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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박구용의 직관]평화정치를 위한 종전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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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21년 12월9~10일. 6·25가 끝난다. 희망이고 전망이다. 제1회 세계 민주주의 정상회의(Global Democracy Summit)가 열리게 될 그날, 앞뒤로 종전이 선언되길 바란다. 필드에서 전쟁은 끝난 지 오래다. 전쟁정치, 독재정치, 정치전쟁이 70년 넘게 종전을 지연시키고 있다.

세계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바이든의 대선공약이다. 그는 트럼프가 구사한 정치전쟁을 민주주의 후퇴이자 위협으로 본다. 권위주의와 포퓰리즘을 뒤섞은 정치의 전쟁화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세계민주주의연합을 제안한다.

경향신문

박구용 전남대·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정부와 시민사회가 함께하고 가상과 현실이 혼합된 하이브리드 형식으로 진행될 세계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부패, 인권침해, 불평등 증가, 기후위기, 팬데믹과 맞서 연합국이 함께 싸울 것을 구체적으로 결의하고, 약속을 이행하며 생긴 성공 스토리를 공유하자고 제안한다.

바이든의 바람처럼 세계민주주의연합이 나라마다 민주주의를 방어하고, 강화하고, 갱신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이 세계민주주의연합을 이끌 만한 도덕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가? 아프가니스탄 철수에서 확인된 미국의 무책임과 무능력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세계경찰국가의 위상과는 거리가 멀다.

미국 스스로 세계경찰국가 프레임을 깨뜨렸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동맹국에 돈을 지불하라고 압박했다. 바이든 정부는 다른 맥락에서 미국이 세계경찰국가로서 다른 나라의 체제에 개입하는 것에 반대한다. 세계경찰국가가 아니라 세계민주주의연합 체제로 프레임을 바꾸려는 것이다.

경찰국가서 민주주의 연합으로
프레임 전환과정에서 미국은
한반도 종전선언 진지하게 검토
전쟁을 멈추는 정치 세력만이
한 나라와 세계 민주주의 이끈다

바이든 정부가 이처럼 눈에 띄게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독재정부를 제재하거나 무너뜨리고 미국형 민주주의를 이식하던 경찰국가 패러다임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실패의 비극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이 떠안고 있다. 둘째, 한 나라의 반민주 체제가 다른 이웃 나라를 넘어 세계 민주주의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민주주의가 파괴되면 그곳을 떠난 사람들을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떠안아야 한다.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세계경찰국가에서 다자간 세계민주주의연합으로의 프레임 전환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바이든의 제안에 국제적 호응이 별로 없다. 아직까지 주요국들의 정치와 언론이 12월 정상회의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의 위상이 약해져서일까? 아니다. 그보다 미국이 세계 민주주의를 내세우기 어려운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풀 하나의 유력한 대안으로 미국은 지금 한반도의 종전선언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

한반도 종전선언은 미국이 세계경찰국가가 아니라 다자간 연합 체제를 지향한다는 것을 세계 시민들에게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퍼포먼스로 쓰기 좋다. 바로 이 지점에서 평화정치를 지향하는 미국과 한국의 정부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종전선언을 매개로 북한과 대화하는 것이 세계민주주의연합을 위한 첫걸음일 수 있다. 옛 독일의 프로이센 군사 전문가 클라우제비츠는 그의 저서 <전쟁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쟁은 다른 수단을 가지고 지속하는 정치다.” 전쟁을 정치의 연장이자 수단으로 본 것이다. 전쟁정치를 옹호한 그는 전쟁에 사회심리적 카타르시스 작용까지 부여한다. 그는 나폴레옹이 무기가 아니라 국민(민족)의식으로 프로이센을 정복했다고 믿었다. 그는 독일 국민이 전쟁을 통해 병든 민족정신을 치료할 것을 주문했다. 매우 위험한 발상인데 전쟁과 죽음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명언이다.

프랑스 철학자 푸코는 반대로 말한다. “정치란 다른 수단을 가지고 지속하는 전쟁이다.” 도구적 전쟁론을 도구적 정치론으로 뒤집으면서 ‘영구전쟁론’을 내세운다. 그의 정치전쟁론에 따르면 정치권력을 바꾸는 것은 중요치 않다. 정치가 바뀐다고 일상적 삶에서 작동하는 권력이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란다. 아주 멀리서 속세를 바라보면 그럴듯한 말이나 지나치게 냉소적이다.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폴레마르코스는 적과 동지를 나누고 이해관계를 잘 조정하는 것이 정의라고 말한다. 정의를 이해관계 조정이나 타산성 계산으로 축소하면 전쟁과 정치는 서로를 도구로 이용한다. 정의를 민주적 의사결정으로 확장하면 정치는 전쟁을 최소화하는 합의가 되어야 한다. 전쟁을 멈추는 정치, 종전선언을 이끌어내는 정치, 평화를 만들어 내는 정치 세력만이 한 나라의 민주주의와 세계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끌 수 있다.

박구용 전남대·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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