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4 (수)

공수처에 밀려난 사법개혁 과제들[아침을 열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국일보

서울중앙지법 출입구. 서재훈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통해 진실이 드러나고 정의가 실현되는 재판제도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아무리 가짜뉴스가 판을 쳐도, 사기와 강포가 횡횡해도, 공권력이 편파적이어도 사법시스템만 제대로 작동한다면 정말 억울한 상황은 막을 수 있다. 공정한 사법제도는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을 보장해 주며, 사회의 안전과 질서를 유지하며, 시장질서와 재산권을 확립하여 경제를 활성화시키며, 국가 신인도를 높이기에 '사법개혁'은 중단되어서는 아니 될 중요한 개혁과제이다.

그런데 작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의외의 판결은 여전하고 재판지연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엎치락뒤치락 심급마다 달라지는 결론에는 현기증마저 느낀다. 공수처 설치나 검경 수사권 조정과 같은 이슈들은 정치인들에게는 중요한 사법개혁 과제일 수 있지만 정작 국민들은 별 관심이 없다. 국민들이 진정 관심을 갖는 사법개혁은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위한 사법개혁이다. 판사와 검사가 주체가 되는 사법이 아니라 국민들이 주체가 되는 사법으로의 개혁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했던 사법개혁과제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정부의 사법개혁은 재판의 중심을 판검사에서 주권자인 국민으로 되돌려 놓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민참여재판제도의 도입', '법조일원화와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 '증거개시제도의 도입과 하급심 강화', '공판중심주의의 강화' 등이 핵심과제로 추진되었다.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형사소송절차에 국민참여재판제도와 증거개시제도가 도입되었으며, 로스쿨의 도입과 더불어 법관임용방식의 변화도 있었다. 하지만 미흡한 점이 많아 후속 조치들이 절실했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물론 현 정부에서도 이런 사법개혁과제들은 거의 실종된 상태이다.

'국민에 의한 사법'으로 가는 길목에 놓여 있던 국민참여재판제도는 유명무실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전국 법원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은 96건으로 2019년(175건)과 비교했을 때 79건이나 줄었고, 국민참여재판실시율도 2017년 41.4%였던 것이 지난해엔 11.3%에 그쳤다. 헌법상 보장된 공정한 재판은 당사자들 사이에 자유롭고 균등한 정보제공 및 증거에 대한 다각적인 검증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 가장 절실한 증거개시제도도 표류상태이다. 형사소송에는 증거개시제도가 전면 도입되었으나 법원의 무관심과 검찰의 비협조로 실제로 거의 활용되지 않고 있다. 민사재판에는 실효성이 떨어지는 문서제출명령제도만 있을 뿐 증거개시제도는 전혀 도입되지 않고 있다. 도대체 증거가 제대로 현출되지 않는 법정에서 어떻게 진실이 가려지며 정의가 구현될 수 있다는 말인가? 판사들이 가진 정체불명의 ‘양심’에 의존하는 판결보다는 모든 증거가 드러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진실에 입각한 재판이 더 믿을 만하지 않는가? 대법원의 구성도 지명되는 대법관들의 성향만 바뀌었을 뿐 실질적인 다양화 측면에서는 거의 진전이 없다. 사법관료화를 막기 위한 법조일원화도 후퇴의 시도만 보일 뿐이다.

이번 대선에도 법조인출신 후보들이 많은데 정작 눈에 띄는 사법개혁의 청사진은 찾아보기 어렵다.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보장하기 위한 사법개혁의 청사진이 빨리 제시되기를 기대한다.

한국일보

김주영 변호사·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