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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위급한 외국인들 살린 119···통역사 '24시간 재능기부'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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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충남소방본부가 시행하고 있는 ‘119 외국어 통역 서비스’의 이미지. 충남소방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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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14일 충남 지역에 거주하는 러시아인이 갑자기 호흡곤란을 겪게 되자 119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신고전화를 받은 119상황실 직원 중 누구도 러시아어를 알아들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때 충남소방본부는 러시아어가 가능한 통역봉사자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3자 동시통역 시스템을 가동했다. 소방본부는 통역봉사자를 통해 전화를 건 러시아인이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응급환자라는 사실 등을 확인했고, 바로 119구급차를 긴급 출동시켰다. 이 러시아인은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지난 2월17일 충남지역에서 자가격리 중이던 중국인 해외입국자가 자가격리 기간 경과 이후의 코로나19 검사 절차를 잘 모르겠다면서 119에 전화를 걸어왔다. 역시 상황실 안에는 중국어가 가능한 사람이 없었다. 소방본부는 외국어 통역봉사자와의 3자 동시통역 시스템을 통해 선별진료소의 위치와 검사방법, 이동수단을 자세하게 안내할 수 있었다.

외국인의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충청남도. 이곳에서 시행하고 있는 ‘119 외국어 통역 서비스’가 응급상황 등 어려움에 처한 외국인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28일 충남소방본부의 분석 결과를 보면 최근 3년간 외국인이 충남소방본부의 119상황실에 신고한 건수는 1484건으로 해마다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대부분의 신고 전화는 복통, 두통, 발열 등 응급·구급 상황 때 걸려온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이후에는 코로나19와 관련한 신고가 늘어나고 있다.

119에 신고한 외국인이 사용한 언어는 영어(16.2%)가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은 러시아어(9.0%), 베트남어(8.3%), 중국어(6.3%), 우즈벡어(5.5%) 순으로 나타났다.

외국인이 119에 전화를 건 시간별로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운 ‘자정에서 오전 6시 사이’가 26.5%가 가장 많았다.

충남소방본부 관계자는 “119로 전화를 걸어온 외국인 중 상당수는 한국어가 아주 서툰 경우가 많다”면서 “이런 외국인을 위해 ‘119 외국어 통역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충남소방본부가 119 외국어 통역 서비스에 공을 들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전국 시·도 중에서 외국인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 바로 충남도이기 때문이다. 충남소방본부 관계자는 “충남지역 거주 외국인은 12만2826명으로 전국 시·도 중 5번째로 많지만, 인구 대비 비율은 5.6%로 가장 높다”고 설명했다.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들은 일상 생활에서 언어장벽을 겪게 되며, 응급상황에서도 119에 연락을 하거나 주변에 도움을 청하기가 쉽지 않다. 설사 119로 연락을 한다고 해도 자신의 위치나 상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119의 출동이 늦어져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골든 타임’을 놓칠 우려가 높아진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영어, 러시아어, 베트남어, 중국어, 캄보디아어, 태국어, 네팔어, 일본어, 타갈로그어, 우즈베키스탄어, 스리랑카어 등 11개 언어에 대한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통역봉자자들은 평상시에는 일상생활을 하다가, 119상황실로부터 연락이 오면 ‘외국인-통역봉사자-소방본부 직원’의 3자 통화가 가능한 시스템을 활용해 통역서비스를 제공한다. 통역봉사자들은 이들은 별도의 급여를 받지 않은 채 ‘재능기부’ 형태로 서비스에 나서고 있다고 소방본부는 설명했다.

소방본부는 아직 서비스가 안 되고 있는 몽골어 등 다른 외국어의 통역사를 추가로 배치하고, 시간에 관계없이 24시간 통역 봉사를 해 주는 통역사를 격려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충남소방본부 119종합상황실 구급상황관리팀 김정완씨는 “이 통역서비스가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에게 위급 상황에 대처하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통역을봉사자가 24시간 대기하고 있으니까 한국어를 잘 못하더라고 위급하면 바로 119로 전화를 줄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통역봉사자를 통한 119 외국어 통역 서비스는 충북·인천 등 일부 다른 지역 소방본부에서도 제공하고 있다.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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