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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단독] 재택근무 사상 첫 100만명 돌파…펜데믹후 2년새 12배 폭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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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가온 일상회복 ③ ◆

SK그룹에서 일하는 이 모씨는 최근 석 달째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이씨가 소속된 팀은 팀장 재량으로 재택근무제를 적용하고 있는데 7월 델타 변이 사태 이후 '재택모드'에 들어갔다. 그는 "출퇴근에 2시간씩 썼는데 통근 시간을 아껴 보다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며 "다음달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 체제로 전환돼도 탄력적인 근무체계가 계속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면서 일의 행태가 바뀌는 가운데 올해 재택근무자가 사상 처음 100만명을 돌파했다.

26일 매일경제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원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8월 기준 재택·원격근무제 근로자는 114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0만3000명)에 비해 2.3배 급증했다. 전체 임금근로자(2099만명)에서 재택근무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년 새 2.5%에서 5.4%로 늘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며 대면 접촉을 꺼리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 게 직접적인 원인이다.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9년만 해도 국내 재택근무자는 9만5000명으로, 전체 임금근로자의 0.5%에 그쳤다. 하지만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국면 이후 최근 2년 새 무려 12배가 폭증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다음달 위드 코로나 체제로 전환돼도 재택근무 문화가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팬데믹 이후에도 매일 출근은 옛말…재택비중 20%까지 늘것"

재택근무 첫 100만명 돌파

출퇴근 시간 줄고 삶의 질 만족
MZ세대 특히 만족도 많아

메타버스·화상회의 기술 싹터
새로운 IT산업 생태계 자극

美선 "생산성 5% 증가" 분석
합리적 인사평가 체계 마련해야

매일경제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재택·원격근무 중인 직장인이 114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26일 서울 시내 한 구청 사무실의 한 공무원 자리에 `재택근무 중`이라는 종이가 붙어 있다. [박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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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C그룹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는 MZ세대 김상진 씨(32·가명)는 지난해 이후 재택근무제가 정착되자 한동안 손을 놨던 마케팅 서적을 잡았다. 김씨는 "출퇴근 교통비를 아끼는 대신 그 돈으로 각종 마케팅 경영 전략서를 사서 공부하고 있다"며 "앞으로 원격 방식으로 국내 MBA 과정에도 도전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 중견기업 차장인 이 모씨는 코로나19 이후 영상회의 플랫폼인 줌, 구글밋, 네이버 밴드를 통해 재택근무를 했는데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 매일 회사로 출근했을 때보다 좋은 성과 평점을 받았다. 이씨는 "원격 업무에 숙달되다 보니 문서 작업은 여러 건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게 되면서 오히려 업무 효율성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비대면 근무 문화가 확산되면서 직장인들의 근무 풍경이 급변하고 있다. 26일 매일경제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재택근무 근로자는 114만명(8월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2.3배 불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 재택근무자가 100만명을 돌파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전체 임금근로자(2099만명) 중 재택근무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년 새 2.5%에서 5.4%로 늘었다.

장성철 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비대면으로 전환할 수 있는 업종이 상당한데 아직 이들 업종까지 재택근무가 확산되지 않은 상태"라며 "향후 10년 안에 전체 임금근로자 중 재택근무자 비중이 10~20%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음달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 국면으로 전환해도 재택근무자는 더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당장 재택근무를 하고 싶다는 근로자들이 100만명 이상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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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재택근무 등 유연근무제를 도입하지 않은 회사에 다니는 임금근로자 중 118만8000명은 '향후 재택근무 도입을 희망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장 교수는 "메타버스를 비롯한 디지털 기술이 이제 막 무르익기 시작했고 일할 때 일하되, 무리하게 사회관계를 맺기 싫어하는 MZ세대가 주축으로 부각되고 있다"며 "위드 코로나 국면에도 재택근무가 더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 전문가들은 역설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이 잠자고 있던 한국의 비대면 '디지털 잠재력'을 깨운 것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주요 대기업은 자체적으로 원격근무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삼성그룹의 녹스 미팅이나 SK그룹의 데스크톱 가상화(VDI) 같은 비대면 플랫폼이 대표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재택근무 기술력을 갖췄지만 대면 업무를 선호하는 한국의 직장문화 특성상 이를 잘 활용하지 않았던 측면이 있다"며 "코로나19라는 외부 변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비대면 기술을 꺼내 썼는데 생각보다 성과가 잘 나오자 재택근무 트렌드가 확산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기왕 깨어난 디지털 잠재력을 잘 살려 나가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이영면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재택근무가 활성화하면 새로운 정보기술(IT) 산업 생태계를 자극하면서 직장인들의 업무 형태도 다각화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최근 미국 민간 싱크탱크인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지난해 코로나19 국면 이후 미국 노동시장을 분석한 결과 주 2~3일 재택근무를 한 노동자는 통근비 등이 줄면서 월 소득이 5% 높아지는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NBER는 "코로나19 대유행이 끝난 후에도 자발적인 재택근무가 적절히 활용되면 최대 5% 수준에서 노동생산성이 늘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재택근무 확대에 따른 부작용도 있는 만큼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재택근무 장점으로는 통근시간 절감, 유연한 업무 환경에 따른 삶의 질 개선, 우수 인력 확보 기회 증가, 이·퇴직률 하락에 따른 고용비용 경감 등이 손꼽힌다. 이 같은 장점은 고스란히 단점이 될 수 있다. 주거지와 근무지 간 경계가 모호해지며 노동시간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 가사 부담 증가, 유기적인 의사소통 감소, 근무 태만 등 직원 관리비용 증대 등 생산성을 떨어뜨릴 수 있는 요인도 갖고 있다.

이상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팀장은 "미국에서는 재택근무 여부가 우수 인력 확보의 중요 기준이 됐다"며 "합리적인 인사 평가 체계와 안정적인 재택근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기업 경쟁력을 가늠하는 핵심 요인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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