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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과학은 무속보다 훨씬 신비롭다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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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천공. 정법시대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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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는 순간, 인간의 정체성은 근본적 도전에 직면했다. 인공지능(AI)과 인간이 벌인 이 세기의 바둑 대결은 우리에게 "인간 고유의 것은 과연 있는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을 남겼다. 인간의 신경망을 모방한 알파고는 단순 계산이 아닌, 바둑의 판세를 읽는 직관을 익혔다. 그동안 인간 고유의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어온 바로 그것이다. 이미 인공지능은 인간의 가장 높은 정신적 산물인 예술 작품도 만들기 시작했다.

과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자신의 저서 '특이점이 온다'에서 수확 가속의 법칙에 따라 인공지능의 진화 속도가 기하급수적이 될 것이라고 했다. 가까운 시일 내 인공지능이 인간 두뇌의 패턴 인식과 문제 해결 능력, 그리고 감정과 도덕적 지능까지 갖추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래서 초지능과 인간이 결합한 특이점에 곧 도달할 것이라고 했다. 그때 인간의 존재는 새로운 차원으로 전이되고, 삶과 죽음도 새롭게 정의될 것이다. 커즈와일 말에 따르면, 지금 우리는 특이점 직전인 U자 커브의 무릎에 와 있다.

뇌 과학이 밝혀낸 사실들도 인간의 주체성을 흔들고 있다. 뇌를 스캔할 수 있는 fMRI가 실험에 쓰이면서 놀라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가장 충격적인 발견은, 인간의 자유의지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뇌가 어떤 행동을 하기로 결정하기 0.5초 전에 이미 그 행동을 지시하는 신경 활동이 벌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그 신경 활동의 결과를 우리의 판단인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또 뇌 과학은 초보적 단계지만 브레인 리딩(brain reading)과 브레인 라이팅(brain writing)까지 성공했다. 우리의 생각을 읽고, 생각을 조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고도로 조작된 매트릭스가 머지않았다.

세계와 존재에 관한 가장 근본적 화두는 100년 전 아인슈타인이 던졌다. 이 세계의 절대적 배경이라 믿었던 시공간도 왜곡 가능한 물리량 중의 하나라고 선언했다. 지동설 이후 가장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속도뿐만 아니라 중력도 시간을 왜곡시킨다.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시간 지연의 과학적 배경이다.

현대물리학의 초끈 이론에 의하면 우리의 우주는 10차원 혹은 11차원이다. 시공간의 4차원 외 나머지 차원은 극미의 공간에 말려 있을 것이라 추측한다. 여분의 차원 일부가 시간에 할당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양자의 확률 파동과 양자적 얽힘은 더 놀랍다. 양자는 확률로서만 존재하고, 관찰할 때 확률이 붕괴되면서 한 곳에서 보인다. 관찰하는 행위가 존재에 영향을 미치는, 인식론의 문제를 던지고 있다.

윤석열과 친하다고 소문난 천공의 영상을 찾아봤다. 도인풍의 차림에 홍익인간의 이념과 접신을 버무려 얘기하는 걸 보고, 혹세무민하기 딱 좋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영상에서 허경영을 두둔하기까지 했다. 또 기본소득에 대해 경제사회적 배경 지식도 없이 막무가내로 비판했다. 완벽한 시대 지체자로 보였다. 특이점을 얘기하는 이 과학의 시대에, 역술과 무속의 얘기가 공론장에 떠돌아다니니 당혹스럽다.

과학은 무속보다 훨씬 신비롭다. 당신의 존재와 미래가 궁금하다면, 점집을 가기 전에 과학책을 보라. 거기엔 그 궁금증에 답하는 일급의 스승들이 즐비하다. 득도한 성철 스님도 생전에 물리학 책을 탐독했다.

한국일보

이주엽 작사가, JNH뮤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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