패배 없는 정치인’ 원희룡의 뿌리는 정당의 보스나 계파가 아닌 결국 제주도민들이라고 할 수 있죠.

#2 소장·개혁파에서 중견 정치인으로

원희룡이 이런 중견 정치인으로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된 시기는 2000년대 초반입니다. 원희룡은 남경필, 정병국과 ‘남원정’ 트리오를 결성해 ‘원조’ 보수 개혁에 앞장선 소장파로 활동했죠. ‘개혁 보수’ 이미지를 만들어 준 결정적인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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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원희룡은 제주지사직을 내려놓고 20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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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원희룡은 이들과 ‘미래연대’, ’새정치수요모임’ 등을 결성해 ‘수구꼴통’ 색채가 강했던 한나라당의 혁신을 이끌었습니다. 당내 주류와 부딪히며 체급을 키워갔죠. 2004년 김문수 공천심사위원장이 현역 국회의원 60여 명과 당협위원장을 17대 총선 공천에서 떨어뜨릴 때 ‘남원정’ 트리오가 큰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활약으로 원희룡은 2004년 7월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다음으로 2등을 하며 당 최고위원에 당선됐습니다. 또 2007년 대선 경선에 나서 이명박, 박근혜에 이어 3위를 차지합니다. 당시 4위가 홍준표였죠. 10년도 훨씬 전에 원희룡은 이미 보수의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됐던 겁니다.

하지만 이들 보수 소장·개혁파는 2008년 대선을 전후해 한계를 드러냅니다. ‘친이-친박’ 프레임에 갇혀 당내 권력에 흡수되며 목소리를 잃습니다. 정병국은 일찌감치 이명박을 지지했고, 원희룡도 친이계에 편입돼 독자적인 목소리를 잃습니다. 2011년 정권 주류였던 친이계 지원을 받아 나간 전당대회에서 4위에 그치며 정치적 타격을 입기도 했습니다.

원희룡은 소장파 활동에 대해 ‘나는 실패했다. ‘개혁’이란 건 주도권을 쥔 사람 손에 달렸다’라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보수 혁신의 어려움을 말한거죠. 정치적 부침을 겪던 시기, 원희룡은 제주행을 택했던 것 같습니다.

2018년 무소속으로 제주지사 재선에 성공한 원희룡은 2020년 2월 미래통합당에 합류합니다. 결국 지난 7월 도지사직을 내려놓으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물론 어려움이 예상됐습니다. 제주에선 ‘말도 없이 복당해 놓고 또 제주를 등지며 중앙정치에 욕심을 내느냐’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이미 당엔 여권과 맞서 싸우거나, 보수층 지지를 한 몸에 받은 경쟁자들도 많았습니다. 지지율만 보자면 원희룡은 2차 컷오프 통과도 장담하기 어려웠던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는 상황을 바꿉니다. 이준석 당대표와의 녹취록 파문 갈등을 극복했으며 최근에는 대장동 사태 관련 ‘1타 강사’로 주목을 받으며 ‘대여 전사’로 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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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녹취록 공방을 벌인 원희룡은 '귤재앙'이란 별명이 생겼다. 대장동 개발 논란 당시 원희룡은 '대장동 1타강사'로 활약했다. 페이스북, 크로커다일 남자훈련소 유튜브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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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장동 1타 강사’로 주목…‘이재명 저격수’로 변신

지난 8월 원희룡은 이준석과의 통화 내용을 폭로합니다. 이준석이 전화를 걸어 “저거(윤석열이) 곧 정리된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당 대표 경선개입을 주장한 거죠. 이준석은 즉각 반박했습니다. ‘녹취 전체를 까라’며 극단으로 치닫던 갈등은 결국 양측이 한 발씩 물러서며 마무리됐습니다. 당시 이준석 지지자들은 당 내분을 일으킨 원희룡을 향해 “귤재앙”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원희룡은 TV토론에 나가 “네티즌들이 붙여준 이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서 “나는 귤재앙”이라고 외칩니다. “민주당과 싸워 선거에서 진 적 없는 내가 민주당에겐 진짜 재앙”이라고 했습니다. ‘귤재앙’이란 비난을 자신의 무기로 바꾼 겁니다.

당시 이준석과의 녹취록 공방을 두고 ‘관심끌기용 정치 플레이 아니었느냐’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양측 모두 손해 본 게 없었으니까요. 원희룡은 이후 ‘잃은 게 많은 일’이라고 자평했지만, 그가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더 많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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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장동 개발 논란에서 원희룡은 큰 활약을 펼칩니다. 그는 한 유튜브 방송에서 대중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복잡한 대장동 이슈를 강의 형식으로 일목요연하게 풀어내며 “화천대유는 이재명의 사설 로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영상들은 조회 수 130만 이상을 기록하며 화제가 됐죠. 대중들은 복잡한 이슈를 입체적이면서 쉽게 설명한 그의 ‘강의력’에 혀를 내두른 겁니다. ‘공부 천재’ 원희룡의 진가가 그대로 드러났죠. 이를 계기로 원희룡은 ‘대장동 1타 강사’, ‘이재명 킬러’란 평가를 받았습니다. 얼마 뒤 원희룡은 경선 2차 컷오프를 통과했습니다. 그는 “이재명의 민낯을 드러내고, 국민적 심판을 통해 정권교체를 해내겠다”고 했습니다. 집안 싸움 대신 대장동 이슈를 파헤치며 ‘대여 투쟁’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원조’ 소장·개혁파에서 ‘대장동 1타 강사’로 변신한 원희룡은 대여 투쟁에도 능한 정치인이라는 걸 입증해가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본선 후보가 확정되는 11월 5일, 원희룡이 대선 후보로 대선 레이스를 시작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김태호 기자 kim.taeho@joongang.co.kr, 영상=정수경·조은재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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