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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누리호 90% 이상의 큰 성과…마지막 한 걸음 내년에 채우겠다” [논설위원의 단도직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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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환 누리호 본부장

[경향신문]

경향신문

고정환 한국형발사체 개발사업본부장이 지난 25일 대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자신의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고 본부장은 순수 독자 기술로 개발한 누리호 발사를 계기로 한국이 우주개발 사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게 되기를 바랐다. 우철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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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 개발사업본부장(55)은 ‘누리호의 아버지’ 같은 과학자다. 2015년 본부장을 맡아 7년째 누리호 개발을 이끌고 있다. 발사 때까지 장기간 일관성을 갖고 사업을 책임지라는 의미에서 당시 40대였던 고 본부장을 발탁했다. 서울대와 미국 텍사스A&M대에서 비행역학 및 제어를 공부한 과학자다. 2000년 항우연 입사 이후 줄곧 발사체 개발에 매진해 왔다. 순수 우리 기술로 만든 우주 발사체와 발사대로 700㎞ 궤도에 올려보낸 고 본부장은 “우리만의 우주 수송수단을 갖게 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성과”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3%도 안 되는 인력으로
다른 나라 지원 없이 성공해 뿌듯
엔진 시험만 180회가량 했고
액체 추진 로켓은 그야말로 처음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KSLV-II)가 지난 21일 우주를 향해 날아올랐다. 3단 로켓부와 위성 보호덮개인 페어링을 원활하게 분리했고 목표 고도 700㎞까지 진입했다. 마지막 3단부 엔진이 계획한 만큼 작동하지 않아 모형 위성을 궤도에 안착시키지는 못했다. 언론은 ‘절반의 성공’ ‘미완의 성공’ 등의 표현을 썼다. 그러나 순수 독자 기술로 우주에 1t급 위성을 실은 발사체를 쏘아올린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다. 그런 기술을 가진 나라는 한국이 7번째이다. 누리호 개발에서 발사 과정을 진두지휘한 고정환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한국형발사체 개발사업본부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과학자로서 누리호 성과를 수치화한다면.

“90% 이상이라고 볼 수 있다. 우주발사체의 최종 목적은 위성을 궤도에 안착시키는 것이다. 그 임무로만 본다면 실패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누리호 1차 발사는 개발 중인 대상체를 비행시험한 것과 마찬가지다. 비행시험을 통해 100가지를 검증해야 하는데, 90가지 이상을 확인한 셈이다. 매우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내용을 보면 대부분 잘됐다. 마지막 하나, 궤도 안착에 실패한 것이 두고두고 아쉽다.”

- 우주개발 선진국도 첫 개발 발사체의 시험발사 성공 확률은 30% 미만이라고 한다. 당초 성공 가능성은 어떻게 봤나.

“50% 이상은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관건이던 75t 1단 로켓은 2018년 시험발사해 성공한 경험이 있었다. 지상에서의 시험 데이터도 많이 축적했다. 그래서 절반 이상은 성공할 것이라고 여겼다. 다만 100% 확신할 수 없었던 이유는 지상에서 검증할 수 없어 반드시 비행을 통해 확인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 비행 최종 분석 결과는 언제 나오나.

“누리호 발사 과정에서 보내온 원격측정 데이터는 나로우주센터와 제주도, 남태평양 팔라우 등 지상 세 곳에서 받는다. 구간에 따라 다른 것도 있고 중첩되는 것도 있어서 그걸 분류하고 하나로 종합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아직까지 각 부서에 그 데이터들을 다 배포하지 못했다. 이번주 중 데이터가 모두 배포되면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부서별로 분석 작업을 벌인다. 이후 결과를 취합해 내부 검토회의를 열면 여러 가설이 나올 것이다.”

- 발사체 관련 다양한 기술을 조정하고 중재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집단 기술력이 중요하다. 내부 의견충돌은 항상 있는 일이다. 어느 한쪽 영역에서 기능을 구현하려면 다른 쪽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발사체 전체를 관장하는 입장에서는 한쪽에 비중을 더 두면 작업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의견조율 과정을 거치지만 결정은 본부장이 해야 한다. 쉽지 않은 작업이다.”

- 예를 들어 설명해달라.

“발사체는 기본적으로 무거우면 안 된다. 무게를 줄여야 가볍게 날아갈 수 있다. 발사체는 사실상 뼈대 역할을 하는 탱크가 하중을 많이 받는다. 탱크가 견뎌줘야 하는데, 가벼우면서 튼튼하게 해야 하는 모순이 생긴다. 한쪽에서는 무게를 줄여야 한다고 하고, 다른 기술자들은 무게 줄이면 하중을 견디지 못한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그런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기술진이 며칠씩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 해법을 찾았다.”

- 집에도 못 갔다고 들었다.

“원래 대전 항우연이 근무지이고, 집도 대전이다. 이틀은 대전, 사흘은 나로우주센터 이런 식으로 왔다갔다 했다. 누리호 발사 6개월 전부터 주중 근무지는 고흥 나로우주센터였다. 주말에만 집에 왔다. 많은 직원들이 그런 식으로 근무했다.”

- 발사체 개발사업본부 인력은 어떻게 구성돼 있나.

“항우연에 발사체 개발 인력 250명이 있다. 나로우주센터에는 인프라 운용과 발사체 추적 및 데이터 관리 등에 60명가량이 근무한다.”

- 북한도 로켓 관련 과학인력 수준이 뛰어나다는데.

“수만명에 이르고, 과학자를 우대한다는 얘기는 들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성과를 내는 걸 보면, 그곳 과학자들이 얼마나 압박감에 시달릴지 상상이 간다. 북한 기술 수준이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편인데도 로켓 분야가 발전한 것은 러시아나 중국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국은 다른 나라의 지원이 전무한 상황에서 한국형 발사체를 쏘아올렸다.”

-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인력이 훨씬 적다.

“과거 나로호 발사체를 제작한 러시아 후르니체프사 직원만 3만명에 이른다. 우리는 항우연과 기업체를 다 더해도 누리호 개발에 참여한 인력이 1000명에 그친다. 턱없이 적은 편이다.”

항우연 전 직원은 약 1000명인데, 중국의 우주개발 인력은 약 3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2만명,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는 1만명이 근무한다.

- 적은 인원으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요인이라면.

“한국 기술자는 워낙 똑똑한 데다 열심히 한다. 다른 나라에서 여러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한 사람이 뚝딱 해낸다. 그래야 일이 진행되니까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었다.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기술 수준이 최근 급성장한 영향도 있다. 지금 국내 민간기업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 우주개발 사업의 연속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다.

“한국은 일종의 연구개발처럼 우주개발 사업을 한 덩어리씩 추진해온 측면이 있다. 지금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사업을 진행했지만, 다른 미래 발사체 연구도 병행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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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우주 수송수단 갖게 됐고
내년에는 달 궤도선 발사
2030년엔 달 착륙 꿈 이룰 것
우주개발 사업 체계적 추진 필요

- 우주청 설립 여론이 있다.

“지금보다 나아지기는 할 것 같다. 지금까지 한국의 우주개발은 장기 프로젝트라기보다 몇몇 사업을 별도로 추진해온 느낌이 있다. 항우연은 정부 출연기관이어서 과제를 수행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우주개발은 오랜 시간을 두고 추진해야 한다. 보다 많은 인력과 예산을 투입한다면 한결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 누리호 사업에 약 2조원이 들었다는데 전부 발사체 가격인가.

“그렇지 않다. 설계 및 개발 비용까지 모두 합한 것이다. 80%는 민간기업에 지불했다. 그리고 누리호는 내년 5월에 2차 발사가 예정돼 있는데, 지금 조립 중이다. 1단 로켓 조립에만 9개월 넘게 걸린다. 그리고 이번 누리호 사업을 통해 발사체 3기를 만든다. 굳이 발사체 가격을 따진다면 2조원으로 3기를 만드는 셈이다. 3번째 누리호는 아마 2단계 한국형 발사체 사업기간 중 발사할 것으로 보인다.”

- 엔진 시험 과정이 복잡하다던데.

“항우연에서 설계한 엔진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공장에서 조립해 고흥의 나로우주센터로 옮겨온다. 거기서 2차례 실험을 해 성공이라고 판단하면 다시 창원공장으로 갖고 가서 클리닝 작업을 한 뒤 다시 우주센터로 옮겨온다. 문제가 생기면 새로 부품을 만들고, 또 문제가 생기면 그 이전 단계로 다시 돌아가고 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 시험도 많이 했을 것 같다.

“누리호는 엔진 시험만 180회가량 했다. 75t 엔진 4개를 묶어 단을 만든 1단 로켓은 올해 들어서만 3차례 연소시험을 했다. 실제 비행할 환경과 동일하게 설계해 시험했다. 나로우주센터에 시험설비를 갖추고 있다. 연소시험은 자칫 잘못하면 폭발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주센터가 민가에서 멀리 떨어진 바닷가에 위치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시험발사할 때도 1.8㎞ 이내에는 사람이 들어가면 안 된다.”

- 누리호 개발 과정에서 특허도 많이 출원했겠다.

“특허 내는 게 좋지 않으냐는 의견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우주발사체와 관련한 특허는 내지 않는다. 특허는 나중에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고 쓸 수 있지만 어떤 형태로든 공개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발사체는 전략물자로 분류될 수 있기 때문에 함부로 공개할 수 없다. 그래서 우주개발 선진국들은 특허도 내지 않고, 기술이전도 하지 않는다.”

-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액체연료 추진 발사체를 만드는 게 가장 힘든 일이었다. 한국이 전에 한번도 시도해보지 못한 것이다. 나로호 1단이 액체 추진 로켓이었는데, 개발사인 러시아가 철저하게 제작 기술을 비밀로 했다. 기술이전이 전혀 없었던 셈이다. 액체 로켓은 그야말로 처음이었다.”

- 액체연료는 휘발유 같은 건가.

“제트엔진 비행기에 사용하는 항공 등유를 쓴다. 우주개발 선진국은 우주발사체 전용 액체연료가 있지만 한국은 아직까지 없다. 정유업계에 문의하니 새로운 설비를 추가하면 우주발사체용 연료를 정제할 수는 있다고 한다. 하지만 새 설비 추가에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항공 등유를 대신 사용하고 있다. 언젠가는 한국도 우주발사체 전용 액체연료를 생산해야 할 것이다.”

- 산소가 없는데 어떻게 연소하나.

“액체연료를 주입할 때 별도 탱크에 산화제를 넣어서 간다. 산화제를 함께 싣고 가기 때문에 연소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고체연료에는 아예 산화제가 섞여 있다.”

- 고체 추진 로켓이 더 간단하지 않나.

“고체 추진 로켓은 미사일 전용 가능성이 있어 개발에 제약이 많다. 또 고체는 일정 크기 이상으로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대형 우주발사체는 대부분 액체 추진 로켓으로 한다. 다만 보조로켓을 고체로 하는 경우는 있다.”

- 이제 한국형 발사체 수출도 가능한 것 아닌가.

“수출보다는 외국에서 우주에 보낼 위성 발사를 대행하는 역할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개발이 완전히 끝난 게 아니어서 당장 할 수는 없다. 궤도 안착을 확인한 뒤 자연스럽게 위성을 실어다주는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성 발사 대행은 신뢰성이 중요하다. 발사체와 운용기관의 신뢰성을 확보하려면 한국형 발사체에 대한 연구가 계속돼야 한다.”

- 내년 5월 누리호 2차 발사가 예정돼 있는데.

“누리호 추가 발사도 발사체 검증을 완벽하게 하려는 차원이다. 2차 발사까지는 현재 사업단에서 맡아 진행한다. 3차 이후는 별도 사업단이 꾸려져 담당하게 될 것으로 안다. 발사체는 기본적으로 1차 발사한 누리호와 같다. 물론 일부 성능을 보완하는 작업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 달 탐사도 한국형 발사체로 하나.

“내년에 달 궤도선을 보낼 계획으로 알고 있다. 발사체는 미국 민간기업 스페이스X의 팰컨9이 맡아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발사도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하게 될 것이다. 발사체에 실릴 위성은 물론 한국에서 만들 것이다.”

한국은 내년에 달 궤도선을 발사하고, 2030년 달에 착륙선을 보낸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1일 누리호 발사 직후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2030년까지 우리 발사체를 이용해 달 착륙의 꿈을 이룰 것”이라고 밝혔다.

- 20~30년 뒤 한국의 우주개발 사업 미래는 어떻게 그리고 있나.

“일반인에게 굉장히 가깝게 다가올 것이다. 우주에 대한 접근성이 한결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우주에 위성이나 다른 물체를 실어보낼 발사체 기술에 큰 발전이 이뤄질 것이다. 엊그제 한국형 발사체를 700㎞ 고도에 보냈는데, 훨씬 멀리까지 날아갈 수 있다. 우주 궤도에 화물운송 서비스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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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기 논설위원 haho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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