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한국이 내 삶을 부쉈다" 美국적 없는 한인 입양인 최소 4만여 명 [있지만 없는 사람들, 무국적자]

댓글 5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4>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한인 입양인
◇한국으로 추방된 브랜든 김
양부모 차별 대우에 14세 때부터 노숙
40대 후반에 모국서 새 삶 고군분투
◇가족 잃은 에밀리 워네키
마약사건 연루… 추방 피했지만 옥살이
"국적도 없이 입양 보내다니" 한국 원망
◇한국마저 떠난 아담 크랩서
친모까지 만났지만 무기력한 나날
"6세 딸 미래 위해" 멕시코로 떠나

편집자주

출생신고도 사망신고도 할 수 없는 이들이 있다. 분명 존재하지만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는 이들, 무국적자다. 전 세계 무국적자는 300만 명, 그중 3분의 1은 아이들로 추산된다. 무국적 문제는 보편 인권에 바탕해야 할 인간사회의 심각한 허점이자 명백한 인재(人災)다. 이제는 바로잡아야 할 때다.
한국일보

1974년 해외로 입양된 한국 출신 아동의 입양 서류. 부모에 대한 정보가 '알 수 없음(Unknown)'으로 기록돼 있다. 기사 속 사례와는 무관하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국으로 입양됐던 한인 브랜든 김(가명·47)씨는 올해 3월 추방돼 한국으로 왔다. 김씨는 1974년 전북 군산에서 버려진 채 발견됐다. 주한미군에서 일하던 남성과 그의 여자친구가 걸음마도 못 하던 김씨를 입양해 미국으로 데려갔다. 두 사람은 당시만 해도 부부가 아니어서 양부모가 될 자격이 없었지만, 입양기관은 별다른 확인 없이 아이를 이들에게 맡겼다.

양부모는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해 입양을 선택했다. 하지만 입양 8개월 만에 아이가 들어서면서 김씨는 눈 밖에 나기 시작했다. 다섯 명의 동생이 차례로 생겼고, 넷째 동생이 태어나던 해 초등학교 2학년이던 김씨는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아이들을 키우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게 양부모가 댄 이유였다. 그러면서도 친자녀들에겐 학교 수업은 물론이고 피아노·댄싱 등 과외 활동까지 지원하면서 모두 대학에 보냈다.

가정 형편을 이유로 단 한 번의 기회도 갖지 못했던, 더구나 양아버지의 폭력까지 감당해야 했던 김씨는 12세 때 처음 가출했고 14세 때부터는 거리에서 살았다. 김씨는 27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양어머니는 5,000달러 주고 샀어야 했을 차를 6,000달러 주고 샀다는 식으로 나를 입양한 걸 후회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김씨는 11세 때 불법체류자 신분이 됐다. 양부모가 김씨 시민권을 신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입양 부모가 2년 안에 주법원에 자녀 시민권을 신청해야만 미국 국적자가 될 수 있는 입양 목적 이민비자(IR-4)로 미국에 갔다. 이 경우 10년 만기 영주권을 부여받고 그때까지 시민권 취득 절차가 진행되지 않으면 불법체류자가 된다. 하지만 양부모는 김씨에게 그만큼의 관심도 없었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시민권도 없었던 김씨가 자립할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군 복무를 마치면 시민권을 받을 기회가 생기지만 초등학교 중퇴 학력의 그에겐 입대 자격조차 없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노숙 생활을 전전하면서 나락으로 향하던 미국 생활은 지난해 범법 혐의로 김씨를 체포한 경찰이 추방을 결정하면서 마감됐다. 시민권이 없다는 이유가 컸다. 법적 대응으로 추방을 피할 길이 없진 않았지만, 변호사 선임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던 김씨는 40년 전 떠나온 길을 홀로 되돌아왔다.

한국 생활 7개월째인 김씨는 모국에서의 삶도 미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아동권리보장원이 추방 국외 입양인에게 주는 월 50만 원의 생계비 지원금으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 트럭 운전기사로 일하고 싶어 1종 운전면허 취득에 나섰지만, 한국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김씨에겐 높은 벽이다. 김씨는 "한국으로 추방되기까지 어느 누구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민권 없이 사는 건 종신형"

한국일보

에밀리 워네키씨가 'A4J' 유튜브에 자신이 시민권이 없다는 이유로 처해야 했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Adoptees For Justice'' 유튜브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시민권 없이 미국으로 입양된 에밀리 워네키씨. 워네키씨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에 홀로 살고 있는 한인 입양인 에밀리 워네키(57)씨 역시 김씨처럼 시민권이 없지만 추방만은 간신히 모면했다.

워네키씨는 1999년 길 가던 10대 여자아이를 차에 태워줬다가 체포돼 수사를 받았다. 아이가 마약을 소지하고 있었던 탓이다. 곧 훈방될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시민권자가 아니라는 신분에 발목 잡혔다. 워네키씨는 뒤늦게 자신이 IR-4 비자로 입양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워네키씨를 당연히 미국 시민권자라고 여기고 있던 가족들이 더 놀랐다. 한국전 참전용사였던 부친이 뒤늦게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구제 방법은 없었다. 생면부지의 땅으로 쫓겨갈 순 없었던 워네키씨는 검사가 제기한 혐의를 모두 인정해 추방을 피했지만 대신 5년 8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감옥에서 나왔을 때 남편과 자녀는 마약 전과자가 된 워네키씨를 받아주지 않았다. 아버지도 세상을 등진 뒤였다. 이후는 그저 하루하루 버티는 삶이다. 사실상 불법체류자 신분이라 취업이 어려워 매달 받는 장애수당 864달러가 수입의 전부다. 워네키씨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국적도 없이 입양을 보낸 당신의 나라(한국)가 내 삶을 부숴버렸다"고 울분을 토했다.

시민권을 받기 위해 싸우고 있는 한인 입양인 레아 엠퀴스트(39 )씨는 "시민권이 없는 입양인은 입양되는 순간 종신형을 선고받은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1982년생인 엠퀴스트씨는 양부모가 시민권 신청을 하지 않아 무국적자가 됐다. 미국 의회가 2001년 해외입양인에게 일괄적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도록 한 아동시민권법(CCA)을 제정하면서 국적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를 키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법이 당시 만 18세 이하(1983년 2월 말 이후 출생자)에게만 적용되면서, 엠퀴스트씨는 2개월 차이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해군에 입대해 이라크전쟁에 참전하는 등 시민권을 받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엠퀴스트씨는 10년 단위로 갱신해야 하는 영주권을 얻거나 불법체류자로 살아야 할 처지다. 양어머니는 "네가 시민권을 얻지 못한 건 내 잘못"이라고 뒤늦게 자책하고 있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돌아온 모국에서도 기회는 없었다"

한국일보

아담 크랩서씨가 23일 한국일보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시민권이 없어 고통받는 한인 입양인들에게 "한국으로 돌아가면 될 거 아니냐"고 말하는 이들이 있지만, 입양인들은 "현실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에서 국적을 회복한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보장은 없는 탓이다.

4세 때인 1979년 미국으로 입양됐다가 41세이던 2016년 한국으로 추방된 아담 크랩서(한국명 신성혁·45)씨는 한국 생활을 견디지 못해 올해 2월 멕시코로 살길을 찾아 떠났다. 거듭된 양부모의 학대와 파양을 겪은 크랩서씨는 '나의 이름은 신성혁'이라는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국에 와서 친어머니도 만났건만 모국을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에 대해 크랩서씨는 "한국에서도 나는 어떤 기회도 잡을 수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한국어를 할 줄 모르는 그에게 한국은 또 다른 감옥이었다.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미국으로 보내졌던 네 살배기 때로 돌아간 것 같은 무력함을 다시 느껴야 했다.

사실상 무학력으로 이렇다 할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던 탓에 정부가 주는 생계급여 50만 원으로 생활해야 했다. 추방 당시 아내 배 속에 있던 딸이 6세가 된 지금, 아이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뭐든 해야 했다. 영어와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그는 멕시코시티에 있는 미국계 회사에서 일하면서 새 삶을 준비하고 있다.

4만3830명, 美 국적 취득 확인 안 돼


미국으로 입양 간 한인 가운데 최소 4만3,830명은 시민권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 입양기관이 한국에서 입양 절차를 완료하지 않고 대부분 IR-4 비자로 아이들을 보낸 탓이다. 정부는 사설 기관에 해외입양 절차를 일임하고 뒷짐지었다. 27일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해외입양인 국적 취득 현황에 따르면 1970년 이후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아동은 10만6,332명이고, 이 가운데 국적을 얻은 것으로 확인된 인원은 6만2,502명에 불과하다. 미국 입양이 많았던 1950년부터 1969년까지 20년간 통계가 존재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시민권이 없는 한인 입양인 규모는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한국일보

미국 입양 아동 시민권 취득 현황. *자료: 보건복지부(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출 자료)


유럽평의회는 1960년대부터 유럽아동협약을 제정해 아동에게 입양국 국적을 먼저 부여한 뒤에 입양 절차를 진행하도록 의무화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같은 내용의 의무 규정이 생긴 건 해외입양을 보내기 시작한 지 60년이 지난 2013년이 돼서였다.

한국으로 추방된 한인 입양인도 알려진 것보다 많다는 게 정설이다. 아동관리보장원은 2002년 이후 추방된 한인 입양인을 10명으로 집계하고 있지만,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NAKASEC)는 시민권 없는 입양아 추방 사례가 50건 이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입양인 권익 운동을 해온 김도현 뿌리의집 목사는 "추방된 입양인을 입국하자마자 별다른 조사 없이 일반 추방인처럼 마약중독자 시설로 보내는 등 이들에 대한 별도 집계를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이태원 거리에서 노숙 생활을 하다 발견된 모정보(47)씨도 그런 사례다. 그 자신이 입양인으로 추방 입양인 지원 활동을 하고 있는 아이릭 하게네스 해외입양인연대(G.O.A'.L) 사무총장은 "입양인 문제는 정부도 입양기관도 어느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큰 회색지대"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원다라 기자 dara@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