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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소시지·감자·맥주… 독일 음식엔 뭐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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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지역성이 음식문화 특징

국민 요리나 전통 음식은 없지만

새로운 층 형성 유연한 문화 마련

감자, 처음엔 동물 먹이로만 사용

전쟁·기근 거치며 식용으로 안착

괴테 등 유명 인사 식생활도 다뤄

세계일보

슬라브족과 라틴족 사이, 한대기후와 아열대기후 사이, 바다와 산맥 사이에 자리 잡은 독일은 끊임없는 정치적·문화적·사회경제적 변화를 겪어왔다. 이 같은 변화에 따른 개방성과 수용성이 오늘날 독일 음식의 특성을 규정한다. 사진은 독일 베를린의 시장인 마르크트할레노인에서 시민들이 길거리 음식을 즐기는 모습. 니케북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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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음식문화사/우어줄라 하인첼만/김후 옮김/니케북스/3만2000원

말린 과일과 아몬드를 품고 두껍게 부푼 몸집을 설탕과 슈가파우더로 소복이 감싼다. 함박눈이 내린 고요한 겨울 정취를 담은 이 빵을 한 조각 썰어본다. 빵칼의 움직임은 곧 성탄절을 향한 설렘의 몸짓이다. 매일 한 조각씩 빵을 먹다보면 어느덧 기다리던 그날이 오고, 아기 예수 탄생을 기뻐하는 캐럴이 온세상에 울려퍼진다. 해마다 이맘때쯤 빵 진열대를 차지하는 독일의 ‘슈톨렌’. 슈톨렌의 단맛은 한 해를 마무리하고, 또 새롭게 펼쳐질 내일을 고대하는 탐미다.

하지만 슈톨렌의 기원은 오늘날 이 빵이 상징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며, 오히려 음식에 대한 종교적 규칙, 죄악과 탐닉에 관련된 치열한 논쟁을 담고 있다. 슈톨렌은 성탄절 이전의 대림절 단식기간에 먹는 케이크를 기원으로 한다. 아기 예수를 쌌던 포대기를 상징하는 모양의 슈톨렌은 1392년 처음으로 기록됐는데, 가톨릭의 금식 규칙이 철저히 지켜지던 그때에는 물과 귀리, 현지에서 생산되던 평지씨유만 허용됐다. 그러나 점차 가격과 같은 현실적인 제약들 때문에 금식법에 대한 관면(교회법 제재 면제)이 일반화했고, 단식 기간에 먹는 음식이었던 슈톨렌도 기름지고 달콤하게 진화한다. 여기에는 루터의 사상도 한몫한다. 신이 평범한 매일의 노동과 좋은 음식, 와인과 맥주, 성적 유희를 만들었다면 훌륭한 기독교인의 의무란 극단적 금식·단식이나 독신주의에 매달리는 것보다는 “모든 것에 온건함을 보이는 것”일 터.

음식은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다. 독일 음식 연구자 우어줄라 하인첼만은 신간 ‘독일의 음식문화사’를 통해 슈톨렌을 비롯한 독일의 식문화를 분석한다.

소시지와 맥주, 많아야 슈바인학센, 프레첼 정도를 꼽으며 고개를 갸웃할 독자들이 많을 것. 이웃나라 프랑스와는 달리 독일 음식은 단순하고 풍부하지 않다는 인식이 많다. 그러나 저자는 오히려 독일 음식 특징은 다양성과 복잡성에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독일의 8200만명 모두가 옥토버페스트에만 목을 매고 있지는 않다”며 “독일에는 범국가적이고 지배적인 고급 요리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으며, 검은콩에 돼지고기를 넣고 끓인 브라질의 페이조아다 같은 국민 요리조차 없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독일이 오랫동안 아주 작은 정치적 단위로 분열돼 있었고, 바다와 산맥 사이에 자리한 나라라는 점에 주목한다. 여기에 국경을 접한 나라가 9개국에 달하는 것도 북부와 남부의 음식과 요리법이 상당히 이질적인 이유다.

이런 조건에서 독일 요리는 특정한 전통을 고수하기보다는 전방위적으로 새로운 층을 더해가며 유연한 식문화를 마련했다. 획일적인 국민 요리나 변하지 않는 전통 요리는 없지만, 다양성과 지역성이야말로 독일 음식의 특징이다.

세계일보

우어줄라 하인첼만/김후 옮김/니케북스/3만2000원길거리 음식을 즐기는 모습. 니케북스 제공


책은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독일 음식문화사를 통시적으로 고찰한다. 독일은 로마제국의 문화가 유입되면서 농경과 목축이 발달했으나, 중세에는 검약을 권장한 기독교로 인해 소박한 식사가 보급됐다. 이어 14세기에 대기근을 거친 뒤 인구가 줄면서 음식 수준이 향상됐고, 인쇄술 발명 이후에는 요리책이 유행했다.

현대인에게도 필수 식품인 감자, 설탕, 커피는 17∼18세기에 널리 확산했다. 커피와 설탕은 독일인이 열광적으로 받아들인 데 반해 감자는 수용 과정에서 거부감이 컸다. 저자는 “독일인들은 감자를 사람이 먹기에 적합한 음식으로 여기지 않았으며, 주로 동물들의 먹이로 사용했다”며 “감자가 대중적 음식으로 퍼져나가게 된 데에는 전쟁 혹은 기근에 따른 곡물 가격의 급등이나 빵의 품귀 현상이 있었다”고 분석한다.

책은 독일 유명 인사들의 식생활도 다룬다. 희곡 ‘파우스트’를 쓴 괴테는 음식과 와인에 돈을 낭비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괴테는 흰색 아스파라거스를 매우 좋아했고, 희귀 식품을 공급받기도 했다. 그의 친구는 네덜란드산 청어, 뱀장어, 연어, 굴과 훈제 소혀, 파인애플, 생강, 레몬 등을 보내줬다.

저자가 책 마지막 부분에 실은 2007년 설문조사 결과도 흥미롭다. ‘독일인은 무엇을 먹고 사는가’라는 질문에 독일인들은 볼로네제 스파게티, 토마토소스 스파게티, 슈니첼, 피자, 룰라드를 꼽았다. 슈니첼은 송아지 고기에 빵가루를 입혀 튀긴 요리이고, 룰라드는 얇게 저민 고기를 둥글게 만 음식이다. 저자는 결과에 대해 이같이 말한다. “독일 음식에는 지역과 세계, 소박함과 우아함, 전통과 현대가 뒤섞여 있다. 어느 날은 유기농 야채로 샐러드를 먹고 다음 날에는 싸구려 프렌치프라이와 지방이 잔뜩 낀 고기를 즐기듯, 앞으로도 독일 음식에서 한 가지 요소가 다른 요소를 배제하지는 않을 것이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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