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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김은형의 너도 늙는다] 선배들이여 통찰 대신 질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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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21일 사망한 세계적인 지휘자 베르나르트 하이팅크(오른쪽)는 팔순 때 한 인터뷰에서 어떻게 해야 좋은 지휘자가 되는지 자신은 아직도 모르겠다고 답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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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문화기획에디터

몇달 전 일하는 조직에서 인사이동이 있었다. 내 자리가 바뀐 건 아니지만 나에게도 나름의 큰 변화가 있었는데, 드디어, 마침내, 파이널리, 후배를 상사로 모시고 일하게 됐다. 사실 이 모든 게 갑작스럽게 진행된 것도 아니고 우리가 무슨 아랫기수 올라간다고 옷 벗는 검찰 조직도 아니기에 대수로운 일이 아닐 수 있다. 대기업은 30~40대 임원 탄생도 흔해진 지 꽤 됐다. 무엇보다 나는 자칭 변화와 실험을 사랑하는 쿨병 환자가 아닌가. 연공서열로 줄서기 하는 집단보다는 유연하고 젊은 조직이 당연히 내 스타일이다.

하지만 이 체제에 적응하는 데 예상보다 많은 에너지가 투여됐다. 친구에게 변화된 조직 환경 이야기를 하면서 누구보다 쉽게 적응할 줄 알았는데 은근히 부대낀다고 하소연했더니 친구가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면서 일갈했다. “그럴 줄 진짜 몰랐냐? 멍충아!”

곰곰이 되새겨보니 선배 상사와 일할 때보다 더 많이 눈치를 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뭔가 다른 의견을 내야겠다 싶다가도 꼰대의 잔소리처럼 들릴까? 하는 자기검열 기제가 발동했다. 선배 상사와는 시시콜콜 상의하던 문제들에 대해 이 정도는 내가 알아서 처리해야겠지 판단하는 것들도 늘어났다. 웬만한 불만은 참아넘기고, 소중한 취미생활이었던 상사 ‘뒷담화’도 잦아들었다. 뭐랄까, 조직 안에서 나잇값에 대한 중압감이 밀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눈치는 나만 보는 게 아니다. 상사가 된 후배 역시 모든 업무지시를 조심스러운 청유형 어미로 끝내는 고단함이 느껴진다.

나이듦에 대한 솔직해도 너무 솔직한 에세이집 <내가 늙어버린 여름>에서 저자 이자벨 쿠르티브롱은 2017년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선거캠프에서 한참 나이 어린 동료들과 일했던 일화를 털어놓는다. 프랑스 출신으로 미국에서 문학교수이자 작가로 활동했던 저자는 맨발로 반전시위에 뛰어들었던 히피세대이자 전투적 페미니스트, 그리고 전방위 인문주의자로 쌓아온 경험을 캠프에서 다 풀어놓을 의지가 충만했지만 결국 친절하고 예의바르게 외면당했다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쌓아온 나의 경험이 왜 그들의 눈에는 전혀 유용하게 비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 내가 그들에게 전달해줄 수 있으리라고 여겼던 것들이 사실 그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그는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다른 다음 세대 앞에서 자신의 “기나긴 경륜”을 고이 접어야 했음을 솔직하고 뼈아프게 털어놓는다.

우리 사회에서 나름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 이른바 선배 세대는 후배 세대에게 경륜의 공유, 식견이나 통찰의 전수 등을 하는 걸 윤리적 책무처럼 느끼기도 한다. 그 수단은 때로는 술 한잔 마시고 하는 “라떼는 말이야”이기도 하고, 때로는 교훈과 훈계로 가득한 글이나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열망과 안타까움과 통찰과 경륜은 다음 세대에게까지 닿지 않는다. 사실 그것은 불가능한 바람이자 환상일 뿐이다. 선배 세대의 바람만큼 경륜과 통찰이 다음 세대로 착실하게 이어졌더라면 세상은 지금처럼 바뀌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늙어버린 여름>의 저자는 이렇게 쓴다. “나는 누구에겐가 영감을 주고 그를 도와주었으며 그를 변화하게 했는가. 이 고통스러운 질문엔 물론, 나를 기쁨으로 충만하게 해주는 (대학에서 가르쳤던) 졸업생들의 이메일 몇 통 외엔 똑 부러지게 구체적인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선배 세대들이 후배들에게 자신이 살아온 삶을 바탕으로 일타강사의 통찰력을 전수할 게 아니라 이처럼 자신에게 고통스럽게 질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세대가 이룬 성취는 가르치지 않아도 전달하지 않아도 이미 다음 세대의 삶에 체득되어 있다. 이루지 못한 것, 실패한 것에 대한 질문과 뼈저린 후회로부터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네덜란드 지휘자 베르나르트 하이팅크는 자신이 이끌던 왕립 콘세르트헤바우(RCO)를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반열에 올려놓고 카라얀 사후 베를린필 단원들이 후임 상임 지휘자로 지목했을 만큼 최고의 평판을 누리는 음악가였지만, 팔순 때 한 인터뷰에서 어떻게 해야 좋은 지휘자가 되는지 자신은 아직도 모르겠다고 답했다. 답에 정주하지 않고 계속 질문했기 때문에 그는 후대에 무언가를 남기는 지휘자가 됐을 것이다.

지금 상사가 된 후배들이야 나와 비슷한 연배지만 앞으로 점점 더 세대가 벌어지고 점점 더 이해하기 힘든 후배들이 나의 상사가 될 것이다. 아마도 답답하겠지. 선배들이 수십년 동안 말해온 것처럼 “신문 그렇게 만들면 안 된다”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입이 근질거릴 때마다 입은 닫고 지갑만 열라는 선배들의 통찰을 되새길 일이다.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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