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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인터뷰] ‘디지털 성범죄 보고서’ 발간 후 5개월… 헤더 바 HRW 국장 “한국 정부는 무대응·무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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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헤더 바(50) 휴먼라이츠워치(HRW) 여성권리국장은 지난 23일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본지를 만났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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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지난 6월 한국을 대상으로 90쪽짜리 보고서를 펴냈다. 제목은 ‘내 인생은 당신의 포르노가 아니다: 한국의 디지털 성범죄’다. (본지 6월 16일자 A1면 보도.)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디지털 성범죄로 여성들의 삶이 어떻게 파괴됐는지를 심층조사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전세계 ‘몰카’의 중심지였다. 보고서 발간을 주도했던 헤더 바(50) HRW 여성권리국 디렉터는 “여자 화장실 몰카가 널리 유행하고, 그걸 담은 촬영물을 판매하는 시장이 널리 형성된 곳은 전세계 한국이 유일했다”고 말했다.

마침 바 디렉터가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을 맞아 한국을 방문했다. 바 디렉터는 지난 23일 서울 한 호텔에서 본지와 만나 “디지털 성범죄 보고서를 낸 지 5개월이 지났지만 한국 정부 대응엔 변화가 없다”며 “보고서와 관련해 한국 정부와 대화하려고 시도했지만 피하기만 해서 답답하다”고 했다.

-‘한국의 디지털 성범죄’ 보고서가 발간된 지 5개월이 흘렀다. 변화가 있었나.

“한국 정부 대응엔 변화가 없었다. 그 점이 매우 좌절스러웠다(very frustrated). 보통은 보고서 발간 이후 반년 정도 흘렀을 때 HRW는 당사국 정부와 대책 마련을 시작한다. HRW는 100개 넘는 국가에서 활동하고 있고, 개인적으로도 여러 국가에서 활동을 해왔다. 그런데 한국 정부처럼 ‘무반응,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나라는 본 적이 없다.”

-한국 정부에 직접 연락을 취했나.

“일주일에 두 번씩 한국 정부기관에 연락을 취하고 있다. 보고서에 언급한 관계 부처들과 만나 대화하는 게 목표였다. 인권위 정도만 직접 만날 수 있었고, 주무부처인 여가부를 비롯해 교육부·법무부·검찰청·대법원 모두 만남을 미루고 있다. 정부를 비판하려는 게 아니라 해결책을 제안하려는 건데, 정부가 피하기만 하니 답답하다.”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려 하나.

“법 제도 개선 방향과 피해자들에 대한 실효성 있는 지원 방안이다. 디지털 성범죄 처벌은 형사적 벌금에서 민사적 손해배상의 방향으로 가야 한다. 형사적 벌금은 국가에 소액의 돈을 내는 형태지만, 민사적 손해배상은 피해자에게 거액의 손해를 배상해주는 형태다. 피해자에게 평생 트라우마를 남기는 디지털 성범죄는 민사적 손해배상의 형태로 가는 게 맞다.”

-보고서에선 ‘성 교육의 중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는데.

“성 역할 평등에 대해 어린 나이부터 교육을 시키는 게 중요하다. 교육은 인식의 변화를 동반한다. 내게도 파키스탄에 7살짜리 딸이 있는데, 딸과 이런 이슈들에 대해 터놓고 얘기하고 있다. 부모로서 성숙한 성역할과 시민성에 대해 자녀와 솔직하고 개방적으로 대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믿는다.”

-마침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11월 25일~12월 1일)’이다.

“25일 외교부 주최 ‘제3차 여성과 함께하는 평화 국제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전쟁 기간 성폭력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인데, 40년 내전을 겪은 아프가니스탄의 성폭력 문제, 미얀마 로힝야 부족의 성폭력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터뷰 시점은 25일 이전이었음)”

-전쟁 기간 성폭력이라면 한국의 위안부 문제도 있다.

“맞다. 한국의 위안부 문제는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거다. 전쟁 중 여성 인권 침해의 상흔(傷痕)이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는지를 보여준다. 이 문제 역시 핵심은 비슷하다. 피해자들의 ‘재건’을 도우는 것이다. 피해자들이 가정과 사회로 복귀하고, 커리어를 계속하고, 정서적 피해를 치유하기 위한 현실적 방법들을 고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의 활동 목표는.

“한국 사회에 계속해서 경종을 울리고 싶다. 일단 1차 목표는 기존에 연구해오던 ‘디지털 성범죄’ 문제에서 정부 등 각계각층의 적극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거다. 한국에서의 연구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조사와 인터뷰, 이슈를 던지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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