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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토)

[월드리포트] 일본 '아베 마스크' 8천만 장 창고에…'정책 실패'는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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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코로나 정책 실패로 자리매김할 듯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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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초 코로나 확산으로 우왕좌왕하던 일본 정부가 갑작스럽게 수요가 늘어난 마스크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정책이 '천 마스크' 무료 배포였습니다. 봄철 꽃가루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아 마스크 착용이 비교적 일상적인 일본이지만, 코로나 감염 우려가 '공포' 수준으로 확산하면서 시중의 마스크 재고가 바닥을 기던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아베 신조 총리의 이름을 따 '아베 마스크', 또는 아베 총리의 경제 정책인 '아베노믹스'를 빗대 '아베노마스크'라고 불린 이 천 마스크는 배포 초기부터 성인이 코와 입을 모두 가리기에는 크기가 너무 작다는 불만을 샀고, 포장 안쪽과 마스크 표면에서 이물질이 발견되기도 하는 등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시중에 마스크가 부족하니 여러 번 세탁해서 쓸 수 있는 천 마스크를 각 가정에 두 장씩 배포하겠다는 정책이었지만 빨아 쓰는 마스크가 코로나 예방에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는 비판도 제기됐습니다. 이 천 마스크 배포 정책은 아베 정부의 코로나 대응 과정 중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지적됐고, 일본 내부는 물론 해외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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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는 '아베 마스크' 배포를 추진하기 위해 당초 466억 엔(우리 돈 5천 2백억 원)을 쓰겠다고 밝혀 '그만한 돈을 효과도 불분명한 천 마스크 배포에 써야 하냐'는 비난을 사기도 했습니다. 이후 예산 투입 규모는 260억 엔 정도로 절반 가까이 줄었지만, 정부가 정책 초기에 마스크의 개별 단가와 제조사별 주문량을 자세히 공개하지 않아 일각에서는 업계와 유착 가능성까지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감사원에 해당하는 일본 회계검사원이 지난해 일본 정부의 코로나 대응 정책을 감사하는 과정에서, 이 '아베 마스크' 8천 2백만 장이 아직도 민간 창고에 방치돼 있다는 사실이 새로 드러났습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日本經濟新聞)이 오늘(27일)자 1면에 보도한 내용을 보면, 지난 3월 현재 정부 계획대로 배포되지 못한 '아베 마스크'는 모두 8천 2백만 장으로, 돈으로 환산하면 115억 엔(우리 돈 1200억 원)어치나 됩니다.

당초 일본 정부는 일본 전역의 가정 배포용으로 1억 2천만 장, 요양·보육시설 배포용으로 1억 4천만 장 등 모두 2억 6천만 장을 제조업체로부터 구매했는데, 이 가운데 30% 정도가 지금 이 시간에도 창고에서 '썩고' 있다는 겁니다. 마스크 입고가 끝난 지난해 8월부터 회계검사원이 실태를 파악한 올해 3월까지의 민간 창고 보관 비용만도 6억 엔, 우리 돈 60억 원이 넘습니다.

일본 정부는 오늘 기자회견에서 대량의 천 마스크가 지금도 창고에 보관돼 있다는 보도가 대체로 사실이라고 인정했습니다. 닷새 앞으로 다가온 중의원 총선거 유세로 바쁜 마쓰노 관방장관 대신 기자회견에 나선 이소자키 관방부장관은 천 마스크 배포는 지난해 초 마스크 부족 사태 속에서 코로나 감염 확대 방지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고 판단해 나온 정책이라면서 "당시 상황을 감안하면 세탁해서 여러 번 쓸 수 있는 마스크 배포가 일반 마스크에 대한 수요를 억제할 수 있는 적절한 대안이라고 인식했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1/3이나 배포되지 않은 채로 정부가 보관 비용까지 부담하고 있는 건 부적절하지 않느냐는 취지의 질문에는 "일반 세대에는 모두 배포했지만 요양·보육시설의 경우 당초 일괄 배포에서 각 기관의 희망에 따른 배포로 전환했으므로 정부 구매(조달)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언급했습니다. 지난해 여름이 되면서 일본 국내의 마스크 부족 사태가 어느 정도 해소됐고, 이에 따라 천 마스크에 기댈 필요가 없어진 요양 기관들이 배포 신청을 안 해 재고로 쌓인 것이라는 일각의 분석은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대량 재고 사태'에 정부의 책임은 없다고 피해 간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아베 마스크'는 시작부터 끝까지 일본 정부의 '우왕좌왕' 코로나 정책의 상징으로 남게 될 것 같습니다. 지난해 초 마스크 쟁탈전에 뛰어들었던 일반인들의 불안을 해소하겠다며 급히 만들어 배포했지만 불분명한 감염 예방 효과로 제대로 호응도 얻지 못했고, 무턱대고 많은 양을 구매하는 바람에 지금까지 보관 비용까지 지불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따가운 눈총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일본 회계검사원은 이번 감사 결과를 다음 달 공표 예정인 2020년도 결산검사보고서에 포함시키고, 담당 부처인 후생노동성에 적절한 예산 집행에 대한 주의를 촉구할 방침이라고 전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유성재 기자(ven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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