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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시시비비]대출 규제만으로 가계 부채 줄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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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누구든 벌어들이는 소득보다 빌리는 부채가 빨리 증가하면 결국 상환도 할 수 없다. 어떤 나라든 가계부채가 많아지면 소비가, 기업부채가 많아지면 투자가, 정부부채가 많아지면 소비와 투자가 모두 둔화되어 저성장의 늪에 빠진다. 문재인 정부 등장 이후 국제기구들이 우려할 정도로 가계·기업·정부의 부채가 크게 늘었다. 특히 경제에서 비중이 가장 큰 가계부채는 더 심각하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기업과 정부보다 가계의 부채가 더 많고, 저소득층일수록 부채의 양과 질이 모두 악화하고 있다. 실제 실업률이 25% 정도로 가장 높은 청년층의 가계부채 증가율이 2021년 6월 기준 12.8%로 다른 연령 계층(7.8%)보다 훨씬 높은 데서 알 수 있듯이, 부채의 악화는 일자리 악화를 수반했다.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규모에서 전 국민이 1년 동안 벌어들인 소득 즉 국내총생산(GDP)과 비슷해졌다. 가계부채의 원인은 대부분 부동산이다. 부동산 가격이 안정적일 때는 가계부채가 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가계부채가 빠르게 증가했고, 주거 취약 계층일수록 심각해 20대의 전세자금 대출은 2017년에 비해 5배나 증가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식한 정부가 가계부채를 줄인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문제는 어떻게 가계부채를 줄일 것인지이다. 정부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도입해 상환 능력 심사를 강화하고, 은행은 물론 제2 금융권의 가계대출을 대폭 규제해 한도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한다. 당초 전세 대출도 규제를 한다고 했다가 반발 때문에 한 발짝 물러섰다.

상환 능력만 보고 가계대출을 일률적으로 줄이면 집 없는 저소득층은 직격탄을 맞는다. 전세도 구하지 못하고 월세로 입주해, 얼마되지 않는 소득의 많은 부분을 주거비에 쓰고 집 장만을 위한 저축은 꿈도 꾸지 못하게 된다. 게다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함에 따라 저소득층일수록 대출 금리의 상승 폭이 크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대출 규제의 강화는 제도권 밖 고금리 사채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 수도 있다. 부동산 정책의 실패가 그랬듯이, 원인은 놔두고 대출만 억제한다고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금융뿐 아니라 부동산과 세제 등을 포함한 가계부채 종합정책이 필요하다. 주택 부족으로 전월세 가격이 폭등하고 반면, 양도소득세의 강화로 주택 처분을 어럽게 만들어 놓고 가계부채를 줄일 수는 없다.

가계부채를 줄이자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가계부채의 총량을 그리고 빠른 속도로 줄이려고 한다. 이러다보면 목표치에 집착하고 성급해져 숫자 놀음의 우를 범하기 쉽다. 저소득층은 통계로 잡기 어려운 악성 부채에 시달리고, 중산층은 원리금 상환 독촉을 받지만 제때에 갚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 코로나19로 경기가 나쁜 상태에서 양극화되고 있기에 가계부채 줄이기 정책은 경기침체를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행과 금융당국은 코로나19 이전에 부동산이 폭등할 때 진작 금리를 인상하고 가계부채를 줄이는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 이러한 책무를 다하지 않고 지금 와서 부채가 많다고 마치 국민을 야단치듯이 규제의 칼을 휘두르면, 정부 스스로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 된다.

가계부채를 줄이는 데는 고통이 따른다. 국민에게 고통을 참으라고 요구하려면 정부부터 부채를 줄이는 솔선수범의 자세가 요구된다. 부동산 가격의 안정 등 가계부채를 줄이는 근본적인 대책이 나와야 책임있는 정부가 될 수 있다.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가 이런 정부를 만드는 계기가 돼야 한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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