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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손일선 특파원의 차이나 프리즘] 불꺼진 공장, 치솟는 원자재… 중국에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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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게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 중 하나가 ‘세계의 공장’이다. 세계로 수출되는 물건을 생산하는 중국 전역의 공장들은 중국 경제를 든든하게 받치는 기둥이다. 중국의 서비스 산업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제조업의 위상이 예전 같지는 않다고 해도 중국 제조업의 GDP 대비 비중은 여전히 30%에 육박한다.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비율이다. 이런 중국의 제조업이 흔들리고 있다. 원자재 가격 폭등, 수출 둔화 가능성 등 악재가 계속 쌓이는 가운데 사상 최악의 전력난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외신들은 “헝다발 유동성 위기보다 중국의 전력난이 더 큰 위기”라며 전력난이 장기화되면 중국 제조업은 물론 중국 경제 전체가 휘청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중국 제조업의 위기를 근거로 중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고 있다.

도대체 중국의 전력난이 어떤 상황이기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것일까. 중국 현지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지난 9월 중순부터 광둥성, 저장성, 장쑤성,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 등 최소 중국의 20개 성(省)급 행정구역에서 산업용 전기 공급이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제철 등 에너지 소비가 많은 일부 산업은 공장 문을 아예 닫게 하거나 공장을 가동하더라도 야간에만 허용하는 등 사실상 전기 배급제를 실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력난으로 중국 내 상당수 공장들의 가동이 중단되면서 애플과 테슬라 등 글로벌 기업들도 부품 공급에 차질을 빚었다. 관영매체인 글로벌타임스는 “테슬라에 부품을 공급하는 이성정밀과 아이폰에 스피커를 공급하는 콘크래프트의 중국 공장이 전력난으로 한동안 문을 닫았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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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장쑤성 난닝에 있는 한 석탄 화력 발전소에서 연기가 배출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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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일부 반도체 기업도 전력 공급 부족 때문에 생산을 일시 중단하면서 반도체 공급 위기가 더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중국의 전력난이 글로벌 공급망 혼란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같은 중국의 전력난은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겨울철을 앞두고 에너지 수요는 더 늘어나는데 전체 발전량은 단기간에 늘어나기 힘든 구조다. 작년 기준 화력발전은 중국 전체 발전용량의 68%를 차지한다. 하지만 지금 중국의 석탄 비축량은 사상 최저 수준이다. 러시아, 인도네시아, 몽골 등에서 석탄 수입을 빠르게 진행해 공급을 늘린다는 계획을 내놨으나 아직 구체적인 성과는 없다. 더욱이 중국의 최대 석탄 수입처 중 하나인 호주에서의 석탄 수입은 여전히 금지되어 있다. 일각에서는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당국의 에너지 통제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 통제로 판매가엔 높아진 비용 반영 못 해

중국 9월 제조업 PMI도 경기 위축으로 전환


중국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 해외에서 베이징을 찾는 선수단과 관람객에게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을 숨기기 위해 베이징 인근에 있는 모든 공장 문을 닫게 하는 파격 조치를 취했다. 내년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을 앞두고도 2008년과 유사한 정책이 시행될 가능성이 있다. 베이징 공기 질을 관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전력난이라는 악재까지 터지면서 중국 당국이 베이징 인근 공장 셧다운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처럼 전력난이 장기화될 경우 중국 제조업은 물론 중국 경제는 큰 내상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용 전기 공급 제한이 이뤄지고 있는 20개 지역은 생산 공장들이 밀집돼 있어 중국 전체 GDP의 66%를 담당하고 있다. 이 지역들 공장의 불이 꺼지면 중국 경제가 직접적인 타격을 입는 구조인 셈이다.

치솟는 원자재 가격도 중국 제조업을 수렁으로 밀어 넣고 있다. 석탄,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중국의 9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작년 동월 대비 10.7% 상승했다. 이 같은 상승률은 통계 집계가 시작된 1996년 이후 2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이처럼 중국의 생산자물가가 급등하면서 제조기업들의 원가부담이 크게 늘어났다. 하지만 기업들이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인해 오른 비용을 제품 가격에 거의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 이날 PPI와 함께 발표된 9월 중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0.7%에 그쳤다. 내수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데다 정부의 통제로 인해 소비자 가격은 상승곡선을 그리지 못한 것이다. 이에 따라 PPI와 CPI의 격차는 10%포인트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맥쿼리그룹의 중국 수석이코노미스트인 래리 후는 “생산자물가지수와 소비자물가지수의 격차가 줄어들지 않으면 제조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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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랴오닝성 선양의 한 남성이 정전으로 캄캄해진 식당에서 스마트폰 불빛에 의존하며 식사를 하고 있다. 최근 중국 21개 성에서 전력 공급 제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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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중순에 발표되는 10월 PPI 상승률도 고공행진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원자재 가격이 계속 치솟고 있는 데다 중국 당국이 산업용 전기료 가격 인상을 사실상 허용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전력난에 대응해 석탄화력 전기요금을 정부가 정하는 기준가에서 상하 20%까지 변동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 10%에서 변동폭을 늘려 발전업체들이 석탄 가격 상승을 전기요금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톈펑증권은 전기료 인상으로 PPI가 1%포인트 더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연장선에서 중국 제조업 경기도 지난해 초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위축 국면에 진입했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9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전달의 50.1보다 낮은 49.6을 기록했다. 기업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작성되는 제조업 PMI는 관련 분야 경기 동향을 보여주는 지표다. 50을 기준선으로 해 이보다 위에 있으면 경기 확장을, 이보다 밑에 있으면 경기 위축을 의미한다. 중국의 제조업 PMI가 50 밑으로 떨어져 경기 위축 구간으로 밀린 것은 코로나19 충격이 가장 극심했던 작년 2월(35.7) 이후 19개월 만에 처음이다. 제조업 PMI를 구성하는 생산지수와 신규수주지수, 원자재재고지수, 종업원지수, 물류배송지수 모두 임계점인 50 이하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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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의 위기는 곧 중국 경제의 위기로 이어진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중국의 올해 성장률 예상치를 기존 8.2%에서 7.8%로 하향 조정했다. 노무라증권도 중국 경제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8.2%에서 7.7%로 내렸다. 노무라증권의 중국 담당 이코노미스트 루팅은 “이미 하향 조정했으나 앞으로 추가적인 하방 위험도 있다”고 경고했다. 모건스탠리는 정전에 따른 생산 감축이 올해 내내 지속한다면 4분기 중국의 GDP 성장률이 1%포인트 낮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중국 정부가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4분기에 다양한 경기부양책을 꺼내들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급준비율 추가 인하다.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지난 7월 지급준비율을 0.5%포인트 인하한 바 있다. 지급준비율을 인하하면 금융기관들의 대출 여력이 커지게 된다. 지방 특수채 발행을 통해 재정정책을 완화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일각에서는 그동안 부동산 시장에 규제 일변도 정책을 펴왔던 중국 당국이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위해 지원방안을 발표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왕즈강 중국재정과학원 연구원은 “연간 경제성장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중국은 4분기에 전력질주를 해야 한다”며 “재정 지원 정책과 투자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손일선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4호 (2021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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