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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미국 따라잡는다”… 남성 ‘키 증가율’ 세계 1위에 열광하는 중국[특파원 2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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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간 '19세 남성' 키 증가율 중국이 1위
"삶의 질 개선, 중국 위상 높아진 덕" 자평
경쟁국 美 남성 키에 육박..."넘사벽 아냐"
세계 1위 '비만 대국' 중국의 치부는 감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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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중국 청두에서 열린 3대3 농구대회에서 한 선수의 슛 장면을 많은 관중이 지켜보고 있다. 펑미엔신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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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경절 연휴 마지막 날인 7일, CCTV를 비롯한 매체들은 중국 경제나 군사, 외교 문제가 아닌 ‘키’에 주목했다. “최근 35년간 중국 남성의 키 증가율이 세계 1위”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지난해 11월 국제 의학학술지 ‘랜싯’에 실린 논문 데이터를 뒤늦게 인용해 “2019년 중국 19세 남성의 평균 신장은 175.7㎝로 1985년에 비해 9㎝ 늘었다”며 “전 세계에서 증가 폭이 가장 크다”고 소개했다. ‘비감염성질환 국제연구네트워크(NCD-RisC)’가 200개국의 연구 2,181건을 분석해 표본 6,500만 명(5~19세 5,000만 명, 20~30세 1,500만 명)을 비교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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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국 19세 남성의 평균 키 비교. 그래픽=송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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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성적표는 괄목할 만했다. 남녀 모두 동아시아에서 키로 한국과 일본을 제쳤다. 중국 19세 남성의 경우 1985년 세계 랭킹 150위에 그쳤던 키가 2019년 65위로 껑충 뛰었다. 중국 여성 평균은 163.59㎝로 세계 54위에 올랐다. 남녀 성인 평균 키가 가장 큰 국가는 각각 네덜란드(182.5㎝)와 라트비아(170㎝)로 나타났다.

이에 더해 국가위생건강위원회가 지난해 12월 공개한 보고서도 다시 끄집어내 분위기를 띄웠다. 2014~2019년 중국 18~44세 성인 남녀 평균 키가 각각 1.2㎝, 0.8㎝ 증가했다고 강조했다. 미성년자의 경우에도 5년 만에 남자는 1.6㎝, 여자는 1㎝ 각각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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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1996년 100년간 네덜란드(오른쪽 위 곡선부터), 미국, 한국, 일본, 중국 남성 평균 키 변화. 가장 최근 수치인 빨간색 네모 안을 보면 미국의 곡선(녹색)은 증가세가 꺾여 오히려 키가 줄어든 반면, 중국(갈색)과 한국(보라색)은 상승세가 가파르다. 2019년 중국은 한국마저 제쳤다. 'Our world in data'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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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열광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감히 넘볼 수 없던 미국과의 신체적 격차를 근접한 수준으로 좁혔기 때문이다. 2019년 미국 19세 남성의 평균 키는 176.9㎝(세계 47위)로 중국과 차이가 1.2㎝에 불과했다. 중국이 개혁개방에 나선 1978년 미국 177.54㎝, 중국 169.54㎝로 8㎝나 벌어졌던 것에 비하면 40년 만에 중국이 거의 따라잡은 셈이다.

특히 가파르게 상승하는 중국 남성의 평균 키 곡선과 달리 미국 남성의 수치 그래프는 오히려 소폭 감소세로 접어들어 중국의 자신감에 불을 지폈다. 지난해 국경 유혈 충돌로 관계가 험악한 ‘앙숙’ 인도의 경우, 남성 평균 키가 166.5㎝(180위)에 그쳐 중국에 비할 바가 못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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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19세 여성(위)과 남성(아래)의 평균 키를 전 세계 각국과 비교한 시계열 그래프. 1996년부터 시간이 지나면서 2019년으로 갈수록(맨 위 숫자 변화) 붉은 선이 오른쪽으로 옮겨지고 있다. 키 순위가 높아졌다는 의미다. 런민왕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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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가 오른 중국은 온갖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잘 먹고, 잘 살고, 열심히 운동한 덕분에 키가 커졌다는 것이다. 성장기 아동의 육류와 우유 섭취가 원활해 영양공급이 충분하고, 개혁개방 이후 중국 인구의 절반이 넘는 8억 명이 빈곤에서 벗어나 생활수준이 높아졌다고 강조했다. 중국 스포츠인구 비율이 2011년 28.2%에서 지난해 37.2%로 늘었고, 피트니스를 즐기는 중국인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도 수백만 명 증가해 7,029만 명에 달한다는 구체적 수치도 제시했다.

중국 경제망은 “중국인의 키가 커진 건 단순히 신체의 성장뿐만 아니라 경제가 발전하고 삶의 질이 개선돼 중국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중국의 총체적 국력이 얼마나 강한지가 키에 고스란히 반영됐다는 자부심이 묻어난다. 시진핑 주석이 7월 1일 공산당 창당 100주년, 10월 10일 신해혁명 110주년 기념식에서 강조한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키와 삶의 질의 연관성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며 “과거 유전적 요인으로 설명하던 키를 가늠하는 데 개인이 속한 사회의 생활수준이 중요한 지표”라고 힘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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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의학학술지 '랜싯'에 실린 논문에 첨부된 세계지도 2건. 지난 35년간 각국 19세 여성(왼쪽)과 남성(오른쪽)의 체질량지수(BMI) 증가율을 나타냈다. 붉은색이 진할수록 체중이 더 급속히 늘었다는 의미다. 오른쪽 지도 파란색 네모를 보면 중국 남성의 BMI 증가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세계 1위 비만 대국 중국의 현실이 반영됐다. 중국 매체들은 이 내용은 쏙 빼고 키 증가율만 부각시켰다. 랜싯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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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중국에 불리한 내용은 쏙 뺐다. 키만 강조하느라 ‘비만 세계 1위’ 중국의 치부는 감췄다. 지난 5월 발표한 ‘중국 주민 영양 및 만성질환 보고서’에 따르면 18세 이상 중국인 가운데 과체중은 34.3%, 비만은 16.4%에 달한다. 둘을 합해 50%를 넘긴 건 처음이다. 14억 명 인구 중 6억 명을 훌쩍 웃돈다. 앞서 랜싯 보고서에서 중국 남성은 지난 35년간 키뿐만 아니라 ‘체질량지수(BMI·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 증가율도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나 중국 매체들은 이 부분을 언급하지 않았다.

더 심각한 건 도시와 농촌의 차이다. 1996년 중국 도시 아동의 키 증가율은 농촌 자녀에 비해 최대 5배 더 높았다. 부의 격차가 키에 반영된 것이다. 2014년 연구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발견됐다. 이후 간극을 좁히긴 했지만 2019년 농촌 가구 1인당 가처분소득은 1만6,021위안(약 295만 원)으로 도시 가구(781만 원)의 38%에 그쳤다. 미 CNN은 “키 증가율을 앞세워 중국인의 애국심을 부추길 것이 아니라 모든 중국 어린이들의 키가 고르게 자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베이징= 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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