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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세수 확보에 웃는 정부…국내 기업 최소 81곳 ‘최저한세’ 발등에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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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판 뒤흔드는 ‘디지털세’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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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이사회 디지털세 합의를 발표하는 앤서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파리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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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회피 논란 있던 넷플릭스 등
매출정보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어
과세권 확보 용이…추가 징수 기대

명목세율 낮은 국가로 진출한 기업
내부 운영 대책 ‘전략 조정’ 가능성

2023년 도입되는 ‘디지털세’는 전 세계 조세 제도와 기업 환경의 판을 바꾼다. 정부로서는 그간 한국에서 큰돈을 벌면서 세금은 안 낸 해외 기업들에 대한 과세권을 갖게 된 점은 긍정적 요인이다. 기업 입장에선 저세율 국가에 진출해 그간 이익을 취했던 경영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 헝가리 등 명목세율이 낮은 국가에 진출했던 국내 기업은 최소 81개다. 각종 조세 혜택으로 실효 세율이 낮은 베트남 같은 나라에 진출한 기업까지 포함하면 앞으로 세금을 더 물게 되는 기업 숫자는 훨씬 더 늘어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주요 20개국(G20) 포괄적이행체계(IF)는 지난 8일(현지시간) 총회에서 회원국 136개국이 동의한 디지털세 최종합의문을 발표했다. 디지털세는 필라1과 필라2로 구분된다. 필라1은 다국적기업이 매출 발생국에 세금을 낼 수 있도록 과세권을 여러 나라에 배분하는 것이 골자다. 이번 IF 회의에서는 초과이익 배분비율(배분총량)을 지난 7월 합의된 20~30%에서 25%로 확정했다. 2023년부터 글로벌 합산 매출 가운데 통상이익률(10%)을 초과하는 이익의 25%를 매출이 발생한 국가에 내야 한다는 의미다. 필라2는 글로벌 최저한세율 15%를 적용한다는 것이다. IF는 지난 7월 회의에서 ‘15% 이상’으로 협의했던 내용을 이번 10월 최종 합의문에서 15%로 확정지었다. 연결매출액 7억5000만유로(1조원) 이상 다국적기업은 2023년부터 15% 글로벌 최저한세를 적용받는다.

정부는 필라1·2 도입이 세수와 과세권 확보에 모두 긍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3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를 마친 뒤 특파원들을 만나 “세수가 소폭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필라1 도입 시 우리 기업이 해외에 납부하는 것보다 다국적기업들이 국내에 내는 세금이 더 많을 수 있다. 2023년 필라1이 적용되는 국내 기업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로 추정된다. 2030년부턴 연 매출액 기준이 200억유로에서 100억유로로 낮아져 적용 기업이 3~5개 정도 더 늘어난다.

정부는 이들 기업이 해외에서 세금을 더 내는 만큼 국내 법인세를 공제해주기로 했다. 김태정 기재부 신국제조세규범 과장은 통화에서 “이중과세 해소를 위해 시행 중인 외국납부세액공제 제도에 필라1 적용 기업도 대상이 되도록 법령 정비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국내에 세금을 물게 되는 해외 다국적기업은 구글 등 80여개로 추산된다. 특히 넷플릭스 등 그간 조세회피 논란이 있던 기업들이 매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어 과세권 확보가 용이해질 수 있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한국에서 매출 4154억원을 내고 법인세는 21억원을 납부했다가 국세청 조사를 받아 800억원을 추가로 징수받았다.

필라2는 정부 입장에선 세수 플러스 요인이지만 해외에 진출한 기업 입장에선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하는 부담이 생길 수 있다. 저세율 국가에 진출해서 그간 낮은 법인세 혜택을 받은 국내 기업들이 15% 미달하는 추가 세금을 한국에 내야 하기 때문이다. 2021년 OECD가 발표한 국가별 명목 법인세율 기준을 보면 최저한세율이 15%가 안 되는 나라는 스위스, 버진아일랜드 등 22개국이다. 법무법인 율촌이 합의문 기준(매출 1조원 초과, 해운업 제외)으로 필라2 대상 국내 기업을 산출한 결과, 저세율국 22개 나라에 진출한 한국 법인은 총 81개고, 이 기업은 이들 국가에 연결 종속 법인 총 150여개를 두고 있었다. 최소 81개 기업은 필라2 대상이 확실시된다는 얘기다. 현시점에선 매출이 1조원에 다소 못 미치는 60여개 법인과 헝가리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진출 예정인 기업들을 합치면 더 많은 기업들이 필라2 시행 시점인 2023년에는 과세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밖에 명목세율은 15% 이상이지만 각종 조세 혜택으로 실효세율이 낮은 베트남도 사정권에 들어올 수 있다. 베트남은 낙후 지역 투자나 첨단기술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기업에 우대세율 10%를 적용하고 있다. 이동훈 법무법인 율촌 미국회계사는 지난 9월 대한상공회의소 토론회에서 “매출 1조원 초과 기업 중 베트남에 진출하지 않은 한국 기업을 세는 게 빠를 만큼 베트남에 진출한 기업이 많다. 이 중 다양한 세금 인센티브를 받아 실효 세율이 15%에 훨씬 미달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필라2가 도입되면 실효 세율이 나라마다 비슷해지고 법인세 인하 경쟁도 감소한다. 세금 이유가 절대적 요인이 되어 해외에 진출했던 기업들은 제도 시행 전까지 전략을 조정하는 내부 검토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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