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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전쟁과 경영] 프롤레타리아의 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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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기원전 27년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로 집권한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석상 모습. 집권 후 미혼 남녀를 대상으로 한 독신세를 신설했다. [이미지출처= 로마 바티칸 미술관 홈페이지]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현대에는 노동자계급이란 뜻으로 쓰이는 단어인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는 원래 기원전 3세기 고대 로마에서 신고된 재산이 자식밖에 없는 사람을 뜻하는 ‘프롤레타리우스(proletarius)’란 용어에서 나왔다고 한다. 당시 로마에서는 부유층들은 세금을 냈지만, 재산이 없는 사람들은 세금 대신 전쟁에 나가야만 했다. 이로 인해 자신뿐만 아니라 군 복무를 대신 할 수 있는 자식들도 모두 재산으로 신고되면서 프롤레타리우스라는 용어가 탄생했다.

그러나 로마제국이 서기 1세기경 지중해권을 통합한 대제국으로 떠오른 이후 프롤레타리우스는 더 이상 무산계급을 뜻하는 단어가 아닌 부자들을 상징하는 말로 뜻이 바뀐다. 로마가 농업경제에서 여러 지역을 식민지로 거느린 상업제국으로 탈바꿈하면서 로마의 물가와 땅값은 치솟았고, 육아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자 많은 시민들이 출산을 포기하면서 출산율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기원전 3세기경 로마제국의 가구 평균 출산율은 10명 안팎에 이르다가 서기 1세기경에는 2~3명까지 급감한다. 유럽에서 중동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제국의 국경을 수비할 병력은 턱없이 모자랐고, 세금을 납부할 시민의 숫자까지 급감하면서 로마제국은 극단적인 저출산 방지 규제를 시행하기에 이른다.

로마제국이 실시한 대표적인 저출산 규제는 ‘독신세’였다.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는 25~60세 미혼 남성과 20~50세 미혼여성을 대상으로 연수입의 1%를 독신세로 징수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또한 50세가 넘도록 자녀가 없는 시민은 상속권을 박탈하고, 공직에도 임명될 수 없는 공직제한법까지 시행했다. 그럼에도 출산율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고, 오히려 많은 시민들은 위장결혼과 양자 입양으로 법망을 피해갔다.

같은시기 로마제국뿐만 아니라 중국의 지배왕조였던 한(漢)나라에서도 역시 독신세가 부과됐다. 30세 이상 미혼자녀가 있는 집안에는 규정의 5배에 해당하는 인두세를 적용해 국가가 결혼과 출산을 강제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 성종 때 역시 결혼 적령기가 넘은 자녀를 둔 공직자들은 엄히 처벌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처럼 강력한 저출산 규제에도 결혼과 출산 기피는 어느나라에서나 지속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사회가 발전할수록 애를 낳고 기를 경제적 상황은 점점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농업이나 수공업 기술 발전, 혹은 식민지 확대로 값싼 해외 노예들이 대거 수입되면서 단순노동직 일자리가 상당수 사라졌다. 로마 시민 대부분이 정부가 배급하는, 일명 ‘빵과 서커스’라 불린 기본소득을 받고 살아야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00년전이나 지금이나 저출산 문제의 근원은 결국 경제와 일자리였던 셈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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