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엄마 돈벌고 올게" 알바 갔다가 감옥 갇혔다…주부의 울분

댓글 4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구치소 같은 방 8명 중 7명이 보이스피싱으로 들어온 사람이었습니다. 이중 6명은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은 사람들입니다. 모두 전과도 없었습니다.”

얼마전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이라는 이유로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A씨는 수감시설마다 보이스피싱 범죄로 들어온 사람이 많다고 밝혔다. 최근 전화통화에서 그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아 전혀 다른 일인 줄 알고 아르바이트(알바)를 했다가 범죄자가 됐다"고 억울해했다.

중앙일보

구인구직 사이트에 올라온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 모집 광고. 인천 서부경찰서 제공


요즘 중국 등지를 주 무대로 활동하는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이 알바몬이나 알바천국같이 청년들이 많이 이용하는 사이트를 통해 채권추심ㆍ택배ㆍ심부름 알바라고 속여 피해자로부터 돈을 받아 오게 하는 일이 급증하면서 대학생이나 주부들이 대거 전과자로 전락하고 있다.

특히 보이스피싱에 속은 피해자들이 뜯긴 돈을 차지하는 주범들은 중국이나 필리핀 등지에서 잡히지 않고 있어 주범들에게 속아 알바에 나선 청년들이 무거운 처벌을 받는 실정이다. 검찰과 법원은 이들을 엄하게 처벌하는 추세며, 10만원 내외의 일당을 받아온 알바 지망생들이 피해자에게 피해 금액의 상당 부분을 물어주고 합의하지 않을 경우 더 무겁게 처벌하고 있다.

구치소나 교도소마다 알바지망생 청년이나 생활비 벌이에 나선 주부들이 넘쳐난다고 변호사들은 말한다.

취재진은 변호인에게 요청해 수감자들의 얘기를 들었다. 생활비를 보태려 일거리를 찾아 나섰다가 실형을 선고받은 여성 B씨와 C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아 대출 관련 업무인 줄 알았다"며 방마다 비슷한 수감자들이 여럿이라고 했다. 다음은 B씨와의 일문일답이다..

Q : ‘실형을 선고받았는데 가장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건 무엇인가요.’

A : "저는 배움이 짧고 사회경험이 적습니다. 처음 연루가 된 것이 친한 언니를 따라 무슨 일 하는지 그냥 보러만 간 것이었습니다. 그때 피해자가 약사였기에 당연히 불법과는 전혀 상관없는, 합법적인 대출인 줄 알았습니다. 설마 약사가 속으리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고, 그래서 이 일을 믿고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다 언니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상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러나 수사와 재판에서 위와 같은 과정들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니 공범이라 판단하였고, 바로 범죄자로 보았습니다. 만일 제가 범죄에 연루된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부끄러워서 저의 자식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엄마 돈 벌러 갔다 올게~’라고 말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Q : ‘제일 어려운 부분은 무엇인가요.’

A : “그리고 1심에서 바로 구속되어 실형을 살고 있습니다. 제 불찰로 인해 피해자가 생겼으니 합의를 봐야 하는데, 구속되어 아무런 사죄를 구할 수도 없고, 아무 잘못 없는 가족들이 저를 대신하여 용서를 구하고 있습니다. 제가 저지른 일이니 제가 용서를 구해야 하는데 저는 나갈 수 없고, 가족들만 발을 동동 구르며 합의를 본다고 생각하니 너무 속상합니다. 또한 제가 취득한 금액이 190만원 정도인데, 실제 피해금이 1억 이상이니 합의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도 너무 막막합니다. 기초생활수급자인데 그 합의금을 어디서 구해야 할지 앞이 캄캄합니다. 그리고 합의를 본다 하더라도 결국 실형을 살게 되면 도저히 삶의 희망이 없을 것 같습니다.”

Q : ‘형사 처벌을 받은 적이 있나요.’

A : “저는 평생 죄를 짓지 않았는데 이번 일로 구속이 되어 처음 구치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당장 가족들을 볼 수 없다는 것이 고통입니다. 아무 잘못 없는 가족들은 저를 대신하여 욕을 먹으며 용서를 구하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용서를 구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고통입니다.”

Q : ‘보이스피싱 근절을 위해 당국이 가장 해야 할 조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A : “지식인들도 피해를 보는데 조금만 더 피해 방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처럼 배움이 짧은 사람들이 더 이상 연루되지 않도록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Q : ‘지금 수용자 중 보이스피싱 관련자가 어느 정도인가요.’

A : “현재 9명이 생활하고 있고 그중 저와 22살짜리 한명 총 2명이 보이스피싱 관련자입니다. 모두 수거책이었습니다. 방마다 다 있는 것 같고, 저희 방에도 원래 2~3명 더 있었습니다.”

C씨도 상황은 비슷했다.

Q : ‘실형을 선고받았는데 가장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건 무엇인가요.’

A : "생활비 벌기 위해 시작했고, 심부름 대행인 줄로만 알았는데 범죄에 연루되었습니다. 심지어 친한 동생까지 소개하였습니다. 만일 처음 사건이 발생하고 바로 피해접수가 되었다면 즉시 범행인 줄 알아차리고 일을 그만뒀을 것입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서야 체포가 되었기에 그사이 동안 했던 일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책임으로 돌아왔습니다. 정말 일을 할 당시에는 불법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피해자를 속인 적이 없습니다. 마지막 피해자인 중년의 남성은 집안으로 들어오게 하며 웃는 얼굴로 흔쾌히 돈을 건넸습니다. 돈을 받고서 피해자가 돌아가라고 하기 전까지 돌아간 적도 없고, 웃으면서 돌아가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그 자리를 벗어났습니다. 범죄라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단 한 번도 범죄자처럼 다급하게 자리를 뜬 적이 없습니다. 합의하려고 해도 받은 돈보다 갚을 돈이 너무 많아 엄두를 낼 수가 없습니다. 실제 받은 돈은 적은데 피해자금 전부에 대해 책임을 지고, 평생 사기꾼 딱지가 붙는다는 것이 너무 가혹합니다."

Q : ‘지금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지요.’

A : "피해자금을 조금이나마 회복시켜 드리기 위해 얼른 이곳에서 나가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뿐입니다. 나이가 있으니 취업도 안 될 것 같은데 조금이라도 나이가 적을 때 사회로 돌아가 일을 해서 피해복구를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 가족들도 형편이 어려워 연락을 못 하고 있습니다."

Q : ‘보이스피싱 근절을 위해 당국이 가장 해야 할 조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A : "평소 보이스피싱 피해를 보지 않도록 경고만 받았고, 그 결과로 주의하며 살았기에 보이스피싱 피해를 입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피고인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Q : ‘지금 수용자 중 보이스피싱 관련자가 어느 정도인가요.’

A : "8명 중에 저를 포함하여 총 5명이 보이스피싱 수거책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한 방에 최소 두 명씩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이들이 범죄인 줄 알면서 가담했다고 밝혔다. 법원 역시 검찰 주장을 받아들였다.

중앙일보

부산경찰청은 발신번호 변작 중계기를 밀반입해 보이스 피싱에 이용한 일당 18명을 검거했다고 4일 밝혔다. 사진은 경찰이 압수한 중계기 62대. 사진 부산경찰청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엄청나게 늘고 있는 알바 지망생 범죄자들을 변호한 경험이 있는 변호사 중엔 검찰과 법원의 처벌이 이들이 지은 죄에 비해 너무 가혹하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국선변호인으로 활동해온 오재혁 변호사는 "제가 변론한 대학생 중엔 누가 봐도 저런 정도의 일당을 받고 범죄를 저지를 이유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며 "그런데도 결국 유죄가 선고됐다"고 말했다.

오 변호사는 "얼마 전 무죄가 선고된 사례가 있었다"며 "이 경우 휴대 전화가 자동 녹음 기능이 있어 보이스피싱 일당의 목소리가 녹음돼 증거가 됐다"고 말했다.

오 변호사는 그러나 보이스피싱인 줄 알면서도 현금수거책으로 가담한 경우들도 있으며 이 경우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주안 기자 jooan@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