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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문재인 대통령님, 저와 손잡고 유엔 고문방지위원회로 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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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

“일본 때문에 국제사법재판소 못 가면 방법 있어”

이 할머니, 대안으로 유엔 고문방지협약 절차 제시

‘일본 동의 필요 없어 우리 정부 정치적 의지 중요’

이 할머니, 문 대통령 17번 부르며 눈물로 호소

세계일보

26일 오후 대구 중구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위안부 문제 유엔고문방지협약(CAT) 해결 절차 한국 단독회부를 촉구하는 온라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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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님, 저와 손잡고 유엔 고문방지위원회로 가주세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대구 희움 일본군위안부역사관에서 26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이 할머니는 문 대통령이 임기 초반부터 피해자를 중심에 두고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날까지 해결된 것은 없고, 오히려 “크게 후퇴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2월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위안부 문제를 회부하겠다고 밝혔지만 일본은 대답을 회피하고, 한국은 일본 핑계를 대고 있다면서 향후 이 문제를 유엔 고문방지협약(CAT)에 따라 해결하자고 촉구했다. 국제법상 ICJ 회부는 일본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CAT를 활용하면 한국 정부 단독으로 위안부 문제를 유엔 고문방지위원회에 안건으로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용수 할머니 “제 발걸음이 더 느려지기 전에...”

이 할머니가 위원장으로 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ICJ 회부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는 이날 한국 정부가 단독으로 CAT에 따른 해결절차를 밟을 것을 촉구했다. CAT는 고문과 학대 행위를 퇴치하기 위해 1987년에 발효된 국제인권조약으로 한국과 일본은 각각 1995년과 1996년 가입했다.

이 할머니는 편지 형식을 통해 문 대통령에게 CAT에 따른 절차를 촉구할 수밖에 없는 배경을 눈물로 설명했다. 이 할머니는 지난 2월 위안부 문제의 ICJ 회부 의사를 밝혔지만 11월이 다 되도록 청와대 등 우리 정부는 아무런 설명 없이 일본 핑계만 대고 있다고 전했다. 추진위에 따르면 이 할머니의 ICJ 회부 제안에 일본 정부는 답변을 피했고, 한국 정부는 ‘일본이 ICJ 회부 제안에 응할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소극적인 입장이다.

이 할머니는 ICJ 회부 절차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일본의 역사 왜곡 시도 등 피해자의 명예가 훼손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님은 취임 초부터 피해자 중심의 해결을 강조했지만 그런데도 올해 초에 일본과 관계 개선을 위해 2015년도에 (이뤄진) 졸속 합의를 국가 간 합의로 인정하셨다”면서 “(이후) 일본은 도리어 한국이 해결책을 가져오라고 큰 소리를 치고 있다”며 개탄했다. 이 할머니는 이어 “1993년 발표한 고노 담화도 무시하면서 해외에서는 하버드대학교 교수 같은 학자들을 동원해서 엄연한 역사를 왜곡하고 우리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지 않습니까”라며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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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7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환영 국빈만찬이 열린 청와대 영빈관에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악수하고 있는 모습.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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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일본 동의 없이도 국제적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판단을 받아볼 수 있는 방법으로 유엔 고문방지협약을 제시했다. 이 할머니는 “일본 때문에 국제사법재판소에 못 간다면 일본 동의 없이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하니 알려드리겠다. 유엔에 고문방지협약이라는 국제조약이 있다”면서 “한국에 피해자들 뿐 아니라 전 세계 피해자들을 위해서 한국 정부가 유엔 고문방지위원회에 위안부 문제를 가져가서 일본이 위안소 제도를 만들고, 운영한 것은 전쟁범죄였고, 반인류 범죄였다는 명백한 판단을 받아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제 발걸음이 더 느려지기 전에, 우리 할머니들이 한 분이라도 더 돌아가시기 전에 제발 이 문제해결을 위해 앞장서 주세요”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 할머니는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이름을 17번 부르며 이 제안을 들어줄 것을 호소했다.

◆유엔 고문방지협약, 효과적인 해결 수단될까

이 할머니 측은 조약의 실체적인 내용은 물론 절차적 측면에서 CAT를 활용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입은 피해가 CAT가 규정하는 ‘고문’ 또는 ‘잔혹한, 비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에 충분히 해당하고, ICJ 회부 절차와 달리 일본의 동의 없이 우리 정부 단독으로 CAT 고문방지위원회를 통해 판단을 받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CAT는 제1조를 통해 ‘고문’을 ‘공무원이나 그 밖의 공무수행자가 직접 또는 이러한 자의 교사, 동의, 묵인 아래 모든 종류의 차별에 기초한 이유로, 개인에게 고의로 극심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로 규정한다.

실제 고문방지위원회는 1990년대 세르비아 민병대에 의한 보스니아 여성의 강간 범죄를 ‘성’과 ‘민족’에 기초한 차별에 따른 ‘고문’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신희석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박사는 “위안소에서 일본 군인들이 저항하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협박하고 성행위를 강요한 행위는 CAT의 고문 조항에 해당한다”면서 “2013년 CAT는 ‘위안부’라고 불리는 일본군 성노예제 관행에 대해 일본이 고문방지협약상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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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진위 측은 아울러 CAT가 제2조 및 14조 등을 통해 가해자 책임과 피해자 구제를 명시하고 있다면서 이는 현재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7가지 요구사항과 부합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피해 할머니들은 진상규명, 전쟁범죄 인정, 공식사죄, 법적 배상, 책임자 처벌, 역사교과서 기록,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 등 7가지를 일본에 요구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를 CAT 절차에 따라 진행하는 것에 대해 일본의 동의는 필요하지 않지만 피해자 개인이 추진할 수는 없다. 일본이 개인의 진정 권한을 인정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조항 제21조에 따라 한국 정부만이 일본에 국가간 통보를 통해 조정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할머니가 문 대통령에게 “꼭 이것만은 들어주세요”라고 호소한 것도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국가간 통보 절차가 아직까지 활용된 사례가 없고, 협약이 발효되기 전에 위안부 문제가 발생해 소급 적용 문제가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해 추진위는 “CAT와 비슷한 유엔 인종차별철폐협약에서 국가간 통보절차가 실시된 바 있고, 협약 발효 전 사건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판결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다”면서 “한국 정부의 정치적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쓸 수 있는 절차”라고 강조했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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