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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알베르티의 유럽 통신] 누구나 걸려들 수 있는 ‘고정관념의 덫’… 때론 작은 편견이 큰 파장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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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이상 기다린 도쿄 올림픽 개막식 방송에서, 한국인들은 뜻밖의 ‘쇼’를 봤다. 한국 방송사 MBC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나라들을 사진 한 장으로 설명해보려는 과욕을 부렸다. 이탈리아 선수단이 행진할 때는 피자, 노르웨이는 연어 덩어리, 루마니아 때는 드라큘라 사진이 등장했다. 결과는 엄청난 실패였다. 이탈리아인으로서 수천 년 역사와 문화가 피자 사진 한 장으로 요약돼 기분이 상했다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MBC는 왜 ‘고정관념(stereotype)의 덫’에 빠졌는지, 일상에서 그 덫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려 한다.

조선일보

그래픽=김하경 / 누구나 걸려들 수 있는 '고정관념의 덫'… 때론 작은 편견이 큰 파장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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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타자(他者·the other)’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으며, 그것이 ‘타자’에게 불쾌하거나 오류일 수도 있다는 걸 잊어버린다. 예를 들어 유럽에선 동아시아인 외모인 사람을 보면 대개 중국인일 거라 여긴다.

1993년 일본에서 처음 일할 때, 일본인은 대부분 내가 백인 남성이므로 미국인일 거라 짐작하고 ‘미국 어느 지역에서 오셨나요?’ 하고 묻곤 했다. 이탈리아인이라고 하면, 다음 질문은 대개 ‘음식이나 와인 쪽 일을 하시나요?’였다. 일본의 대표적 신문 중 하나인 마이니치신문 영문판에서 일하는 기자라고 답하면 다들 깜짝 놀랐다. 많은 일본인, 실은 많은 아시아인에게 ‘백인 남성’은 ‘미국인’과 동의어에 가까웠다.

우리는 왜 사람, 사물, 사건을 선입견에 따라 분류하는 걸까. 우리 정신 어딘가에 그런 이상한 기능이라도 있는 걸까. 답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우리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빨리 정리하고 반응해야 한다. 빨리 분류하면 살기가 훨씬 단순해진다. 이탈리아 볼로냐대에서 문학과 미디어를 가르치는 줄리아나 벤베누티 교수는 “우리는 타인이 친구인지 적인지 재빨리 구별하도록, 또 잘 모르는 것을 친숙하게 느껴 두려움을 덜기 위해 고정관념을 만드는 것”이라며 “하지만 고정관념은 자주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므로, 제한적인 쓸모밖에 없다”고 했다.

고정관념과 선입견은 어떻게 자라나는 걸까. 인적 자원 전문 기업 에스칼레라의 공동 설립자이며 다양성·공정성·포용성(DEI) 분야 전문가인 톨론다 톨버트 박사는 “고정관념을 만드는 메시지는 미디어, 가족, 지역사회, 정부, 뉴스 매체, 학교 등 어디에서도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우리의 뇌 안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에 관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연관성 모델을 만들어내는 거죠.”

일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왜 내가 미국인이라고 생각했는지 물어보면, 답은 크게 두 가지였다. 내가 백인이고, 영어로 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일본인들이 미디어를 통해 보는 사람 대부분이 미국 백인이었다. 톨버트 박사는 “우리 뇌 안의 회로는 급하게 작동해 종종 부정확하며, 잘못된 가정과 판단으로 타인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선 나라에서 생활 보조금을 받는다면 으레 흑인일 거라 여겨요. 하지만 생활 보조금 수혜자 중 흑인은 23%뿐이고, 오히려 백인이 43%로 가장 많습니다. 잘못된 고정관념에 빠지면 흑인에 대한 편견을 갖게 되고, 그들을 어떻게 대할지 또 그들이 어떻게 투표할지도 섣불리 판단하게 됩니다.” 벤베누티 교수는 전 세계에서 이탈리아인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서나 대답은 매우 비슷했으며, 대략 다섯 범주에 해당했다. 피자, 마피아, 문화(르네상스), 패션, 그리고 자동차다.

좀 더 포용적 사회로 가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실천은 ‘타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스스로 성찰하는 것이다. 또 ‘타자’에 대한 지식을 늘려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벤베누티 교수는 “우리 머릿속에 고정관념을 만드는 데 쓰는 미디어, 책, 영화 같은 도구는 ‘타자’에 대한 지식을 늘리고 그 고정관념을 해체하는 데도 똑같이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톨버트 박사 역시 동의했다. “우리의 머릿속, 쓰는 말, 광고, 쇼, 책, 뉴스 속에는 다른 집단에 대한 거짓이나 불완전한 이야기가 떠돌아다닙니다. 이런 메시지를 의심하고 따져보려는 태도가 고정관념과 선입견이 없는 사회로 가는 핵심 열쇠입니다.”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톨버트 박사는 “삶의 속도를 좀 늦추고, 무의식적으로 연관지어지는 것들, 일반화하는 사실들을 의식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결론을 내고 결정을 내리기 전에 그 뒤에 숨은 ‘왜(why)’를 더 많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톨버트 박사조차 ‘고정관념의 덫’에 걸린 경험이 있었다. “캐나다로 여행을 갔다가 공항에서 줄 서는 동안 아시아 여성과 수다를 떨었어요. 출장인지 아니면 여행인지 물었죠. 캐나다인의 외모에 대한 내 머릿속 모델은 아시아인이 아니었고, 외국인일 것이라고 추정해 그를 ‘타자화’했던 겁니다. 그는 캐나다에서 나고 자랐으며 해외여행 뒤 귀국하는 길이었어요. 이런 상황은 이 여성 같은 사람들에게 매일 일어납니다.” 톨버트 박사는 “타인을 예단하거나 선입견을 갖게 하고, 행동까지 영향을 미치는 고정관념의 작동을 막으려면 섣부른 추정을 의심해야 한다. 그걸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했다.

25년 이상 내 조국이 아니라 문화적 배경이 무척 다른 나라들에서 살면서 난 한 가지를 배웠다. 우리는 모두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며, 다른 사람에 대해 선입견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양성에 대한 열린 마음가짐, 적극적으로 다른 문화를 배우려는 자세만이 더 나은 사회를 향한 길일 것이다.

[프란체스코 알베르티·前마이니치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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