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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위례' 3억이 '대장동 뇌물' 둔갑…8쪽짜리 유동규 공소장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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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지난 21일 유동규(52)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구속기소하면서 법원에 제출한 8쪽짜리 공소장을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앞서 유 전 본부장 구속영장과 비교해 수천억원대 배임 혐의를 삭제한 것은 물론 전혀 다른 뇌물죄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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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규 전 성남도공 본부장 혐의 변화.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검찰은 지난 3일 유 전 본부장을 구속할 때는 2013년 위례신도시 민간사업자인 정재창(52) 위례자산관리 대주주로부터 3억원을 받은 혐의를 적용했지만 이번엔 남욱(48) 변호사로부터 대장동 개발과 관련 3억5200만원을 받은 혐의로 바꿨다. 뇌물액과 공여자는 물론 본질적인 대가관계를 위례에서 대장동으로 둔갑한 것이다.



檢 ‘반쪽’ 쪼그라든 유동규 공소장…‘위례 뇌물’부터 바꿨다



24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유 전 본부장의 21일 공소장에 적힌 공소사실은 18일 전 구속영장 범죄사실과 비교해 뇌물액수부터 절반 이하로 쪼그라들었다. 혐의가 아예 빠지거나 달라진 건 크게 5가지 부분이다. ① 위례신도시 뇌물 3억원이→대장동 뇌물 3억5200만원으로 바뀐 것부터 시작해 ②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가 2021년 1월 줬다는 ‘대장동 뇌물 5억원’을 통째로 삭제했다. ③ ‘700억 뇌물약속’의 경우 2015년 3월 대장동 민간사업자 선정 대가로 개발이익 25%를 받기로 약정했다는 내용을 뺐다. ④ 대신 올해 2~4월 김씨와 세금과 공통경비를 공제한 뒤 428억원을 받기로 구체화했다고 추가했다. ⑤ “실무진 반대에도 불구하고 ‘민간 초과 이익 환수’ 조항 없이 대장동 개발을 추진해 공사에 수천억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업무상배임 혐의도 통째로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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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인 남욱 변호사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은 뒤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청사를 나서고 있다. 뉴스1



법원이 지난 3일 영장실질심사에서 “소명이 됐다”라고 인정했던 남은 3억원 뇌물 혐의는 대가관계가 모호해졌다. ‘위례’ 대신 ‘대장동’을 넣으면서다.

공소장에 따르면 유 전 본부장은 2013년 3월 남욱 변호사에게 “대장동 개발사업 구획(區劃)계획도 니네 마음대로 그리고 다 해라. 땅 못 사는 것 있으면 나한테 던져라. 내가 해결해 줄 테니까”라며 “2주 안에 3억원만 해달라”고 먼저 요구한 것으로 나온다.

그러자 당시 대장동 민간개발을 추진하던 남 변호사가 정영학·정재창씨와 갹출해 돈을 마련한 뒤 2013년 4~8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 룸살롱과 성남시 분당구 일식집 등지에서 유 전 본부장에 최소 5회 이상에 걸쳐 모두 3억5200만원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장동 사업이 실제 추진된 건 1년여 뒤 2014년 11월 공사 내부 전략사업팀을 신설한 뒤부터다. 심지어 같은 해 4월 성남시와 성남도시개발공사는 당초 남욱 변호사가 추진하던 ‘환지(換地·도시개발구역 토지 대신 다른 곳 토지로 바꿔주는 것)와 수용의 혼합방식’이 아닌 ‘수용 방식’으로 도시개발을 추진한다는 대장동 개발 협약을 체결해 공표했다.

당초 검찰이 3억원을 위례 사업과 관련한 뇌물로 본 건 정영학 회계사가 지난달 27일 자술서와 함께 돈다발 사진 등 증거자료가 근거였다.

유 전 본부장 측근이자 남 변호사 서강대 법대 후배인 정민용 변호사(47·전 성남도공 투자사업팀장)도 지난 9일 검찰에 제출한 자술서 역시 “3억원은 위례사업에 대한 도움의 대가”라고 명시했다.

유 전 본부장이 업자들로부터 빌린 돈을 못 갚아 위기에 놓이자 남욱 변호사를 불러 ‘3억을 해줄 수 없냐’고 요구했고 남 변호사는 정재창·정영학과 함께 돈을 모아 성남시 정자동 아파트 유동규의 집으로 현금 3억을 들고 유동규 본인에게 직접 전달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유동규가 위례사업에 도움을 줘서 세 사람이 위례사업을 진행하게 됐던 걸로 알고 있다.”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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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 개발 의혹 자금 흐름 그래픽 이미지. 그래픽 디자인=김호준 기자 feelin9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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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수사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김씨가 공여한 뇌물 5억원에 대해 14일 영장실질심사 때 ‘현금 1억+수표 4억원’→‘현금만 5억’으로 정정했다가 결국 영장이 기각돼 수사가 위기에 처한 것 같다”며 “‘위례’를 ‘대장동’으로 바꾼 것도 대장동 뇌물을 하나라도 엮어 넣으려는 궁여지책 같아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뇌물은 물증이 없으면 대가관계와 공여자 진술의 일관성이 뒷받침돼야 하는 데 위례 뇌물도 되고, 대장동 뇌물도 된다는 식이면 유죄를 확신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수천억 배임 뺀 8쪽 ‘허술한 공소장’…이재명 구하기 결과?



이미 전달한 뇌물의 성격이 달라진 것도 문제지만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의 유 전 본부장에 대한 ‘700억 뇌물약속’ 역시 근거가 약해졌다. 구속영장엔 유 전 본부장과 김만배·남욱·정영학 세 명과 2015년 개발이익의 25%를 받기로 약정하고 지난해 10월 금액을 700억원으로 구체화했다고 했다가, 공소장에선 700억원 지급의 근거가 된 2015년 민간사업자 추진 당시 25% 약정을 뺐기 때문이다.

대신 공소장은 유 전 본부장이 지난해 10월 30일 성남 분당구 소재 한 노래방에서 김씨에게 ‘그동안 도와준 대가를 지급하라’고 요구하자 김씨가 ‘기여를 감안해 700억원을 지급하겠다’며 4가지 전달 방법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유원홀딩스 주식 고가 매수 ▶천화동인 1호 배당금 직접 수령 ▶김씨 수령 후 증여 ▶남 변호사의 명의신탁 소송을 통한 지급 등이다.

그런데 실제 김씨가 아니라 남 변호사가 지난해 9월 유원홀딩스와 관련해 35억원 지분 투자 약정을 맺고 20억원을 투자한 사실 등은 ‘700억 약속’의 진위와 관련해 밝혀야할 부분이다.

이를 두고 한 검찰 간부는 “남 변호사와 정 회계사의 녹취록을 위주로 공소장을 작성했지만 신빙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대한 수사가 턱없이 부족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대장동 특혜 의혹의 출발점인 배임을 빼고 개인 비리인 뇌물죄로만 공소제기를 하다 보니 논리적으로 허술할 수밖에 없게 됐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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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중·하준호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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