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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토)

'보통사람'과 '전두환 2인자' 사이에서... 노태우, 영욕의 생 마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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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사진은 1988년 올림픽 담화를 발표하는 노 전 대통령 모습. 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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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김종필 전 국무총리에 이어 노 전 대통령이 영면에 들면서 ‘1노(盧) 3김(金)’ 시대의 주역이 역사의 뒤안길로 모두 사라지게 됐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나)에게 주어진 운명을 겸허하게 그대로 받아들여, 위대한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하고 영광스러웠다"며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점과 과오들에 대해 깊은 용서를 바란다"라는 말을 유족을 통해 남겼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10·26 사태로 별세한지 42년째 되는 날이다.

노 전 대통령은 오랜 투병 생활을 해오다 이날 삶을 마감했다. 1932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의 생은 그 자체로 영욕의 현대사다. 1955년 육군사관학교(11기)를 졸업한 그는 1979년 12·12 군사 반란에 가담한 뒤 전두환 정권에서 승승장구했다. 1980년 전두환 전 대통령 후임으로 국군보안사령관에 취임했고, 정무 제2장관을 거쳐 초대 체육부 장관, 내무부 장관을 지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의원으로 당선돼 정계에 발을 들였다.

1987년 집권여당 대통령 후보가 된 노 전 대통령은 6월 항쟁에서 분출한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6ㆍ29 선언을 통해 전격 수용했다. 같은 해 12월 대선에서 후보 단일화에 실패한 '3김'을 꺾고 승리, 이듬해부터 1993년까지 대한민국 대통령을 지냈다.

노 전 대통령은 대선 슬로건인 '보통사람'으로 오랫동안 기억됐다. 무색무취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다만 냉전 해체 흐름에 힘입어 굵직한 외교 안보 성과를 냈다. 1988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남북기본합의서·한반도 비핵화 선언 채택 등을 이뤄냈다. 그러나 일평생 ‘전두환의 2인자’라는 그림자가 따라다녔다.

말년도 편치 않았다. 1995년 ‘노태우 비자금’ 사건이 터졌고, 군사 쿠데타 주도와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무력 진압,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전 전 대통령과 함께 수감됐다. 1997년 대법원에서 징역 17년과 추징금 2,600억여 원을 선고받았고, 김영삼 정부의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이후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은둔자로 지낸 노 전 대통령을 대신해 명예 회복에 애쓴 건 외아들 재헌씨였다. 미국 변호사인 그는 올해 8월 광주 5·18민주묘지를 찾아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에게 사죄했다. 다른 유족으로는 부인인 김옥숙씨와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이 있다.

전직 대통령이지만, 장례식을 국가장으로 치를지,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될지는 26일 곧바로 결정되지 않았다. 기본 경호를 제외한 대통령 예우가 전부 박탈됐기 때문이다.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날 국정감사에 출석해 "정부 결정에 따라 국가장을 치르고 현충원에 안장할 수 있다. 논의해 보겠다"고 말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차려졌으며, 발인 날짜는 국가장 여부에 따라 정해진다. 조문은 27일 오전 10시부터 받는다. (02) 2072-2010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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