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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想과 세상]정선 아라리,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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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마음의 회랑 안쪽에

긴 휘장을 친다

다시 비가 내리고 또 눈이 내린다

그 휘장 아래를 걸으면

밑도 없는 물길, 끝도 없는 산길이 나타나고

사라지고

내 슬픔이 무엔가 생각할 즈음

당신에 대해 생각한다

왜 그렇게 천천히

굽이굽이 적막강산에 서 있는가

비는 여전히 내리고

긴 휘장에 앉아 한 마리 짐승처럼

온몸을 웅크린 채

소금 사러 가던 먼 길과

석탄으로 몸을 씻던 내(川)와

그런 길과 그런 내에서

당신을 기다리던

배가 고팠던 저녁

당신,

우대식(1965~)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면 일상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살아야 할 존재 이유마저 상실한 채 방황한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점차 기억이 흐려지지만, 이별의 순간만은 지금 일어난 것처럼 생생하다. 슬픔은 줄어들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마음 한 귀퉁이쯤 차지하지 않는 사랑은 거짓이다. 진정한 사랑은 “마음의 회랑 안쪽에/ 긴 휘장”을 치고 나만의 시공간에서 평생 아파하며 소중히 간직하는 것이다. 삶이 힘들 때마다, 당신을 생각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돈다.

방황의 종착은 정선이다. 휘장을 친 듯 둘러싼 산과 그 산을 휘돌아 흐르는 강은 홀로 당신을 생각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강가에 밤이 찾아오면 별이 된 당신을 하늘과 강에서 만날 수 있지만, 슬픔은 더 깊어진다. “적막강산” 같은 마음으로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정선 아라리를 부르다가 세속의 도시로 돌아온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시인을 평생 떠돌게 한 당신, 너무 일찍 곁을 떠난 어머니. 시인은 배고팠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먹던 밥을 조금 남긴다.

김정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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