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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비정규직 제로'라더니...비정규직 800만 시대 연 문 정부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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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 정규직화 외치고 산업구조 대응에는 실패
취업률 높이려 고령층 단기 일자리 양산도 영향
한국일보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시민들이 일자리 관련 상담을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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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근로자 수가 지난 1년 새 64만 명 늘어나면서 통계 작성 후 처음으로 '비정규직 800만 시대'가 열렸다. '비정규직 제로(0)'를 공약으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에서 비정규직 수가 더 빠르게 증가하는 역설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 정부가 코로나19 이후 불안정한 고용시장, 플랫폼 노동 확산 등 산업구조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취업자 수를 높이기 위해 고령층 단기 일자리를 양산하면서 오히려 비정규직이 증가하는 부작용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26일 통계청의 ‘2021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지난해보다 64만 명 늘어난 806만6,000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임금근로자(2,099만2,000명) 가운데 비정규직 근로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38.4%에 달한다. 비정규직 수, 비중 모두 통계청이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4년 이후 최대다.

올해보다 비정규직 수가 더 많이 늘어난 것은 2004년(78만5,000명), 2019년(86만7,000명)뿐이다. 이 중 2019년은 국제노동기구(ILO) 기준 강화에 대응해 조사 방식을 바꾸면서 자신이 비정규직이라고 응답한 근로자가 많이 늘어난 영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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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물_최근 3년간 비정규직 규모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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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는 플랫폼 노동이 확산하는 등 노동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꼽힌다. 실제 파견·용역직 등 이른바 ‘비전형 근로자’가 전체 비정규직 증가 폭의 3분의 1 수준인 20만5,000명 늘어났는데, 이 중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가 6만2,000명 증가했다.

정부도 "코로나19 회복 과정에서 채용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계약기간이 정해진 기간제 일자리를 중심으로 고용이 늘어났다"며 비정규직 증가 원인을 산업·고용구조 변화에 돌렸다.

그러나 정부 설명만으로 최근의 비정규직 증가세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플랫폼 시장과 관련없는 고령층, 대면 서비스업에서도 비정규직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정부의 단기 일자리가 지난 4년간 대폭 늘어난 것이 비정규직 증가와 연관이 있다고 보고 있다. 문 정부는 코로나19로 고용시장이 얼어붙자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공공일자리를 꾸준히 공급해 왔다.

실제 지난 1년간 60세 이상 비정규직 수는 27만 명이 늘어났다. 업종별로도 보건사회복지서비스업(22만8,000명)에서 비정규직이 가장 많이 증가했다.

문재인 정부가 비정규직 감소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문 대통령은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등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꾸준히 밀어붙여 왔다. 지난 6월까지 공공부문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근로자는 19만6,000명에 달한다.

하지만 이는 비정규직 감소에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비정규직 수는 문재인 정권 첫해인 2017년(657만8,000명)과 비교해서는 148만8,000명, 통계 단절을 고려해 2019년과 비교해도 58만5,000명이나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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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근로자의 근로형태별 규모. 통계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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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장을 지낸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이 사태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말뿐인 성장정책에서부터 예견됐던 것”이라며 “2019년 발생한 비정규직 급증에 대해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고 정책 실패를 겸허히 반성했다면 이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태기 전 단국대 교수도 “지금은 예산을 투입해 공공일자리 사업이라도 벌이고 있지만,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업자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 =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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