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지적장애인 또 ‘소금독’에 갇혔다…‘제2의 염전노예’ 수사 착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50대 염전 노동자의 ‘기막힌 사연’

경계성 지적장애…직업소개소 통했지만 감금·착취

2014~2021년 새벽 3시부터 18시간 중노동에 탈출


한겨레

2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염전노예 인신매매사건 형사 고소 및 경찰청 수사촉구 기자회견'이 열려 피해자 박영근씨가 피해사실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저는 염전에서 최근에 올라온 피해자다. 너무 힘들었다. 이 사건은 다 알아야 한다. 이 사건은 없어져야 할 문제다. 저는 임금도 받지 못하고 온몸에 소금독이 올라왔다.”

기자회견 마이크를 잡은 박영근(53)씨는 지난 7년의 기억을 떠올리며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박씨는 직업소개소를 통해 2014년부터 2021년 5월까지 전남 신안군의 한 염전에서 일했다. 매달 140만원을 받고 일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그는 7년을 일했지만 “손에 들어온 돈은 한 푼도 없다”고 말했다.

한겨레

2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염전노예 인신매매사건 형사 고소 및 경찰청 수사촉구 기자회견’ 열렸다. 피해자 박영근씨와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염전주에 대한 경찰청의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8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공익법센터 어필 등 10개 시민단체는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씨가 겪은 일을 “제2의 염전 노예 사건”이라며 경찰에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이들은 2014년 2월 신안 신의도 염전에서 유괴된 지적장애인이 강제로 집단 노동을 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준 ‘염전 노예 사건’ 뒤 7년이 지나도 달라진 게 없다고 주장했다.

박씨와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박씨는 지난 5월 염전주의 감시망을 뚫고 무작정 산으로 들어가 탈출에 성공했다. 염전주 ㄱ씨는 사업상 사정이 있다며 연말에 임금을 주겠다고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한다. 박씨와 함께 은행에 동행해 박씨의 계좌로 현금을 입금한 뒤, 박씨가 은행 창구에서 출금하면 은행 앞 주차장에서 ‘정산금’이라며 바로 돈을 가져가는 방식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척’만 했다는 게 박씨의 주장이다. 박씨는 ㄱ씨가 자신에게 보루 담배를 비싸게 파는 방식으로 가불 명세서를 만들거나, 코로나 재난지원금으로 지급된 지역 상품권을 가져갔다고 주장했다. 다만 박씨는 가불형식으로 7년 동안 70만원가량을 염전주에게 받은 것으로 기억했다.

박씨는 염전에서 사실상 감금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매일 새벽 3시부터 밤 11시까지 일하다 보니 치아는 다 빠지고, 피부에는 소금 독이 올랐다. 몸이 아프다고 수차례 호소했지만 병원에 가지 못했다. 1년에 두 차례 관리자의 동행 아래 다른 노동자들과 5인 1조로 외출하는 것만 허락됐다고 한다. 박씨는 “마치 감옥처럼 감시당했다. 많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현재 해당 염전에는 14명가량이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은 가족이 없는 무연고자이며, 1명은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중증장애인으로 추정된다. 박씨는 경계성 지적장애인으로 현재 장애인 등록 절차를 밟고 있으며 피해 쉼터에 머무르고 있다.

김강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정책국장은 “고용노동부와 자치단체 공무원들은 7년간 이 일을 정말 몰랐는지, 알았는데 방치했는지 책임 소재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씨가 탈출 뒤 지난 6월 누나의 도움을 받아 지역 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했으나 근로감독관은 박씨에 대한 조사 없이 업주가 박씨에게 400만원을 지급하는 걸로 사건을 종결했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또다른 피해자들에 대한 실태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 국장은 “2014년 신안 염전 노예 사건의 가해자들이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신체적인 폭행이나 상해가 있어야만 실형이 선고됐다”며 “2014년에는 피해자 명단 관리도 못 해 아직도 이들이 어디에 사는지 알지 못한다. 지금도 염전에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수사과의 직접 수사를 촉구했다. 박씨는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이날 염전주 ㄱ씨를 장애인복지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 근로기준법 위반과 상습준사기, 감금 등의 혐의로 경찰청에 고소했다.

최근 전남지방경찰청은 ㄱ씨를 사기 혐의로 입건해 조사하고 있으며 피해자에 대한 감금, 폭행 등의 인권 문제도 함께 들여다보고 있다. 전남경찰청 관계자는 “임금 체불은 확인되면 광주지방고용노동청에 통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우연 김용희 장현은 기자 azar@hani.co.kr

벗 덕분에 쓴 기사입니다. 후원회원 ‘벗’ 되기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주식 후원’으로 벗이 되어주세요!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