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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없어질듯 안 없어진 '좀비세금'…유류세 또 찔금 내리고 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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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말로 폐지 예정이었던 유류세가 정부의 인하 조치와 함께 생명을 더 이어가게 됐다.

25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유류세 유효 기간을 올해 말에서 2024년 말로 3년 연장하는 내용의 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법(교통세법) 개정 정부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다음 달 정기국회에서 교통세법 개정안이 통과한다면 일몰 기한(세법의 효력이 자동으로 사라지는 기한)이 연장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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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24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표시된 유가정보.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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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세법상 유류세란 용어는 없다. 정부가 이번에 인하하기로 한 유류세도 정확히는 교통세를 뜻한다. 여기에 교육세(교통세의 15%), 주행세(교통세의 26%), 부가가치세(10%)가 자동으로 따라붙기 때문에 뭉뚱그려 유류세로 부르고 있다.

정부에선 이미 유류세 일몰 연장을 기정사실로 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지난 21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유류세 인하 기간을 두고 “시기적으로 겨울을 넘어가는 수준이 될 것 같다”고 발언한 것도 같은 이유다.

현행 교통세는 보통휘발유 1L에 529원(경유 375원)씩 부과된다. 일반적인 세금과 달리 가격이 아닌 물량에 비례한다. 석유 값이 내리든 오르든 상관없이 소비량이 많을수록 세금 수입(세수)이 늘어나는 방식이다.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1994년 처음 교통세법이 생겨났을 때만 해도 휘발유 가격(공장도가격)의 150%, 경유는 20%가 교통세였다. 도로ㆍ철도 같은 교통시설 확충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겠다며 2003년까지 10년만 한시로 시행하기로 한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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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별 교통·에너지·환경세 수입.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1996년 유가 하락기에 세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걸 막기 위해 지금의 종량세(가격이 아닌 물량에 따라 세금 부과) 구조로 법 개정이 이뤄졌다. 2003년 이후 3년마다 일몰ㆍ연장을 거듭하며 오히려 덩치를 키워왔다. 거둬들인 세금을 쓸 수 있는 대상에 에너지ㆍ자원 사업, 환경 보전ㆍ개선 사업이 추가면서다.

물론 폐지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2008년 정부는 조세 체계 간소화 차원에서 교통세를 없애려 했지만 폐지 법안 시행을 앞두고 막판에 엎었다. 국회와 이익단체 반대를 넘지 못했다. 이후 유류세는 ‘좀비세’란 별명에 걸맞게 3년마다 생명 연장을 해오고 있다. 그 과정에서 휘발유를 1L 살 때마다 낸 돈의 절반가량이 유류세(부가세 합산)로 꼬박꼬박 나가는 지금의 구조가 자리 잡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가 닥쳤던 지난해에도 교통세 신고 납부액은 15조원을 넘었다. 자동으로 붙는 주행세까지 더하면 18조원에 육박한다. 코로나19 위기 전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오히려 코로나19 사태로 유가가 폭락할 때도 소비자는 그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가격 등락에 상관없이 소비량만큼 세금을 더 내는 방식이라서다.

현재 교통세는 단일 세목으로는 3대 세목인 소득세ㆍ법인세ㆍ부가세 바로 뒤를 이을 만큼 세수가 많은, 국민 부담이 큰 세금이다. 도로ㆍ철도 인프라가 어느 정도 갖춰진 상황에서 교통세에서 일명 탄소세, 에너지 전환 세제로의 개편이 필요하단 주장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 홍 부총리는 2018년 인사청문회 때 에너지 세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고도 손도 못 댔다. 대선 정국과 맞물려 제대로 시작도 못 하고 문재인 정부 임기를 다 보낼 형편이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이 문제를 지목했다. 지난 9월 발간한 ‘교통세 일몰 연장의 쟁점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최근 교통세와 관련한 과세 환경은 탄소 중립의 시대적 과제와 더불어 수소차ㆍ전기차 등 친환경 차량의 보급 확대에 따라 단순히 일몰 기한을 연장하는 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제반 여건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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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의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등에 대한 종합감사에 참석해 질의를 답변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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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26일 정부는 홍 부총리 주재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회의에서 유류세 인하 계획을 발표한다. 세금 인하가 실제 소비자가격에 반영되는 시점은 빨라야 다음 달 중하순이다. 국제유가가 가파르게 오르는 상황에서 유류세를 15% 또는 그 이상 낮추더라도 소비자가 느끼기엔 ‘찔끔 인하’에 그칠 수밖에 없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유류세를 인하하면 더 내야 할 세금을 덜 내는 효과가 물론 있겠지만 유가가 더 오르면 효과는 희석될 수밖에 없고, 정부가 목표로 한 물가 안정도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재정 적자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유가 보조금이 아닌 일괄 인하, 보편 지원을 이렇게 서둘러 결정한 것은 문제”라고 밝혔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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