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공감]공감할 수 없는 대선 주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왜 쏘았지? 왜 찔렀지? 트럭에 싣고 어딜 갔지?” 80년대 군부독재의 탄압 속에서 삼삼오오 어깨동무하고 부르던 이 노랫말이 아직도 귀에 먹먹하다. 국립 5·18 민주 묘지의 원혼들은 많은 시간이 흘렀건만, 아직도 편히 잠 못 들고 있다. 유가족은 새우잠으로 어깨를 들썩이며 울먹이길 반복하는데, 전두환과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보여준 행태는 실망을 넘어 대통령을 준비하는 사람의 언행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릇된 역사관과 정치관을 지닌 그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는 검찰의 총수였다는 사실이 참으로 부끄럽다.

경향신문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입에서 나오는 세 마디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의 어품(語品)을 알 수 있다. 정성을 다해 잘 만드는 명품이 있듯 언어에도 품격이 있다. 사람이 내뱉는 말 한마디는 얼었던 가슴을 녹이기도 하고,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때론 가슴에 비수처럼 꽂혀 평생 상처가 되기도 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세 치 혀를 놀리는 것보다 나을 때도 있다. 곰은 쓸개 때문에 죽고, 사람은 잘못 놀리는 혀 때문에 죽는다고 했다.

말은 인식과 사유의 결정체로, 입을 벗어나는 순간 사람의 격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말은 담는 그릇에 따라 품격이 달라진다. 좋은 그릇에 담긴 음식이 맛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국가 경영을 위임받은 대통령이 하는 말 한마디의 소중함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말 한마디에 군대가 움직이고, 국가 간 분쟁의 씨가 되기도 하고, 화해의 물꼬를 트기도 한다.

유감 표명 후 나온 윤석열의 인스타그램 돌사진 ‘사과’와 반려동물 계정을 통해 그가 키우는 반려견에게 사과를 주는 장면은 저질 코미디를 넘어, 그 마음가짐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그에게 국민은 조롱의 대상이란 말인가? 국민을 우습게 보지 않고서야 이런 오만을 곁들인 몰상식함은 나올 수 없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2항을 잊은 것일까? 자유민주주의 칼은 헌법이요, 그 칼을 휘두를 자는 국민이라는 이름의 무사다.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재임 기간 16년의 최장수 총리였던 앙겔라 메르켈은 “갈등 사이에 다리를 놓아라”는 연설을 했고, 스스로가 원칙과 포용력을 지닌 국내외 갈등의 중재자로 나섰다. 리더란 이런 것이다. 스스로 갈등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만들어진 갈등을 중재하여 엉킨 실타래를 푸는 사람이어야 한다. 지난 22일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영상 메시지를 통해 메르켈에게 “윤리의 나침반을 내려놓지 않고, 함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어서 자랑스럽고, 친구가 될 수 있어서 행복했다”라고 마음을 전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이상주의적 국가론에 맞서 실현 가능한 현실적 국가론을 주장하였다. 그는 윤리와 정치를 따로 떼내어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윤리학은 인간의 행복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는 것이었고, 어떤 국가가 국민의 이러한 행복한 생활 방식을 찾아 보증해 줄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정치학이었다. 그래서 정치의 목적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라 보았다.

물어볼 것 없이 대통령의 역할이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등에 업고, 국민에게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고, 실현함으로써 구성원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대선 흐름을 보면 초등학교 반장 선거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변변한 선거 공약도 없이 반여권 혹은 반야권을 통한 정권 획득의 목표만으로 유권자들은 공감할 수 없다. 시장에서 어묵 한 입 깨문다고 서민경제가 읽히는 것도 아니다. 어린 시절의 가난함이 훈장이 될 수도 없다. 특히 윤석열 후보에게는 주 120시간을 사과 농장에서 손발로 일해보고, 윤봉길 혹은 안중근 의사에게 고요히 질문을 해보길 권한다.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 [뉴스레터] 식생활 정보, 끼니로그에서 받아보세요!
▶ [뉴스레터]교양 레터 ‘인스피아’로 영감을 구독하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