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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영국 대학의 탄소중립 선언…한국 대학은 무슨 준비를 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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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청년의 런던 견문기]

한겨레

12일<현지시각> 런던대에서는 ‘Gerneration One(기후변화를 막는 첫 세대)’라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기후변화 대응 방법을 다룬 전시회가 열렸다. 박소현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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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대학교(UCL) 대학원 입학을 앞둔 지난 9월 학교에서는 각종 안내문을 보내왔다. 글마다 ‘지속가능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는데 왠지 ‘지속가능한 대학’의 모습은 머릿속에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궁금증에 찾아본 런던대학교의 지속가능한 목표와 활동들은 모호하게 느껴졌던 지속가능한 대학의 모습을 한층 구체화시켰다. 한국 대학에서 접하지 못했던 지속가능한 교육에 대해 부러움마저 들었다. 무엇보다 같은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두 나라 대학의 모습은 대조적이다.

20개 이상의 영국 대학들은 영국 정부의 2050 넷제로 목표에 발맞춰 넷제로 혹은 그와 비슷한 탄소 목표(Carbon Target)를 세웠다. 그중 필자가 재학 중인 런던대는 2030 넷제로를 목표로 2012년부터 매년 지속가능 보고서 발간하고 있다. 이러한 지속가능한 목표 뒤에는 학생, 교수진, 교직원 등 학교의 모든 이해관계자의 참여가 뒷받침하고 있다. 교수진은 2024년까지 교과와 교과 외 과정에 지속가능성과 기후변화 관련 내용을 반영해야 한다. 과거 기후변화를 자연과학분야로 분류했던 것과 달리 인문 사회 등 대다수 학문에서 관련 수업과 연구를 통해 기후변화를 다루고 있다. 예를 들면 법과 환경센터에서는 법학과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후변화 케이스 스터디 강의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기후변화의 융복합적인 성격을 반영하여 다양한 기후변화 관련 교육과정들이 마련되어 있다. 학생들은 신입생 때부터 언제든지 지속가능한 카운슬, 동아리를 통해 지속가능한 활동과 기후행동에 참여할 수 있다. 지속가능한 카운슬에서 논의된 프로젝트와 아이디어들은 교수진과 교직원으로 구성된 그룹에 전달되어 실제 학교의 지속가능한 프로젝트로 이어진다. 졸업생들은 졸업 후에도 지속가능한 일자리와 연계하여 지역 사회와 국가의 탄소중립 실현에 활발히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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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L 대학의 ‘지속가능’ 홈페이지 캡처. 2024년까지의 주요 선언 내용을 번역해보면 ①모든 학생들이 지속가능성에 대한 공부와 경험 제공, ②지속가능한 연구를 늘리고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에 집중 ③2024년까지 건물부문 탄소중립, 2030년까지 대학 전체 탄소중립 달성 ④일회용 플라스틱 금지 캠퍼스 ⑤1인당 폐기물 20% 감축 ⑥1만㎡의 생물다양성이 공존하는 공간 만들기다. 박소현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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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의 대학은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학문적으로 토론하고 기후변화 논의를 이끄는 전략적 요충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 대학에서는 정부 주도 사업 이외의 자발적인 기후변화 대응의 노력과 대학 내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다. 대표적으로 환경부에서는 2011년부터 그린캠퍼스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까지 총 54개교(중복 수혜 포함)를 선발하여 지속가능한 그린캠퍼스 조성과 친환경 대학 문화 조성을 지원하고 있다. 사업의 일환으로 기후변화 특성화대학원이 신설되고 환경동아리와 각종 공모전이 진행되었지만 지난 10년 동안 탄소중립을 선언한 학교는 한 곳이다. 그린캠퍼스 선정 대학은 기후변화 전문 인력 양성에 집중한 나머지 구체적인 지속가능한 목표 없이 제한된 인원에게만 기후변화 교육이 제공된다. 그 결과 사업 종료와 함께 그린캠퍼스로서의 역할도 끝난다. 관련 학과가 아닌 학생과 교직원들은 사업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캠퍼스 안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문제의식과 지속가능성의 가치는 공유되지 못하고 대학을 넘어서 지역사회의 관심도 위축시켰다. 그리하여 오늘날 정부는 2030 지속가능한 발전과 2050 탄소중립을 외치는 한편 대학과 지역사회는 국가적 목표에 무관심한 단절된 모습이 연출되었다.

영국에서 지속가능한 대학의 주체는 정부가 아닌 대학이다. 2019년 영국 의회의 기후비상선언 직후 영국의 고등교육 단체들은 기후 위원회(Climate commission)를 조직하여 교육기관들이 지속가능하게 2030년까지 넷제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참여기관 중 교육의 지속가능 리더십 연합회인 EAUC(Environmental Association for Universities and Colleges)는 교육자들이 주축이 되어 고등교육 부문을 위한 기후행동 지침서 등을 발행하여 기후위기에 맞는 교육과 리더십을 제공하고 있다. 학생들이 만드는 지속가능한 단체인 ‘SOS-UK(Students Organising for Sustainability UK·지속가능한 영국을 위한 학생 조직)’와 영국의 600여개의 학생회 연합체인 ‘NUS(National Union of Students·전국학생모임)’ 외 2개 단체가 연합하여 영국 대학들의 1.5도 목표 달성을 위한 탄소 목표를 평가하고 목표를 상향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런던대는 상위 그룹(Leading the way)에 속하기 때문에 영국의 모든 대학들이 지속가능하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지속가능하기 위한 대학 구성원들의 노력과 연대는 국내 대학에 부재한 가치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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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각 대학의 탄소 감축 목표치를 SOS-UK 외 3개 학생 단체에서 자체 방법론으로 평가하고 있다. HE(Higher education·고등교육과정) FE(Further education·추가교육과정)으로 한국의 교육 체계와는 다르다. 한국 기준으로 HE는 대학, FE는 HE이외의 교육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SOS-UK 홈페이지 갈무리. 박소현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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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에 전세계적으로 공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제6차 보고서는 급격한 온실가스 감축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으나 탄소중립 선언 이후 교육기관을 포함한 국내 기관들의 탄소중립 참여는 저조하다. 반대로 런던대학교의 사례는 대학이 어떻게 지속가능한 교육의 장이자 지속가능한 사회의 시작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환경부의 그린캠퍼스 사업을 시작으로 국내 대학에서도 탄소중립 선언과 지속가능한 발전이 이행되기를 소망한다.

박소현 런던대 대학원생(환경 전공)·유튜브 <기후싸이렌> 패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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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입니다. 1997년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를 다니던 대학생이 2019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회의(COP25)를 참관한 뒤 기후변화 문제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환경컨설팅 회사에 취직하고 잘 지내는 줄 알았는데 <한겨레> 기후변화팀을 알게 되고 유튜브 <기후싸이렌> 패널로 활동하다 갑자기 기후변화 공부를 하러 올해 9월 영국 런던으로 떠나왔습니다. 채식과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면서 영국에서 매일 잘 먹고 잘 사는 일상을 공유하고 싶어 글을 적어봅니다. 기후변화 대응 선진국으로 알려진 영국의 일상 속 순간들을 한국 기후 청년의 시각으로 관찰하고 기록합니다. 우리보다 영국이 더 잘 하는 것 또는 우리도 이미 잘하는 것들을 찾아보고 기후위기 문제 해결법을 고민해보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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