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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강계만 특파원의 워싱턴 워치] 미-중 통상전쟁 2라운드 돌입… 강경대치 속 돌파구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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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의 관세폭탄을 동반한 통상전쟁이 ‘2라운드’에 돌입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이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대중 강경 통상정책 기조를 고수하면서 중국과의 충돌을 예고하고 있다.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10월 4일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에서 ‘25% 고율관세 유지와 미중 1단계 무역합의 이행 요구’라는 대중 통상정책의 밑그림을 제시했다. 이는 지난 1월 출범한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중국과의 모든 수출입품목을 검토한 끝에 9개월 만에 내놓은 결과물이다. 중국에 대한 기존 고율관세를 유지하고 트럼프 전 행정부에서 맺었던 합의부터 지켜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단계적 대응 방침을 세운 것이다. 곧바로 타이 대표는 류허 중국 부총리와 영상 통화하고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했다. 타이 대표는 중국을 향해 2000억달러 규모 미국 제품·서비스 구매 약속 준수를, 류허 부총리는 미국에게 고율관세와 제재 철폐를 각각 요구하며 맞섰다. 미국은 중국의 지나친 무역·산업 보조금에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타이 대표는 중국의 행동에 따라 무역법 301조에 근거한 고율관세 등의 보복조치도 꺼낼 수 있다고 벼르는 상황이다. 그러나 분쟁보다는 우선적으로 중국과 통상문제를 대화로 풀어보려는 노력이 선행되고 있다.

▶美 공급망 안정화 위해 중국과 경제안보 대립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일성으로 “미국이 돌아왔다”며 트럼프 전 행정부에서의 정책 대부분을 되돌렸지만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통상정책을 답습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공화당이 아니라 이례적으로 ‘민주당 방식’의 보호무역정책을 펼친 터라 바이든 대통령은 노선변경 없이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미국이 주요 제품에 대한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서는 ‘세계의 공장’인 중국을 관리하며 불확실성을 줄일 필요가 있다. 중국과의 핵심제품 수출입 과정에서 우위를 확보하며 경제안보를 지켜가겠다는 뜻이다. 미중 간의 산발적인 무역 분쟁이 이른바 통상전쟁으로 확전한 시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취임 직후인 2017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국산 수입 타이어에 최고 65% 관세폭탄을 던지면서 통상전쟁 포문을 열었다. 이어 2018년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세 차례에 걸쳐 모두 2500억달러 규모 중국산 수입품에 25% 관세를 물리고, 이에 맞서 중국은 1100억달러어치 미국산 제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기도 했다. 또 통상 갈등은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 등 환율전쟁으로 번지는 등 양국 갈등은 2019년 최고조에 이르렀다.

매일경제

10월 6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왼쪽)과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오른쪽)이 회담하고 있다. 이날 양측은 연내 영상으로 미중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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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치열했던 미중 무역전쟁은 2020년 1월 1단계 무역합의를 체결하면서 가까스로 봉합됐다. 무역합의 내용을 보면, 미국이 고율관세를 자제하기로 약속한 가운데 중국이 2020∼2021년 기간에 미국 제품과 서비스를 2017년 대비 2000억달러(약 237조원) 추가 구매하기로 했다. 그러나 중국은 올해 들어 8월까지 약속한 대미 수입량 가운데 69% 정도 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바이든 정부가 대중국 압박에 새롭게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1단계 무역합의는 2021년 12월 말에 종료된다. 또 양국은 중국의 산업 보조금, 국영기업 특혜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 무역합의 2단계 협상과제로 남겨뒀지만 협상에 진전은 없었다.

타이 대표는 바이든 정부에서 대중국 무역정책을 전략적으로 재조정하는 배경으로 미국의 노동자 이익보호를 최우선으로 내세웠다. 또 미국의 비즈니스, 농업, 생산자, 중산층 이익을 지킬 것이라고 했다. 그는 중국의 국가 중심적이면서 비시장적인 무역관행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타이 대표는 “중국이 너무나 오랫동안 세계 무역규범을 준수하지 않으면서 미국과 다른 나라의 번영을 약화시켰다”며 “미국은 1단계 무역협정에 따른 성과를 중국과 논의하겠다”고 선전포고를 했다. 미국의 대중국 통상정책 세부방향은 ▲미·중 1단계 무역합의 성과 논의와 이행 촉구 ▲관세 면제를 위한 ‘표적관세 배제 절차’를 적용하더라도 그 전까지 기존 25% 관세 유지 ▲중국의 비시장적인 무역관행에 대한 우려 제기 ▲21세기 공정무역 규칙 제정 등 네 가지이다. 여기서 표적 관세 배제 절차는 트럼프 전 행정부 시절 중국 수입품 외에 대안이 없으면 관세 적용의 예외로 했던 제도인데, 작년 말 시한이 만료된 바 있다. 타이 대표는 중국과의 긴장 상태를 심화하는 것은 미국의 목표가 아니라고 했다.

미국은 중국에서 1단계 무역합의 내용을 검토할 수 있도록 시간도 제공하면서 대화를 우선시했다. 중국과 2단계 무역합의를 위한 협상에는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충돌 최소화에 방점을 찍었다. 그러나 그는 “해로운 정책과 무역관행으로부터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우리가 갖고 있거나 새로운 모든 범위의 도구를 사용할 것”이라며 무역법 301조 발동 여지를 열어뒀다.

타이 대표는 동맹과의 협력을 통해 공정한 무역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했다. 중국과의 통상전쟁이 ‘탈동조화(Decoupling·디커플링)’라는 분석에 대해서는 “국가 경제 관점에서 현실적 결과라고 보지 않는다”며 미국이 추진하는 것은 ‘재동조화(Recoupling·리커플링)’라고 설명했다. 중국과 복잡하게 얽혀있는 ‘차이메리카(Chimerica·중국과 미국 합성어)’ 시대에 단절보다는 경쟁과 협력 속에서 공존을 통해 미국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타이 “무역합의 1단계 준수해야”

류허 “고율관세 제재 철폐해야”


미국과 중국 통상 분야 고위급 대표들은 1단계 무역합의 이행을 놓고 각자의 입장을 충실히 설명하면서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타이 미국 USTR 대표는 10월 8일 류허 중국 부총리와의 영상 통화에서 2000억달러 규모의 미국 제품·서비스 구매 약속 준수를 촉구하면서 중국 정부의 주도적이고 비시장적인 관행에 문제제기를했다. 반면 류허 부총리는 추가관세와 제재 철회에 대해 교섭을 제기하면서 자국의 경제발전모델과 산업정책 등에 대한 입장을 타이 대표에게 전했다. 미국 USTR는 이번 회담에 대해 “솔직한 대화 과정에서 타이 대표와 류허 부총리는 ‘양국 무역관계가 미국과 중국을 넘어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설명했다. 외교적인 회담에서 ‘솔직한 대화’라는 문구는 의견충돌상황을 완곡하게 쓰는 표현이다. 미국과 중국은 1단계 무역합의 진척 사항을 검토하고 나서 미해결부문을 협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중국 측은 미국의 공세적인 요구에 즉각 반발하고 있다. 중국의 미국 물품 구매액이 합의 목표액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에 대해 친강 미국 주재 중국대사는 “중국은 국가 간 약속을 항상 지켜왔다”고 반박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연내 화상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뜻을 모으면서 양국 통상 현안에도 합의점이 도출될지 주목된다. 미중 무역합의 1단계 종료 시점이 올해 12월인 점을 고려하면 어떤 형태로든 이른 시일 내 양측 통상 접점을 찾아가는 노력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 제품에 대한 기존의 고율관세 정책이 충분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 중국산 수입품의 대체품을 찾기 힘든 데다 미국 산업구조상 자체 생산으로 조달하기도 어려웠다. 이로 인해 고율관세는 중국산 제품에 의존하는 미국 기업에 오히려 부담이 됐고, 관세만큼 제품가격에 전가되어 미국 소비자 피해로 나타나는 상황이다. USTR는 12월 초까지 중국산 제품에 대한 고율관세 부과가 미국 중소기업, 일자리,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할 예정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절정이던 2019년 중단됐던 양국 에너지협력 움직임은 물밑에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전력난에 처한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천연가스 수입을 재추진한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시노펙과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 등 5개 이상의 중국 에너지 기업들이 셰니어에너지, 벤처글로벌 등 미국 천연가스 회사들과 수입 협상을 진행 중이다. 로이터는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수백억달러 가치의 천연가스 수입을 늘리는 쪽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미중이 정치외교적인 현안을 놓고 격돌하더라도 이처럼 경제 분야에서는 자국 이익을 위해 경쟁과 협력을 동시에 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강계만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4호 (2021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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